이건 그냥 돼지가 아니라니까?
역시 우리 농장 돼지가 일품이라고!!!
농장 마당에 모닥불이 피워졌다. 시뻘건 불 위에서 고기가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석쇠 사이로 돼지고기 기름이 뚝뚝 떨어져 내리자 직원들이 젓가락을 챙겨 들며 한마디씩 던졌다. “김 실장 이건 그냥 돼지가 아니라니까? 안 먹으면 후회할걸?”, “한 점이라도 드셔 보셔요.” 매월 말, 농장직원들이 고기를 구워 먹으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데, 그때마다 고기를 잘 먹지 못한다며 슬쩍 빠져나오곤 했다.
내가 돼지고기를 즐겨먹지 않게 된 건 초등학생 무렵 때부터였다. 동네잔치 집에서 돼지고기 한 접시씩을 나누어 주었는데,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게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고기를 많이 먹어보지 않아 고기 맛에 대해 잘 몰랐을 때였다. 고소한 냄새에 끌려 한 점을 입에 넣었는데, 무언가 입에 꺼끌꺼끌한 게 느껴졌다. 그러나 원래 ‘고기’란 것이 그런 줄 알고 오물오물 씹어보았다. 그런데 세상에! 내가 매일 먹던 풀떼기(?) 맛과는 천지 차이로 달랐다. 쫄깃한 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더해졌다. 그동안 내가 맛있다고 느껴왔던 맛은 정말로 ‘맛있는 맛’이 아니었다. 접시에 쌓여있는 고기를 언니 오빠가 다 먹어 치워 버릴까 허겁지겁 야무지게 먹어댔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엄마야!!!”를 외치며 젓가락을 내던지고 말았다. ‘그것’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겹겹이 층을 이룬 두툼한 살코기의 젤리 같은 껍질 부분에 삐죽삐죽 솟아있었다. 뻣뻣하고 시커먼 돼지털이었다. 그때야 마을 사람들이 직접 돼지를 잡았을 때이니 털이 뾰족하게 남아있었던 거였다. 털을 본 순간, 시커먼 털들이 내 위장을 콕콕 찔러 대는 것 같아 웩웩대다 결국 토해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돼지고기를 접할 때마다 숭숭 박혀있던 시커멓고 뻣뻣한 털이 떠올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아주 가끔 뼈 해장국 정도는 먹었지만, 족발이나 보쌈처럼 접시에 올려진 건 입에 못 댄 채 지내 왔었다.
“우리 농장에서 키우던 돼지를 도축장에 특별히 부탁해서 손질해 온 거라서 맛이 기가 막혀요. 좀 드셔 보라니까요?”, “김 실장! 딱 한 점이라도 먹어 보지 그래?” 농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돼지를 고기로 먹는다는 건, 어린 시절 마을회관 앞 커다란 가마솥에서 삶아지고 있는 누렁이를 보았을 때처럼 찜찜하고 불편했다. 누렁이는 전날까지도 우리와 함께 뛰어놀았던 친구네 집 똥개이었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위에서 고기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해왔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맛깔스러워 보이기는 했다. 그래도 혹시 고기들마다 시커먼 털이 숭숭 박혀있을까 싶어, 내 앞에 놓인 고기 접시를 재빠르게 스캔했다. 다행히 도축장에서 잡아 와서 그런지 털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더이상 사양하지 못하고, 직원이 건네는 고기 한 점을 받아 입에 넣었다. “아이고 이런 고기는 없어서 못 먹는 거라니까? 보약이야 보약~” 두툼한 고기 살을 씹으며 팀장님이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옆에서 한국말이 서툰 외국인 직원도 거들었다. “실짱님아 맛있어, 맛있어”
“역시 우리 농장 돼지가 맛있다니까? 최고 최고!!”, “제가 이놈한테 사료를 얼마나 정성껏 줘 가며 키웠는데요. 미안하다 돼지야 맛있게 먹어서 미안하다. 흑흑~” 왁자한 웃음소리가 매캐한 연기를 타고 농장 마당을 가득 채웠다. 직원들 눈을 피해 슬쩍 뱉어버릴까 싶었지만, 꾹 참고 수행하듯 고기를 씹었다. 석쇠에서 갓 구워내서인지 육질이 보들보들했다. 돼지고기가 이렇게 쫄깃하고 고소한 거 였었나? 싶었다. 맛있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었던 바로 그 ‘맛있는 맛’이 입안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목으로 술술 넘어가 버렸다. 어느덧 내 젓가락은 다음 고기를 향해가고 있었다.
잠시 후 외근을 나갔던 부장님이 젓가락을 챙겨 들고 합류했다. “많이들 먹었어? 돼지고기는 역시 머리 고기가 최고라니까? 근데 귀는 따로 좀 챙겨 놨지?” 부장님의 말에 직원들 얼굴 위로 묘한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앞에 놓여있는 접시를 가리키며 “그거 김 실장님이 다 드셨잖아요” 이구동성으로 외쳐댔다.
순간 개업 집 잔치 상위에 올려져 있던 돼지머리가 떠올랐다. 목이 잘린 채 웃고 있는, 입에다 지폐를 잔뜩 물고 있는 그 돼지머리 말이다. 그리고 그 돼지머리 위로 뾰족하게 솟아있던 귀와 잔털이 수북한 귓구멍이 눈에 어른거렸다. 갑자기 뻣뻣하고 시커먼 털을 보았을 때처럼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내 접시에는 고기 한 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날 집으로 오는 내내 돼지 귀 두 개가 위장 속에서 마구 펄럭대는 것 같았다. 잘게 씹힌 돼지 귀가 목젖부근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아 매슥거리고, 매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