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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 Apr 17. 2022

자기 인식 – 리더십 개발의 출발점

최근 챙겨보는 드라마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입니다. 종합병원을 배경으로 의사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이기에 수술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다른 의료 드라마에서도 그렇듯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의사들이 공들여 손을 씻으며 소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너무 당연한 듯 보이는 손씻기와 ‘소독’이란 개념은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처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병원에서는 출산 후에 산욕열에 의한 산모들의 사망이 심각했는데, 이그나즈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 1818~1865)라는 헝가리 출신의 의사는 그 원이이 시체를 부검하던 수련의에 의한 감염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후 의사들의 손소독 규칙을 도입하여 산욕열로 인한 사망률을 10~35%에서 0~2%까지 감소시킬 수 있었습니다. 당시 다른 의사들은 산욕열의 원인을 악취 등의 다른 이유에서 찾았던 반면 제멜바이스는 그 원인이 자신들일 수 있다고 의심하였고, 결국 산모들의 구세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조직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리더에게도 이러한 관점과 태도가 필요합니다. 문제의 원인이 다른 사람이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말과 행동일 수 있다는 ‘자기 객관화’의 태도와 자기 인식입니다.

리더의 자기 인식은 덕목이 아니라 필수적인 스킬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스킬이라는 의미는 훈련을 통해 익힌 구체적인 행동이라는 뜻입니다. 자기 인식이 높은 리더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상대방이나 제3자의 눈으로 객관화해서 관찰하고 스스로 피드백을 통해 그 행동을 수정하거나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자기 객관화의 과정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데, 가족, 동료, 친구, 고객 등의 구체적이고 솔직한 피드백이 핵심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 나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과의 역동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발견하게 되고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특별히 리더들에게는 자신의 말과 행동의 영향력이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에 놀라게 되지요. 실제 이러한 자기 인식 과정은 때로 직면하기 힘들고 때로 몹시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자기 행동의 약점 또는 수정할 것을 직면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고 직급이 높아지거나 책임이 많아 질수록 더 어려운 작업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상사가 후배에게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변화를 공약하는 것이 결코 익숙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몇 해전, 저는 아내와 두 아이들이 제가 없을 때 저를 지칭하여 부르는 별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스스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아버지라는 ‘자기 컨셉’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표현하는 아이들로 키우자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두 아이들과 함께 홈스쿨링을 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업무의 독특함으로 수년간 재택 근무 형태로 일하며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던 환경이었기 때문에 더욱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사실 가족들은 절반은 재미로 한 말이었지만 저는 며칠을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10년 이상 글로벌 리더십 트레이닝회사와 외국계 제약사에서 HRD분야의 조직 컨설팅과 리더십 개발 전문가로 커리어를 쌓아온 저로서는 그간 쌓아온 리더십 전문가라는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고, 결론적으로 정직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고민고민 끝에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제가 가진 스스로에 대한 컨셉이나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는 저의 선한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족들 특히 아이들에 대한 저의 말과 행동은 ‘짜증 대마왕’으로 불린다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의 의도와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인 컨셉과는 전혀 상관없이 제 주변 사람들에 의해 관찰된 저의 말과 행동은 완전히 다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몇 달 아닌 몇 년에 걸친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 객관화와 점검의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돌아보면 그때의 경험이 저에게는 자기인식에 대한 중요한 모멘텀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가족들과 대화에서 저의 말과 행동에 대한 피드백을 받습니다. 특히 10대 후반의 딸이 돌직구를 날릴 때면 여전히 울컥하고 화가 나고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함께 일하는 팀원에게도 솔직한 피드백을 요청하거나 팀원의 피드백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일단 나의 성장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정중하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혼자서 나중에 다시 생각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그 피드백을 기억하고 다음 미팅과 대화에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기 위해 아주 조그만 변화를 시도합니다. 그런 시간과 노력이 쌓이게 되면, 나에게 피드백을 준사람과의 신뢰의 정도나 협업을 위한 팀워크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튼튼해짐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리더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팀원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팀원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말과 행동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나의 리더십 개발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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