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다정해 지기로 했다.
누군가의 발자국은 마음에 울림을 준다. 낯선 질감으로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혼자일 때,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을 때, 생각이 비어있을 때였다. 향이 강하지 않은 차를 한 잔 준비하며 무슨 일로 온 건지 궁금했다. 차를 내려놓는 손은 살짝 떨렸다. 봤는지 못 봤는지, 그는 옅은 미소만 지으며 찻잔만 응시하고 있었다.
침묵.
말이 없었다. 나는 그가 방문한 이유를 묻지 못했고, 그는 나를 찾아온 이유를 굳이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찻잔을 만지고, 차를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는 일상의 행위들을 의연한 척 해내고 있었다. 나만큼 그도 떨었을까. 그건 모르겠다. 다만 나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차를 한잔 더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물을 새로 끓이는 동안, 그는 일어나 창가로 갔다. 커튼을 여니 햇살이 그림처럼 쏟아진다. 그는 햇살을 한번 보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다행이었다. 햇살이 쏟아붓는 거실에서 웃고 있는 그를 보는 일은 숨 막히는 일이었다. 어떤 소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그의 웃음에 적응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향이 강한 차를 꺼냈다.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왔고, 나는 여전히 떨리는 손으로 찻잔을 내려놨다. 이번에는 확실히 알았다. 그는 찻잔이 아닌 나의 손을 보고 있었다. 나의 떨림을 들킨 것이다. 그래도 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전혀 서두르지 않았고, 서두르지 않기로 작정한 듯했다. 거실에 가득 들이찬 햇살에 차 향기가 스며들었다. 향기를 머금은 태양은 저녁노을보다 찬란한 색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한 번도 그렇게 황홀한 태양빛을 본 적이 없었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너무도 익숙한.
"안녕..."
결국,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안녕!"
오래되고 낯선 나.
나도 그를 따라 똑같이 웃었다.
나는 나에게 다정해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