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혜 Jun 29. 2023

커피를 마시려다가


마시는 행위를 좋아한다. 들숨과 날숨처럼. 나의 삶에선 떼려야 뗄 수 없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시는 것에는 굳이 차별을 두지 않는다. 이를테면 국화차, 보이차, 홍차, 녹차, 캐모마일, 페퍼민트, 메리골드, 코코아, 생강차, 쌍화차, 수정과에  이르기까지. 이렇듯 마시는 행위 자체를  즐기는 편. 이 정도면 찻집을 운영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아,   손꼽히게 좋아하는 음료를  잊을뻔했다. 맥주 커피.


한편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름 체중을 염두에 두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이조절을 철저히 지킨다던가 , 여러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던가. 누가 들어도 납득이 되고 알만한 다이어트를 실천하고 있지만.

나는 좋아하는 맥주 마시를 나름 제한한다. 내 딴  꽤나 눈물 나는  노력을 하고 있단 말이다. 대략 지난 2주. 대단한 결심을 하고 저녁마다 쌀밥대신 샐러드를 먹기도 하는 등. 나름 혹독한 식이조절을 했다.

하나 체중이 1kg도 변하지 않는 신기하고 기가 막힐 노릇의 경험을 하게 됐다.


어제저녁.

"나 , 요즘 밥 안 먹은 거 알지? 밤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그런데 있잖아. 몸무게가 하나도 줄지 않았더라, 이게 말이 돼?" 몹시 격앙된 목소리로 용(남편)에게 말했다.

" 밥을 그냥 먹어. 맥주랑 과자를 먹지 말고."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건조하기만 했다.

음, 아무래도 어쩌면 눈물 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얄팍한 생각. 그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을는지도.


어쨌든 나는 마시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하루를 채워 보내는 사람이므로. 아침에 먼눈을 뜨면  커피머신으로 에스프레소를 내리고 우유 섞어 마신다. 이로써 매일 하루가 시작된다.


한데 오늘아침. 머신이 심상치 않다.

내 커피 기계는 전면 왼쪽엔 에스프레소 추출, 오른쪽엔 아메리카노 추출. 버튼 두 개가 나란히 있다. 작동 시엔 분명 에스프레소 추출  버튼에만 불이 들어와야 하는데 , 아메리카노추출 버튼에도 불이 들어와 양쪽이 번갈아 쉼 없이  깜빡이는 터. 장대비가  내리는 이른 아침.  정신없이 내리는 비탓에 커피머신도 함께 정신이 없어진 건가 ,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가며 머릿속으론 쿠팡앱을 열고 머신 검색해본다. 고장인가, 그렇다면 이번에도  하얀색 머신을 사야 하나, 당장 주문할까,

빠르면 오늘 오후 8시 이전에 배송받을 수 있을터. 물론 머신이 하나 더 있기는 하나 , 그건 주로 남편이 즐겨마시는 아메리카노 추출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프레소로는  별로다. 고소하면서도 기분 좋은 쓴맛이 안 난다.

나는 까다로운 입맛은 아니지만 , 커피에는 이상하리만치 개미눈곱 같은 취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결제를 바로 할까, 음, 아니다. 일단 고장인지 아닌지  파악부터 하자, 정신없어진 커피머신을 따라 나도 이것. 저것 정신없이 눌러본다. 초기화해 보자는 생각으로 전원을 껐다 켜보기도, 아무래도 안 되는 듯하다. 빠른 포기 전.

마지막으로 정말 조금 귀찮지만  네이버에 검색을 한다.

내일 아침까지 카페라테 마시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주문을 빨리 해야 될 텐데 라는 마음에  조급하기만 하다.

귀찮은데. 시간 낭비 말고 그냥 바로 주문해 버릴까,


하나 이번엔 설명서를  캡처한 다음. 차근차근 따라 해 본다.

이거 안되는데, 어쩐 일인지 다시 한번 읽어보니 주의사항이 있다. 이미 예열된 커피머신이 식은 다음에 작동을 해야 된단다. 다시 한번 친절한 안내 대로.

어라, 됐다. 왼쪽 에스프레소 추출버튼에만 드디어 불이 켜진다. 석회제거를 위해 머신 스케일링을 해야 했던 터.

조금 피로하긴 했, 의외로  꽤나 간단했기 때문에 소름이 돋을뻔했다.


새로운 것을 귀에 담고 몸소 실천하며  익히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한마디로 그냥 조금 나태하다는 말이다. 와중에 글을 읽는 것에는 어릴 적부터  흥미를 가져. 여태 잃지 않고 있으니 이에 마냥 감사할 따름이며.

사람은 늙어 죽도록 배운단다. 세상은 넓고 새로운 것은 날마다 많으니 나이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의미일 테다.  어쩐지 새로운 것을 여간해서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루하기만 한 나는.

 오늘 이를 스스로 깨내면서 또 다른 삶의 꿀팁 하나를 얻었다. 이는 또한 대략 10만 원 정도의 지출을 막았다는 큰 의미 이기도.  장대비가 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아침.

커피를 마시려다가. 마흔한 살의 나는 이렇게 문득 하나 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머릿속 지우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