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숨을 쉴 때
“정전으로 고립된 산속 저택, 깨진 창과 던져진 돌 사이에서 수연과 지훈이 함께 문을 잠그는 밤, 진짜 균열은 벽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어둠은 생각보다 빨리 두꺼워졌다.
잠에 빠지기 직전까지도, 나는 이 집이 내는 소리를 귀로 세고 있었다.
마당 쪽에서 한 번,
복도에서 두 번,
멀리 지하에서 한 번.
집이라는 생물의 심장박동처럼,
낮에는 잘 들리지 않던 것들이 밤이 되자 순식간에 또렷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소리가 전부 꺼졌다.
눈을 떠보니, 방 안이 이상하게 고요했다.
전등은 꺼져 있었고,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빛조차 없었다.
달빛도, 마당 쪽 조명도, 어디선가 스며들던 희미한 불빛들도-
마치 한 사람의 손에 의해 모두 동시에 차단된 것처럼.
정전이었다.
휴대전화를 찾으려 손을 더듬으며
나는 방금 전까지의 꿈과 방금 전까지의 잠을 동시에 떠올렸다.
꿈에서 나는
다시 그 벽 앞에 서 있었다.
금빛 균열은 더 넓어져 있었다.
벽을 타고 올라간 금빛이, 이번에는 천장까지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로
어디선가 손이 나와
문손잡이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리고 있었다.
그 손은
남편의 손보다 작았고,
지훈의 손보다 조금 더 가늘었다.
나는 꿈속에서조차
그 손이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사실만,
이상하게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하…”
숨을 한 번 길게 내쉬었다.
심장이, 방 안 고요 대신 내 귀를 두드렸다.
그때였다.
툭.
문틀이 아주 작게 울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그렇다고 그냥 나무가 뒤틀리는 소리라고 넘기기에는
너무 정확한 리듬의 소리였다.
툭.
툭.
아이의 발자국을 세로로 눕힌 것 같은 속도.
문 앞까지 와서, 다시 한 번 서성이는 것 같은 간격.
나는 침대 위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몸 전체를 귀처럼 세웠다.
그리고-
“수연 씨.”
낮게 깔린 목소리가 복도 끝에서 들려왔다.
이번엔 분명히, 사람 목소리였다.
아주 익숙하게 된, 이 집의 다른 남자.
지훈.
“괜찮아요?”
문틈 아래로 손전등의 둥근 빛이 스쳤다.
아까와 비슷한 장면인데,
이번에는 방 안의 어둠이 더 두꺼워진 탓인지,
그 빛이 조금 더 절실해 보였다.
“정전이에요?”
나는 목소리를 최대한 평온하게 만들며 물었다.
“네. 산 아래까지 같이 나간 전기 라인이라…
마을도 잠깐 같이 꺼졌대요.
발전기가 돌아가긴 할 텐데,
돌아가기 전까지는 조금 어두울 거예요.”
그의 설명은 침착했지만,
말 끝에 묻은 작은 긴장은 숨기지 못했다.
“관리인 아저씨는요?”
“지하 쪽 전기실 보러 내려갔어요.
근데 아까…”
지훈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이었다.
“전기 나가기 직전에,
CCTV 화면이 한 번에 전부 흔들렸대요.”
“한 번에요?”
“네.
마당, 울타리, 차고, 현관 쪽 카메라까지. 동시에.”
그 말만으로도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올라왔다.
어디선가 하나가 꺼지고,
또 어디선가 하나가 오류를 일으키며 깜빡거리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정돈된 타이밍.
“문, 잠깐 열어줄 수 있어요?”
지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문까지 걸어가면서도
열쇠를 바로 돌리지 못했다.
손잡이에 닿은 손바닥이
살짝 젖어 있었다.
“지금 복도에… 지훈 씨 맞죠?”
내가 묻자,
밖에서 짧은 숨소리가 한 번 섞였다.
“…네. 저예요.”
그는 손전등을 문틈 아래로 더 가까이 가져다 댔다.
빛이 문 아래에서 얇게 번졌다.
“제가 아닌 목소리가 부르면 버티라고 해놓고,
본인이 확인부터 안 받고 문 열 뻔했네요.”
조금 긴장된 농담이었다.
나는 겨우 그 말에 안도의 웃음을 한 번 내쉬고,
잠금장치를 풀었다.
문이 반쯤 열리는 순간,
어둠 속에서 앉아 있던 심장이
조금 내려앉았다.
정말로,
지훈이었다.
⸻
복도는 방보다 더 어두웠다.
손전등의 좁은 원형 빛이 아니었다면
계단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다.
“1층으로 내려가요.
창문이랑 문 단속부터 확인해야 해요.”
지훈은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관리인 아저씨 혼자 지하에 있는데…
우리 둘이 위를 봐줘야죠.”
“위험한 건… 아래가 아니라 위일지도 모른다는 거네요.”
내 말에
그는 잠깐 웃었다.
“그래서 지금, 같이 있는 거잖아요.”
그는 손전등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을 살짝 내밀었다.
“발 밑 잘 안 보일 거예요.
계단 내려가다가 미끄러지면 더 큰일이니까.”
나는 그 손을 잠깐 바라봤다.
꿈속에서 보았던 손.
금빛 균열 위를 천천히 쓸어내리고 있던 손.
현우의 것과도, 꿈의 것과도 다른,
지금 이 순간 눈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실제의 손.
심장이, 방향을 묻지 않고 먼저 반응했다.
나는 결국,
그 손을 잡았다.
살짝 거칠어진 손바닥과
조심스럽게 힘을 배분하는 손가락.
“너무 꽉 잡진 않을게요.”
그가 낮게 말했다.
“그 대신,
놓지는 않을게요.”
그 말은
이 계단 상하 몇 칸만을 두고 하는 약속이라고 보기엔
조금 더 넓게 느껴졌다.
⸻
계단을 내려갈 때,
천장 쪽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한 번 났다.
끄으윽-
나무가 뒤틀리는 소리와도 비슷했고,
멀리서 누군가 숨을 죽이며 기침을 참는 소리 같기도 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췄고,
그 순간 지훈의 손이 조금 더 단단히 내 손을 감쌌다.
“위만 보지 말고,
지금은 발부터 보세요.”
그는 일부러 시선을 아래로 고정시키듯 말했다.
“무서우면 사람은
보고 싶지 않은 방향만 보게 되거든요.”
그 말은 이상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그의 손전등이 비치는 좁은 계단 앞만 바라봤다.
발끝이 딛는 칸,
다음에 내려갈 칸,
그리고 그 바로 아래 또 한 칸.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현실이 조금씩 좁고 구체적인 형태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1층에 다다랐을 때,
첫 번째 소리가 났다.
쿵.
현관 쪽에서,
누군가가 문을 한 번 세게 건드린 듯한 소리.
나는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
“바람… 이겠죠?”
내 목소리는 스스로 듣기에도 설득력이 없었다.
“바람이면 좋겠네요.”
지훈이 짧게 대답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해요.”
⸻
거실은,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도
어딘가 희미하게 밝았다.
모니터 때문이었다.
CCTV 화면이 네 개,
각각 다른 방향의 어둠을 떠다니고 있었다.
관리인이 떠날 때 켜놓고 간 모니터는
전기가 떨어지는 순간 한 번 깜빡였다가,
비상 전원을 잡고 다시 살아난 모양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살아난 카메라가 너무 적다는 데 있었다.
“이상하네…”
지훈이 모니터에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4분할 화면 중
1번, 3번은 완전히 까맣게 죽어 있었고,
2번은 줄무늬 같은 노이즈만 가득했다.
오직 4번,
현관과 마당 일부가 겹쳐 보이는 카메라만이
불안정한 화질로 깜빡이고 있었다.
바로 그 4번 화면 속에서-
쿵.
아까 우리가 들었던 소리가
조금 늦게,
영상으로 되풀이되었다.
문이 흔들렸다.
소리와 진동이 끝난 뒤에도
현관문 손잡이는 멈추지 않고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바람…”
내가 다시 중얼거리는 동시에,
화면 한쪽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번졌다.
정말로,
눈이 아플 정도로.
한 프레임이 통째로 깨지는 듯했다.
“또 노이즈인가요?”
“노이즈면…”
지훈이 리모컨으로 시간을 한 프레임씩 되감으며 말했다.
“이렇게 모양이 잡히진 않죠.”
한 장면에서
흰 번짐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 번짐 속에,
무언가의 윤곽이 숨어 있었다.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흐릿하고,
짐승이라고 하기엔 너무 곧은 선.
어깨가 있고,
머리가 있고,
길지 않은 팔이 옆으로 내려와 있는 모양.
하지만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눈만 두 개,
과장된 흰 점 두 개가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지훈의 옆 소매를 꽉 잡았다.
“그…거, 사람이에요?”
“사람이면…”
그가 천천히,
모니터와 창문 사이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지금 이 집의 문을 두드린 사람이라는 뜻이겠죠.”
마치 대답이라도 하듯,
바로 그때
현관 쪽에서 다시 소리가 났다.
이번엔 이전보다 더 크게.
쾅!
문이 안쪽으로 한 번 크게 들썩였다.
벽걸이 액자가 살짝 비틀리며 흔들렸다.
“뒤쪽 문 먼저 확인해요.”
지훈이 재빨리 말했다.
“누가 앞을 끌고 있을 때
뒤가 비어 있는지 보는 게 빠르니까.”
그는 손전등을 들고 먼저 움직였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뒤를 따라붙었다.
앞에서 손전등이 흔들릴 때마다
그가 한 손으로 뒤로 내민 손이
내 쪽을 향해 짧게, 그러나 정확하게 되돌아왔다.
“여기, 발 조심.”
“여긴 카펫 경계.”
그가 작은 장애물 하나하나를 미리 말해줄 때마다
공포 속에서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안정감이 어깨에 겹겹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문득,
현우와 이 집 생활에 대해 나눴던 통화들이 떠올랐다.
‘산은 조심해.’
‘문단속 잘 해.’
‘밤에 너무 늦게 돌아다니진 마.’
그는 늘 정확하게 조언했고,
문장마다 걱정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문을 향해 움직이는 이 순간,
“조심해”라고 말하며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은
현우가 아니라 지훈이었다.
그 사실이
공포와 죄책감 사이 어딘가에서
서늘한 감각을 만들고 있었다.
⸻
뒷문 근처에 다다랐을 때,
집의 숨소리가 조금 달라졌다.
“들려요?”
지훈이 속삭이듯 물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문 바로 너머,
아주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가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축축한 옷자락이 벽을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돌 위를 밟는 발소리 같기도 했다.
툭.
이번엔 뒷문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앞문을 두드리던 것이
이제는 집을 한 바퀴 도는 것처럼 들렸다.
“잠금장치는요?”
나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려오면서 한 번 봤어요.
잠겨 있어요.”
지훈이 답했다.
“근데…”
그는 손전등을 끄지 않은 채
조심스럽게 가장자리 틈을 훑었다.
“문 사이에,
이상한 게 끼어 있어요.”
“이상한 거요?”
“…손가락 두께만 한 나뭇조각.”
그 한마디만으로도
목덜미에 식은땀이 돋았다.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도록
누군가 일부러 끼워놓은 것 같은 상상.
지훈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가 문을 안쪽으로 조금 더 당길게요.
그 사이에, 수연 씨가 나뭇조각 빼낼 수 있겠어요?”
“제가요?”
“두 사람이 같이 해야 빨리 끝나요.
혼자서 문도 잡고 조각도 빼면
시끄러운 소리가 날 수도 있고…”
그는 눈길을 잠시 아래로 떨구었다.
“바깥에서 지금…
우리가 문 만지는 소리를 듣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공포는,
이성보다 빠르게 의미를 이해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는 손전등을 잠시 끄고
한 손으로 문손잡이를 잡았다.
“셋에 맞춰서 당길게요.
하나, 둘, 셋.”
문이 안쪽으로 살짝 움직이는 순간,
나는 재빨리 틈 사이로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과,
축축한 나무결이 동시에 손가락에 닿았다.
‘축축하다’는 감각이
뇌 속으로 먼저 치고 들어왔다.
비에 젖은 나뭇조각.
혹은,
아까 우리가 본 영상 속 어둠이
한 번 만지고 간 나무.
“조금만 더… 당겨요.”
내가 속삭이듯 말하자
지훈의 팔 근육이 응답하듯 단단해졌다.
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을 만큼 긴장된 틈,
그 사이에서 나는 나뭇조각을 두 번 비틀었다.
똑.
조각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안쪽으로 조금 더 깊게 닫혔다.
딱-
잠금장치가 정확히 맞물리는 소리가
이상하게 크게 들렸다.
그와 동시에,
바깥에서 한 번 더 소리가 났다.
쿵.
이번엔 앞도 뒤도 아닌,
집 어느 중간 어딘가에서 들리는 소리.
마치 우리가 문을 완전히 닫는 순간을
어떤 존재가 함께 확인이라도 한 듯한 타이밍.
“됐어요.”
나는 손가락을 서둘러 빼내며 속삭였다.
“잠겼어요.”
“잘했어요.”
지훈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이제 최소한,
우리가 먼저 열지 않는 한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을 거예요.”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갑자기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쨍그랑!
⸻
우리는 거의 동시에 몸을 돌렸다.
소리는 거실 쪽에서 났다.
손전등을 다시 켜고 달려가자,
현관 옆 작은 창문 하나가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깨져 있었다.
유리 조각이 마룻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찬 공기가 틈 사이로 거칠게 밀려들고 있었다.
“이건 바람이 아니네요.”
지훈이 낮게 말했다.
“돌…”
내가 중얼거렸다.
창틀 안쪽에는
길게 흙이 묻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무언가가 굴러 들어왔다가 튕겨 나간 흔적.
발치 쪽에는
반쯤 젖은 돌멩이 하나가 굴러 있었다.
나는 그 돌 옆의 유리 조각을 밟을 뻔하다가
순간 발을 빼면서 균형을 잃었다.
“아…!”
몸이 앞으로 쏠렸다.
마룻바닥 위로 미끄러지는 느낌과 동시에,
손목이 누군가에게 잡혔다.
강하게, 그러나 아프지 않을 정도의 힘.
지훈이었다.
그가 한 손으로 내 손목을 붙잡고,
다른 손으로 허리 뒤쪽을 받쳐 세웠다.
몸이 공중에서
반쯤 멈추었다가 다시 제자리를 찾는 기묘한 순간.
숨과 숨이
위태롭게 얽혀 있는 거리.
손전등 빛이 둘 사이를 비스듬히 가로질러 지나갔다.
“괜찮아요?”
그의 숨소리가
내 얼굴 가까이에서 들렸다.
“유리, 안 밟았죠?”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도.”
“아마도는 안 돼요.”
그는 나를 천천히 세워준 뒤,
조심스럽게 내 발을 살폈다.
맨발과 슬리퍼 사이로
유리 조각이 끼어 있지 않은지,
피가 배어 나오지 않았는지.
“괜찮아요.”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고개를 들었을 때,
우리는 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었다.
정전 속,
손전등 하나에 의지하고 서 있는 두 사람.
바깥에서 누군가 돌을 던져 창을 깨뜨렸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그 공포로 인해 몸을 붙이고 서 있는 지금의 거리 사이에
이상한 전류가 흘렀다.
“이제…”
나는 일부러,
의도적으로 시선을 창 쪽으로 돌렸다.
“저 돌은,
관리인 아저씨 돌아오면 보여주는 게 좋겠죠?”
“네.
그리고 파출소에도.”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은
하나뿐이니까.
누가 언제 올라왔는지,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확인해 달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의 말은
단지 방어적인 조치 이상의 의미를 품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보고 느끼는 이 공포가
우리 둘만의 상상이 아니라
실재한다는 증명.
실재하는 위협 앞에서
우리가 “같은 편”이라는 확인.
그때,
지하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쿵. 쿵.
규칙적이고,
무겁고,
어른의 발자국 소리.
손전등 빛이 자동으로 계단 쪽으로 향했다.
“누구…”
내가 말도 채 끝내기 전에
지훈이 먼저 외쳤다.
“아저씨예요?”
잠시 정적 뒤,
낮은 목소리가 정면으로 돌아왔다.
“나 말고
누가 이 시간에
그쪽 계단으로 올라가겠어요.”
관리인이었다.
⸻
그가 1층으로 올라왔을 때,
이마와 팔에는 흙이 조금 묻어 있었다.
“전기실 쪽,
누가 손댄 흔적은 없어요.”
그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근데…”
또 하나의 “근데”가
오늘 하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전기 나가기 직전에
한 번 더 전압이 요동쳤더라고요.”
“한 번 더요?”
지훈이 물었다.
“아침에 카메라 프레임 깨진 시간대랑
거의 비슷한 시각이에요.”
관리인은 거실 한가운데 서서
깨진 창 쪽을 돌아보았다.
“이건 또 뭐고요.”
“돌이에요.”
지훈이 대답했다.
“바깥에서 던진 것 같아요.
안쪽으로 깨졌으니까.”
관리인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파출소에 전화하죠.”
지훈이 말했다.
“그래야죠.”
관리인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그러나 몇 번이고 통화 버튼을 눌러도
연결음은 들리지 않았다.
“아까까지는 됐는데…”
그가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은 신호가 안 잡히네요.
여기서-”
관리인이 현관 쪽으로 몇 걸음 옮겨가자
신호 표시가 한 칸 떠올랐다가
다시 사라졌다.
“집 안에서,
어딘가 한 지점에서만
신호가 붙는 것 같네요.”
지훈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산 자체가 가로막는 건지,
아니면…”
“아니면 이 집이
우리를 붙잡고 있는 건지.”
관리인이 농담 같은 말을 던졌다.
하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결국,
집 한쪽 모서리에서 겨우 신호를 잡아
관리인은 파출소에 한 번,
마을 관제센터에 한 번 전화를 걸었다.
“돌 던진 것 같고,
창 깨진 거 확인했다,
오늘 새벽에 산길 위의 차량도 다시 확인해 달라…”
그는 짧게 상황을 설명했다.
통화를 끝낸 뒤,
관리인은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
“오늘 밤은
셋 다 1층에서 있는 게 좋겠어요.”
“1층이요?”
“네.
위에서 무슨 일이 나면
내려오는 데 시간 걸리잖아요.
차라리 같은 층에서
서로를 보고 있는 편이 낫죠.”
그의 말은 현실적이었다.
그러나 1층에 모여 앉아 있는 상상을 해보는 순간
나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위에서 내려오는 발자국,
복도 끝에서 다가오는 기척,
문틈 아래로 스며드는 산의 그림자.
모든 것이
한 층 아래로 내려와
우리와 같은 높이에서 숨을 쉬게 될 것 같은 느낌.
지훈이 그 불안을 읽기라도 한 듯
조용히 말했다.
“관리인 아저씨는 여기서
CCTV랑 전화를 계속 보시고…”
그가 관리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랑 수연 씨는
창문 깨진 데 임시로 막을 수 있는 거 찾아볼게요.
박스나 두꺼운 판 같은 거요.”
“지하 창고에
뭔가 있긴 할 텐데…”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같이 내려가요.
전기실 옆 창고에 판자 몇 개 세워뒀어요.”
이 집의 위기를 막는 일이
어쩌다 자연스럽게
지훈과 내 몫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조금 이상하고,
조금 당연했다.
⸻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위층 계단보다 더 차가웠다.
공기가 다르게 식어 있는 느낌.
오랫동안 볕이 닿지 않은 돌의 온도.
손전등 빛이 계단을 타고 내려갈 때마다
벽에 붙은 작은 물방울들이
살짝 반짝였다.
“여기,
어제 물 넘친 자리죠?”
나는 어제의 폭우를 떠올렸다.
지하실에 고여 있던 물,
그 위로 떠다니던 흙과 잔가지들.
“네.
오늘 낮에 웬만큼은 다 말랐는데…”
지훈이 벽을 한번 손으로 짚어보며 말했다.
“어쩐지,
물이 다 마른 자리를
다른 무언가가 대신 차지한 것 같은 공기가 나네요.”
그의 표현은 모호하면서도 기묘하게 정확했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
전기가 빠져나간 자리,
설명할 수 없는 기척이 들어와 앉을 자리가 생긴 밤.
지하실 문을 열자
시멘트 바닥 냄새와 함께
촉촉한 먼지 냄새가 올라왔다.
창고는 생각보다 넓었다.
기다란 판자들,
접어 놓은 철제 선반,
비상용 식수 상자,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가구들.
“여기요, 이만하면 되겠죠.”
지훈이 길이 적당한 판자 두 개를 골라 들었다.
“저건 제가 들게요.”
나는 상대적으로 가벼워 보이는 박스 하나를 집어 들었다.
“손전등은…”
“제가 입에 물고 갈까요?”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그럼 말 못 하잖아요.”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손전등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지하 계단은
대충 위치 아니까
올라가는 동안만 눈에 힘 좀 줘보죠.”
“그게… 가능한가요?”
“무서울 땐
사람 눈이 잘 보이더라고요.”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
최소한,
지금 내 눈은
어둠 속에서 그의 실루엣만큼은
분명하게 따라잡고 있었다.
계단을 다시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말이 없었다.
대신,
서로의 숨소리가
계단 칸마다 하나씩 올라붙는 느낌이었다.
⸻
깨진 창 앞에 판자를 고정시키는 동안,
우리는 거의 붙어서 움직였다.
한 사람이 손으로 판자를 지탱하면
다른 사람이 못을 대고 망치를 두들겼다.
망치질 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
쿵.
쿵.
쿵.
조금 전까지
문을 두드리던 소리와 거의 비슷한 리듬이었다.
“이 소리…
바깥에서 듣고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들으면 좋죠.”
지훈이 대답했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다는 걸 알면,
적어도 쉬운 상대로 보진 않을 테니까.”
‘쉬운 상대’라는 단어가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공포의 대상이,
언젠가부터 이 집에 사는 우리가 아니라
집 밖에서 다가오는 어떤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이 집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망치질이 끝나고,
판자 두 장이 창틀과 벽 사이에 꽉 끼워졌을 때
비로소 찬 공기의 직격탄이 조금 누그러졌다.
“완벽하진 않아도,
적어도 돌은 더 이상 안 들어오겠네요.”
지훈이 판자를 한 번 더 손으로 눌러 보며 말했다.
“이제…”
그가 말을 멈추고
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조금은 덜 무서워요?”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밖이 아닌 안쪽을 바라보았다.
CCTV 화면에는 여전히
흐릿한 어둠의 입자만 떠다닐 뿐이었다.
현관문은 잠겨 있고,
뒷문도 잠겼고,
창문은 임시로나마 막혀 있었다.
“조금은요.”
나는 솔직히 말했다.
“혼자는 아니니까.”
그 한마디에
지훈의 표정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혼자가 아니라는 건
어떨 땐 더 위험한 말이기도 한데…”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적어도 오늘은
좋은 쪽으로 받아들일게요.”
⸻
전기가 돌아온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비상 전원이 제대로 돌아왔는지,
집 안 조명이 하나씩 켜졌다.
형광등이 다시 살아날 때의 특유의 웅- 하는 소리가
이 밤의 공포가 어느 정도 현실 쪽으로 되돌아왔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관리인은 다시 CCTV 각도를 조정했고,
마을 관제센터에서는
“당분간 산 쪽 도로를 집중해서 보겠다”는 답을 보내왔다.
“파출소에서,
오늘 새벽 올라갔던 차 흔적 다시 본다네요.”
관리인이 말했다.
“타이어 자국이 좀 애매해서
확답은 어렵다지만…”
확답이 어렵다는 말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과 비슷했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이 집을 모니터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포의 방향이 조금 분산되는 느낌이었다.
“이제… 올라가서 쉬어도 되겠죠?”
내가 조심스럽게 묻자
관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같이 올라가요.”
지훈이 말했다.
“위층 복도랑 창문 다시 한 번 보고.”
이 집에서 움직이는 모든 동선이
‘혼자’가 아니라 ‘함께’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 변화가
이 집 때문인지,
위협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 둘 사이의 무언가 때문인지
스스로도 구분할 수 없었다.
⸻
2층 복도는
아까보다 조금 덜 어두웠다.
전기가 돌아왔지만
우리는 크게 불을 켜지 않았다.
천장등 대신,
벽에 박힌 작은 조명들만 켜둔 상태.
문이 줄지어 선 복도를
노란빛이 어른거리며 비추고 있었다.
“아까…”
내 방 앞에 다다랐을 때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가 문 앞에서 멈춘 것 같았어요.”
지훈이 나를 바라보았다.
“발소리요?”
“네.
아까…
정전되고 나서 한참 안 돼서.”
나는 그때 들었던 발소리의 리듬을
머릿속에서 다시 세어 보았다.
너무 무겁지도,
너무 가볍지도 않은 소리.
“저였을 수도 있겠네요.”
지훈이 말했다.
“당신 방 앞에 와서
잠깐 서 있었으니까.”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때는,
지금처럼 말 안 걸었어요.”
“문 두드릴까 말까
고민하느라요.”
그는 거리낌 없이 인정했다.
“혼자 있는 게 무서울까 봐.
근데 또,
제가 괜히 더 무섭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어서.”
그 말은
위로 같기도 하고,
자기고백 같기도 했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물었다.
“오늘은…
결론이 난 건가요?”
“결론이요?”
“문 두드릴까 말까 하던 거요.”
지훈이 짧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려놓았다.
“오늘은…
두드렸잖아요.”
그의 대답은
이상하게,
공포의 밤을 함께 보낸 두 사람의 결론 같았다.
“그리고 같이 문 잠갔고,
같이 창문 막았고,
같이 집을 지켰고.”
그가 말을 이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우리가 같은 쪽에 서 있었다는 건
확실한 결론이죠.”
그 말은 안전했고,
그 안전함이 오히려 위험했다.
“현우 씨가 알면
싫어하겠죠.”
그가 아주 낮게 덧붙였다.
나는 심장이 한 번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왜요?”
“당신이 오늘 밤
누구랑 같은 편이었는지 알게 되면요.”
그의 눈빛이
잠깐,
너무 솔직해졌다.
나는 시선을 피해
문손잡이를 바라봤다.
내 방 문손잡이,
금빛 균열이 뻗어 있는 유리창,
그리고 이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보이지 않는 틈.
“오늘은…”
나는 겨우 한 마디를 찾았다.
“같은 편이어도 괜찮았던 것 같아요.”
그 한 마디로
공포와 안도, 죄책감과 설렘이
어설프게 한 곳에 묶였다.
지훈은 그 말을 듣고
웃지도,
표정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대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만.”
그가 마침표를 찍듯 말했다.
“오늘 하루만 그랬다고
나중에 말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 말 속에는
이미 ‘오늘만’이 아닐 거라는 예감이
조용히 숨어 있는 것 같았다.
⸻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돌렸다.
딱-
오늘 여러 번 들었던 소리임에도,
여전히 조금 안심이 되는 소리였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유리를 바라봤다.
오늘 낮에 찍어두었던 사진 속 금빛 균열이
현실의 창에도 그대로 있었다.
아니,
조금 더 넓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빛을 반사하는 면적이
어제보다,
그제보다,
조금 더.
산 아래 어딘가에서
이 집을 올려다보던 눈동자들,
집 안 어딘가에서
문틈 하나 사이를 두고
나를 바라보던 눈동자,
그리고 도시 어딘가에서
내가 없는 집을 바라보고 있을
현우의 눈동자.
그 모든 것이
오늘 밤의 공포 속에서
서로를 향해 조금 더 가까이 좁혀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내 남편도,
이 집도,
이 산도 아니었다.
오늘 밤,
문을 잠그고,
창을 막고,
같은 쪽 방향을 향해 움직인 사람.
손전등을 들고 앞을 밝히면서도
뒤를 향해 손을 내밀어
내 발을 잡아준 사람.
“같은 편”이라는 말이
이렇게 따뜻하고,
이렇게 위험할 줄은 몰랐다.
침대에 앉아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나뭇조각을 잡았던 손,
지훈의 손을 잡았던 손,
현우에게 아직 전화를 걸지 않은 손.
손바닥 한가운데에
얕게 선명한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돌진하는 순간
유리 조각이 스친 자리였다.
크게 베인 건 아니었지만,
따끔거리는 감각이 남아 있었다.
“오늘은…”
나는 혼잣말을 했다.
“피 한 방울 정도는
이 집에 묻어도 괜찮겠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 집,
이 산,
이 밤.
그리고 이 집에서
나와 같은 편에 선 사람.
모든 것이 얇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불이 다시 돌아왔고,
돌을 던진 사람은 사라졌고,
창문은 막혔고,
문은 잠겼다.
위기는
겉보기에는 한 번 정리된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 집에서 가장 위험한 균열은
벽에도, 유리에도, 산길에도 나는 틈이 아니라,
내 마음 한가운데
오늘 새로 생겨난,
지훈과 나 사이의 가느다란 선이라는 것을.
눈을 감기 직전,
나는 문 앞 복도를 한 번 떠올렸다.
아마도,
아직 완전히 잠들지 않았을 지훈의 그림자.
그 그림자가
오늘 밤 또 한 번
내 방 문 앞에서 멈춰 서 있더라도,
나는 더 이상
그걸 “공포”라고만 부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 집을 둘러싼 모든 미지의 위협보다
조금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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