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의 감사편지

by 바람에 실린 편지


하루의 끝, 그늘이 길게 늘어지고 바람 끝에 약간의 서늘함이 감돌기 시작하면 나는 어김없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붉게 물들어가는 저 너머 서쪽 하늘. 오늘도 그곳에서 하루의 마지막 편지가 도착하고 있었다.


"오늘도 수고 많았어."


하늘이 말을 거는 듯한 착각, 아니 어쩌면 진짜로 하늘이 내게 말을 건네는지도 모른다. 그 한마디가 듣고 싶어 나는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하루 종일 반복되는 바쁜 일상에 지쳐 헐떡이던 발걸음이 그 순간만큼은 조금 느려진다. 해가 천천히 넘어가는 모습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어서, 오늘 하루 내 마음속에 쌓였던 이야기들을 그 붉은 하늘에 하나하나 꺼내어 보여주고 싶어서.


노을은 언제나 다정하다. 설명도, 해명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묵묵히 서 있을 뿐이다. 마치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처럼. 어떤 날의 노을은 유난히 선명하고 눈부시다. 그런 날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이 다소 들뜨고, 작은 성취 하나에도 스스로를 칭찬하게 된다. "그래, 오늘 나는 잘해냈어." 스스로 중얼거리며 하늘을 찍는다. 붉게 번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한 장의 사진은 그날의 기분과 함께 저장된다.


하지만 어떤 날은 다르다. 잿빛 구름이 얇게 하늘을 가리고, 노을조차 희미한 빛으로 번질 뿐일 때. 그럴 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안에 있는 무거운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어 본다. 지친 하루,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 설명하기엔 너무 복잡한 감정들. "괜찮아, 네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다 오늘의 일부야." 노을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내 마음을 쓰다듬는다. 말 대신 빛으로, 따뜻한 기운으로.


집에 돌아오면 나는 늘 베란다에 선다. 난간에 팔꿈치를 올리고 잠시 고개를 내민다. 작은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긴 오늘의 하늘은 어제의 그것과는 다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바라본 하늘인데도 매번 다른 색, 다른 표정이다. 그 다음이 바로 위로다.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와 다르구나."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조금은 다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어떤 날은 외롭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문득 마음이 허전하고,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 친구의 메시지도, 가족의 전화도 잠시 부담스러운 때. 그럴 때면 나는 하늘에게 가만히 속삭인다. "나, 오늘 좀 힘들었어." 그러면 하늘은 대답 대신 빛으로 감싼다. 붉은 빛, 주황 빛, 연보라 빛이 차례로 스며들며 내 마음을 조금씩 다독인다. "그래도 너, 오늘 여기까지 잘 왔어." 그 한마디로 마음 한구석이 풀어진다.


노을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로다. 누군가와 나눈 대화 속에서조차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메워주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친구 같다. 그래서 나는 자주 하늘을 바라본다. 아무 말 없어도 서로의 마음을 아는 친구처럼.


나는 가끔 생각한다. 왜 우리는 이토록 하늘에 기대는 걸까? 그건 아마도 하늘이 우리에게 조건 없는 이해를 보여주기 때문일 거다. 오늘도 버거웠던 마음, 나만 이런 건 아닐까 싶은 외로움, 아무도 모르는 속상함. 그런 모든 감정들을 아무 조건 없이 다 받아주는 곳. 하늘은 결코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다 안다는 듯, 다 들어주는 듯, 묵묵히 그 자리에 있어준다.


언젠가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하늘은 늘 거기 있잖아. 그래서 참 고마운 존재야."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노을을 보며 웃었던 날도, 울었던 날도, 지쳐서 그냥 멍하니 바라본 날도 있었다. 그런 모든 날들에 하늘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하루가 이렇게 또 저물어 간다." 이 단순한 사실이 오늘은 유난히 마음 깊숙이 다가온다. 매일 똑같은 하루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 나는 매일 다르고, 나의 감정도 매일 다르다. 하늘이 그렇듯이.


어제는 힘겨웠지만 오늘은 조금 괜찮아졌고, 내일은 또 다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감정의 변화를 노을 속에서 배운다. 변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하루하루 조금씩 달라지는 내 마음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성장이 아닐까 싶다.


노을은 여전히 나에게 편지를 쓴다. "수고했어." "잘하고 있어." "조금만 더." 그런 말들이 담긴 하루치의 편지. 나는 그 편지를 받으며 오늘도 안도한다. "괜찮다"는 위로, "잘했다"는 격려, 그리고 "내일도 기다릴게"라는 다정한 약속.


나는 이제 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시간은 내게 가장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이야기가 들려지고 있다는 느낌. 혼자인데도 혼자가 아닌 시간.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늘을 바라본다.


하루의 끝자락, 붉게 물든 하늘이 나에게 속삭인다.


"오늘의 너, 충분히 잘했다."


그 말만으로도 나는 다음 날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웃을 일이 많지 않아도, 그저 하루를 견뎌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거라고 하늘은 말한다.


그래서 나는 노을을 사랑한다. 그 아름다움보다 더 소중한 것은, 내 안의 이야기들을 조용히 꺼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 그렇게 나는 오늘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문득, 이 하루가 참 고맙다.
하늘과 나만이 나누는 이 특별한 편지가 있어, 어김없이 배란다에서 서성인다.
















keyword
이전 15화마음속 책장 정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