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빛이 잦아들며 나뭇잎들이 하나둘 내려앉는다. 신선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자 거리의 옷차림도 제법 따뜻해졌다.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을 보니 겨울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문득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내 모습을 보게 보면 동시에 부모님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눈가의 미세한 주름이나 웃을 때 올라가는 입꼬리, 심지어 앞머리가 앞으로 쏟아진다던 엄마의 머리카락조차 닮았다. 어쩌면 피부가 좋아 보인다고 자주 들었던 말도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흔적이 아닐까 싶다.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옛말에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을 들어왔다.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의 성격이나 작은 습관까지도 닮아간다는 걸 느낀다. 힘든 일이 있어도 무슨 말을 들어도 그저 빙그레 웃으시는 아버지의 긍정적 모습이 남을 이해하려는 아버지의 영향을 지금에야 이해가 된다. 그것이 싫어서 호불호가 강한 성격으로 바뀌어진 자신이 세상을 살아보니 나에게 피곤한 일상이 되었다. 아니면 내가 안 보면 되고 상대 안 하면 되는 것을 당차게 설득하려고 해 봐야 헛일에 불과한 일들도 많다. 상식의 선을 넘은 일상도 많이 보게 된다.
엄마의 사소한 일에도 섬세하고 배려 깊게 반응하는 모습은 그 당시 불만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물려받은 것 같다. 나도 모르게 남에게 주려는 마음과 나누는 습관이 생겼다. 부모님을 닮아간다는 사실은 나에게 단순한 외모의 유사성을 넘어선다. 마치 부모님이 내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나의 일부분이 되는 것과 같다. 어쩌면 부모님의 모든 DNA를 닮아진 것에 나에게는 자랑스러운 부모님의 인생과 가치관이 떠오른다. 물론 나에게는 자랑스러우면서도 가끔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온다. 부모님의 가치관을 물려받으며 나만의 색깔로 표현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소중한 과제이자 삶의 지침이 된다. 그리고 나를 이해해 주리라는 위안도 갖게 된다.
거울 속에서, 일상 속에서 조금씩 부모님을 닮아가는 내 모습이 마냥 고맙기만 하다. 나에게 남겨준 흔적을 잊지 않고 내 삶 속에서 따뜻하고 의미 있는 하루를 쌓아가고 싶다. 앞으로도 부모님이 내게 물려준 모습으로 나는 내 길을 부담 없이 가고 싶다. 오로지 나만의 색깔로 그 길을 아름답게 채워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