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커튼을 닫고 에어컨을 틀었다.이렇게 더운 날에도 요리는 멈출 수가 없다.스토브 위에서는 카레에 들어갈 고기와 야채들이 볶아지는 사이동그랗게 썰어진 고구마들은 겹겹이 쌓여 오븐으로 들어갔다.다 볶아진 카레 재료들에 물을 넣고 카레를 풀어 폴폴 끓이고 달달한 냄새를 풍기는 먹음직스러운 군고구마들은 식탁 위에서 식혀졌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요리는 다시 시작되었다.
브로콜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올리브 오일과 소금, 후추를 뿌린 뒤 달구어진 오븐에 넣은 후 냉동실 한편에서 자고 있던 썰어놓은 파를 꺼냈다. 팬을 달군 뒤 올리브 오일에 손질해 놓은 파를 듬뿍 넣고 볶은 뒤 동글동글 귀엽게 생긴 계란들을 꺼내 잘 풀어내었다. 그리고 잘게 썬 햄과 함께 파 기름에 넣어 휘릭 휘릭 쓰윽쓰윽 볶아주었다. 계란이 다 볶아지면 군고구마들 옆에 놓고 함께 식혀지길 기다리며 바삭바삭 구워진 브로콜리도 하나 맛을 보았다. '음~신기하게 오징어 구이 맛이 나는군!' 적당히 소금간이 밴 바삭한 브로콜리는 합격이었다.
이번에는 작은 냄비에 계란들을 넣고 삶기 시작했다.까먹지 않게 타이머도 설정해 놓고 소금도 조금 넣어주었다.그리고 그 옆에서 조용히 끓고 있는 어느새 걸쭉해진 카레의 맛을 보았다. 돼지고기, 빨간 피망, 주황 피망, 그리고 표고버섯이 들어간 간단한 일본식 카레에서는 담백하면서도 살짝 매운맛이 났다. 입맛이 없을 때 먹으면 딱 좋을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한바탕 요리를 끝내고 나니 후끈후끈 부엌의 열기에 어느새 등에 땀이 나서 옷이 축축해져 있었다.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지나있었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한 뒤 시원한 거실에 와서 다리를 쭈욱 펴고 등을 기대고 앉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래야 요리할 맛이 나지~' 오늘 듣고 싶었던 오디오북을 들으며 스트레칭을 하는데 쿠구궁!!! 쿠구구궁!!! 큰 소리에 깜짝 놀라 밖을 쳐다보니 먹구름에 시꺼메진 하늘과 번쩍번쩍 번개가 보였다. 창문에는 작은 아기 빗방울들이 달리기 시합을 하듯 빠르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여름 비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마음이 정화가 되는 듯했다. 요 며칠 강한 더위에 시원하게 비나 한번 내려줬으면 싶었는데 이렇게 와주어서 매우 고마웠다. 고마운 비를 생각하며 롱펠로우의 시, '비 오는 날'을 읽어보았다. 영문으로 먼저, 그리고 한글로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비 오는 날
날은 춥고 어둡고 쓸쓸한데
비 내리고 바람 그칠 줄 모르네.
담쟁이덩굴은 무너져가는 담벼락에 아직도 매달린 채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잎이 떨어지고
날은 어둡고 쓸쓸하기만 하네.
내 인생도 춥고 어둡고 쓸쓸한데
비 내리고 바람 그칠 줄 모르네.
무너져가는 과거에 아직도 매달린 생각들
젊은 시절의 갈망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고
날은 어둡고 쓸쓸하기만 하네.
진정하라 슬픈 가슴이여! 투덜거리지 말라.
구름 뒤엔 아직도 태양이 빛나고 있으니
너의 운명도 모든 사람의 운명과 다름없고
어느 삶에든 얼마만큼 비는 내리는 법
어느 정도는 어둡고 쓸쓸한 날들이 있는 법!
- H. 롱펠로/번역 윤삼하
항상 그렇듯이 시를 읽고 나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긴다.시인은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써내려 갔을까?그가 바라보던 비 오는 날은 그에게 어떤 날이었을까?춥고 어둡고 쓸쓸한 날들 속에서도, 무너져가는 과거와 슬픔 속에서도, 이렇게 훌륭한 시가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인 동시에 존경스러운 일이다.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 위해서 시인이 온전히 겪어내어야 하는 고독의 무게와 사색의 시간이 시 너머에 존재한다.
롱펠로우 또한 춥고 어둡고 쓸쓸한 날들 속에서도 구름 뒤의 빛나는 태양의 존재를 기억하며 우리들에게 삶의 진리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비가 내리면 그치듯이 춥고 어두운 시간 또한 지나가리라.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슬픔과 불평이 아닌 구름 뒤의 빛나는 태양의 존재를 기억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우리들의 운명을 나날이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길이라고. 그러니 항상 용기와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