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용기

오늘의 시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by 이제은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동안 글쓰기에 임하는 나의 자세는 어떠했는가

마치 새벽녘 어둠 속 찰나의 순간

아주 조그맣게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 한 마리의 움직임을 놓칠세라

영감이 떠오르는 즉시 무조건 써 내려갔지


쓰는 순간에는 물아일체였거늘

쓰고 난 뒤에 밀려오는 이 부끄러움은

일언중천금 (一言重千金)

일구이언 (一口二言 )

어쩌면 글이 쉽게 쓰인 이유는

이 부끄러움의 존재를 미처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쓴 것을 내가 실천하지 못한다면

글을 쓰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것은 단지 글쓰기만이 아닐 터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부터

나의 생각과 행동들 모두에 해당되겠지.


지금껏 나는 눈앞의 영광만을 쫓아

글쓰기에 임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삶에 임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스스로를 돌이켜본다.

그리고 묻는다.


과연 내게는 윤동주 시인의 용기가 있을까?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인생엔 살기 어려운 순간들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긴 밤을 고독과 슬픔, 두려움과 걱정들로

끊임없이 쏟아붓는다

윤동주 시인에게도 그랬듯,

우리들에게도.


그 어려운 순간들이 조각처럼 모이고 모인다

나의 10대, 20대, 그리고 30대의 조각들이

하나의 큰 원을 이루는 순간까지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악수를 청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버텨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생 많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윤동주 시인의 용기가 아닐까

부끄러움을 받아들이는 용기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용기

바로 그 용기가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야만 어둠을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당당히 그리고 담담히 마주할 수 있으리라.


오늘도 용기를 내어

한 줄 시 적어본다

내 안의 무수히 많은 감정들에 날개를 달아

글이라는 작은 나비들로 만들어

저 멀리 훨훨 날아가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섬세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꽃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커버 이미지: Photo by toan ph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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