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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하루 명상: <라틴어 수업, 한동일>

by 이제은

오늘 하루 명상은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의 마지막 명상입니다. 처음에는 읽기 어려운 듯하여 몇 장 못 읽고 책장 속에 일 년 넘게 놓아두었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분명 책을 읽었는데 마치 한동일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던 것처럼 뿌듯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넘쳐나 책을 덮고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글에서 한동일 교수님은 진리와 상처, 그리고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 이 세 가지를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하는가 함께 읽으면서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Oboedire Veritati! (진리에 복종하라!)

"취향과 생각이 제각각인 식물은 동일한 정원에 뿌리를 내리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각각의 작은 정원에는 같은 생각과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식물들만이 공존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각자 자기가 뿌리내리고 있는 그 정원만 옳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는 더 큰 정원, 나아가 자연이라는 더 큰 세상 속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정원 안에서 정원 밖을 꿈꾸며 살기도 하고요.

정원과 달리 자연에는 잡풀과 잡목이 따로 없습니다. 다 제각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구성원이죠. 정원 안에서는 각자의 생각과 가치관에 어울리지 않는 식물들은 뽑아내야 할 잡초에 불과하지만 더 넓은 자연에서는 그 어는 것도 잡풀, 잡목인 것이 없습니다. 제각각의 정원들이 자신들의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더 넓은 자연에서는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라는 것, '틀린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습니다. 그런 자연 같은 분위기가 조성될 때야 비로소 진리는 진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요?"



Vulnerant omnes, ultima necat (모든 사람은 상처만 주다가 종국에는 죽는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마치 폭발 직전의 폭주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삶에는 간이역 같은 휴게소가 필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상처가 오히려 그런 간이역 같은 휴게소가 되어주었습니다. 멈춰 서서 제 안을 들여다보게 해 주었으니까요. 그래도 때로는 '이 간이역 그만 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건 아픈 거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이 간이역을 지나고 또 지나면 제가 닿을 종착역도 어디쯤인가 있을 겁니다."



Dilige et fac quod vis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나는 매일매일 충분히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남은 생 동안 간절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두 가지를 하지 않고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Dum vita est, spes est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인간은 영원으로부터 와서 유한을 살다 영원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영원이 신의 시간이라면 유한은 인간의 시간일 겁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고통스러우나 신의 시간 속에서 보면 그저 흘러가는 한 점과 같을 거예요. 그것이 현실이라면 스스로 더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사라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하고, 우리 앞에 놓인 빈 공간을 채워갈 뿐입니다.

인간이 구분지은 경계, 신의 뜻과는 무관한 인간의 욕망들, 불합리하고 불가해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자유롭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살면 참 좋겠다고요. 제가 인간인 한, 이 세상에 속해 있는 한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꿈을 꿉니다. 그래서 '희망'이겠지만 말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다?
무엇을 희망하고 있습니까?"




저는 직업이 치과의사입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치과대학원과 공중보건대 석사과정, 그리고 레지던시까지 합치면 교육만 22년 받았습니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그 오랜 교육과정이 끝이나 감사하고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항상 조금 불안한 마음을 갖고 지냈던 것 같아요. '그때 더 열심히 공부할걸, 조금 더 참고 노력할걸'이라는 긴 한숨 섞인 후회들이 지나간 뒤에 찾아오는 불안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먼지처럼 보이지 않지만 겹겹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그 불안감들은 사회 초년생으로 맞닥뜨린 현실에 대한 것들이었습니다. 나는 분명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해왔었는데 말이죠. 대부분의 날들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잊고 지내다가도 어느 순간 문득문득 떠올라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럴 때는 기분 전환도 하며 독서와 명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있는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게 이 책은 제 안에 무언가 일깨워 주는 듯한 강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현실은 과제나 시험, 또는 졸업 같은 한정된 끝들이 존재하지 않는 그저 긴 여행길이라는 것을 머리와 마음으로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대답하는 시간들을 가지며 나란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지금 매일을 충분히 원하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꿈꾸고 희망하고 있는지 고민해보게끔 해주었습니다. 누군가 시켜서도 아니고 성적을 위해서도 아니고 제가 자발적으로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출렁였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진다고 하지요. 저는 이 책을 읽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졌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에게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 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마음이 강하게 들자 제 안에 침묵하던 불안이 고개를 들어 제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동안 네가 불안했던 이유는 네 스스로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란다. 네가 누구인지 알아내고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네가 두려워하는 불안이 아닌 너를 발전시키는 동기가 될 수 있단다. 지금껏 네가 살아온 삶 너머로 네가 이루어갈 많은 것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지. 그중에는 나와 같은 불안 같은 감정이나 두려움, 외로움, 그리고 괴로움들도 있지. 그 간이역들 속에서도 네가 멈추지 않고 네 스스로와 네 주변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용기를 간직하길 바라. 모든 것은 지나가리니!"

불안의 희망찬 마지막 대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습니다. 마치 한동일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듯했습니다. 교수님은 진정한 배움이란 끝이 없고 매 순간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진정한 배움은 참된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말이죠. 저에겐 오늘의 제목,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라는 그 말이 특히나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나는 매 순간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여야 하는가? 그 질문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




사진: Pixabay: Avi Chomtovs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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