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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사라 Jan 03. 2022

불면한 밤의 이야기 (1)

숙면하고 있나요?

저는 요새 불면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불면이 왔다. 내 나이 서른을 넘어 처음으로 불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니. 내게 크나 큰 영광이자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어린 시절 가장 듣기 싫었던 별명이 있다면 그건

'잠만보’였다. 맞다. 포켓몬스터에 나오는 캐릭터 중 둔둔-한 몸집을 이끌며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그 잠만보. 당시 다녔던 영어 학원은 셔틀버스가 있었는데, 버스를 타며 유영하는 시간은 학원 수업시간과 거의 비슷하다고 기억된다. 학원버스의 첫 출발지는 우리 외할머니 집 근처였는데, 이에 처음으로 셔틀을 타는 사람도 나였다. 광활한 성남 일대를 이곳저곳 쏘다니다 보면 이 동네는 왜 이리도 넓은 건지, 학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시내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일정한 리듬을 내며 불어오는 바람소리에 맨 뒷자리 내 맘이 제일 편한 곳에 혼자 앉아 익숙한 매연냄새를 맡노라면 잠이 솔솔 찾아왔다. 창밖으로 변하는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은지 오래, 학업에 지칠 대로 지친 초등학생은 오는 잠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서 같은 학원버스에 탄 짓궂은 5학년 오빠는(그 당시 나에게 5학년은 정말 큰 존재였다.) 날 '잠만보'라고 놀리듯이 불렀다. 겉으로 티는 못 내지만 몰래 째려는 봤다.

 

 나의 잠의 역사는 고등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공부는 언제 해서 성적을 내는지 모를 정도로 쉬는 시간이나 자습시간이면 그렇게 잠을 잤다. 교실 맨 뒷자리인 내 자리에 교과서 열 권 정도를 높게 쌓아놓으면 첫 번째 내 잠자리 완성이다. 두 번째 내 잠자리는 인형처럼 생긴 보들보들한 천 소재의 필통. 세 번째로는 선물 받은 무릎담요 되겠다. 이 세 곳 모두의 공통점은 통통하게 차오른 내 왼쪽 볼을 톡- 걸치고 자는 것. 얼마나 편하고 아늑하던가. 가끔가다 교과서를 피고 자다 흘려버린 침 자국에 괴로워하던 것도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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