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아빠 목소리

by 헵타포드

남자는 여자보다 저음의 목소리를 지녔다.

저음은 더 쉽게 뱃속 아기에게 도달한단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상술일까?

아빠가 읽어주는 태교 도서가 즐비하다.

아내는 거침없이 책들을 구매했다.


나는 '말'과 거리가 먼 편이다.

신중한 완벽주의자인 나에게,

내뱉으면 고칠 수 없는 말은 매번 어려웠다.

곱씹고 퇴고할 수 있는 '글'이 더 편했다.


소소한 성향이라 생각했다.

성향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건 쉬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변화는 요구되었다.


나는 매일 밤 말하기 시작했다.

어떨 땐 사람소리를 내다가,

어떨 땐 동물소리를 냈다.

저 높은 하늘나라를 갔다가,

저 낮은 지하세계도 오갔다.

10여 명의 인물을 소화했고,

'뿡뿡', '낑낑' 등의 의성어도 소화했다.


사실 태담의 효용은 신뢰하지 않는다.

신뢰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신생아 때도 미흡한 오감이

더 어린 태아시절, 뱃속의 장막을 뚫고

전달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태담은 효과가 있었다.


우선 '아내의 변화'다.

아내는 나의 태담을 들으며 즐거워했다.

즐거움은 호르몬을 통해 곧바로 아이에게 전달된다.

아내의 즐거움은 곧 햇살이의 즐거움이었다.

햇살이는 간접적으로나마 태담의 영향을 받았다.

만일 햇살이가 못 받았다고 한들,

아내가 받았으니 뭐 어찌 됐든 효과는 있었다.


다음으로 '나의 변화'다.

싫어하던 말에 재미를 붙였다.

매일의 태담은 내게 말하기 연습 장이었다.

나의 목소리는 크고 단단해졌다.

말을 싫어하며 얻었던 불이익이 얼마나 많았던가?

말을 좋아하게 되며 삶은 변했다.

직장에서 보고 시 자신감이 올라갔고,

아내와의 잦은 대화로 금실도 좋아졌다.

침묵이 잡담으로 변하며, 삶은 활력으로 번졌다.

독서 모임, 스피치 모임 등을 통해 말의 양은 확장되었고

스피치 강의, 말하기 영상촬영 등을 통해 말의 질도 확장되었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굴되었고 성장했다.




INTJ, 이성적인 나는 아이를 낳기 전 고민했다.

"출산율 0.8명인 시대에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일방적인 헌신을 왜 굳이 해야 하는지"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일방적인 헌신'은 이미 착각이었다.

햇살이는 태어나기도 전에 내게 헌신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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