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14 / 별과 사람이 가장 선명한 나라

by BO

Chapter2. 별과 사람이 가장 선명한 나라




지나치게 비싼 항공료에 투덜대던 중 기내식이 나왔다. 잠시 투덜대는 것을 멈추고 기내식 뚜껑을 열었다. 냄새와 비주얼 모두 큰 기대감을 일으키지 못했다. 별 세 개 정도의 기대치를 가지고 메인 메뉴로 보이는 스크램블에그를 퍼 입에 넣었는데 항공료가 비싼 이유가 기내식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은 부드럽게 부서졌고 속은 꾸덕꾸덕하게 흘러내렸다. 맛있었다. 별 다섯개 줄 수 있겠다. 부드러우면서 짭짤한 스크램블에그와 소시지가 인상적이었던 기내식을 순식간에 다 먹고 두 번이나 리필해서 먹어 치웠다. 첫 번째 리필은 비교적 뻔뻔하게 잘했으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거의 모든 승객이 하나의 기내식으로 만족했기에 두 번째 리필할 때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창밖을 보다가 'B-612' 행 항공료가 비싼 진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약 4시간 동안 군청색의 지루한 단조로움이 반복되었고 이따금 나타나는 하얀 구름만이 산뜻함을 더하고자 노력할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겨우 꺼낸 아무 말과 고작 돌아오는 침묵의 반복이랄까. 오랜 비행 끝에 마침내 끝이 보이지 않던 단조로움 속에서 에메랄드빛의 바다와 그 바다가 부드럽게 품고 있는 섬이 나타났다. 꽃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 꽃을 받쳐주는 꽃받침일 테다. 4시간 가득했던 군청색의 단조로움이 에메랄드빛의 바다와 섬을 더욱 눈부시게 했다.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작품 속으로 들어갈수록 내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공항과 활주로를 쭉 둘러싼 하얀색 울타리가 그 끝에 시작된 에메랄드 바다, 쾌청한 하늘과 어우러진 풍경은 지금까지 내가 봤던 그 어떤 풍경보다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바다는 수십 년 안에 섬을 집어삼켜 버려 자기 자신도 섬과 함께 지도상에서 사라지게 될 거라고 한다. 사실 군청색의 바다 자체는 단조로움의 연속에 지나지 않으나, 산호섬과 만났을 때 비로소 에메랄드 빛을 띠는 라군이 되고 섬의 일부가 되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섬을 삼켜버리면 아름답던 바다는 다시 그 색을 잃고 그저 보통의 군청색 바다가 되어 이름도 없이 위도와 경도만으로 불리게 될 것이며, 점차 그 기억마저 옅어져 기억 속에서도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다. 바다가 이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바다 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듯 나의 모든 성취 또한 온전한 내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많은 이들의 배려와 이해, 도움으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그것을 잊는 순간 바다가 에메랄드빛을 잃음과 같이 나의 아름다움도 더 이상 나와 함께 하지 않으리라.


하기해도 좋다는 안내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승객들이 줄지어 내리기 시작했고 나도 짐을 챙겨 하기하는 줄에 합류했다. 문을 지날 때 푹푹 찌는 뜨거운 열기가 환영한다며 달려와 안겼는데 아직도 도통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녹아내릴 것 같은 아스팔트 활주로를 횡단하는 동안 공항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지만 시골 버스터미널보다도 작은 건물 외에 다른 건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승객들의 뒤를 따라 들어가고 나서야 그 작고 허름한 건물이 정말 공항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에어컨도 없고, 모든 입국 수속 과정이 수동으로 진행되고 있는 아주 구식 공항이 나왔다. 아니 어쩌면 공항 컨셉의 사우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바짝 들어오는 다른 승객들 때문에 후퇴할 수도 없었다.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붐비는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공항 직원이 들고 오는 짐 중에 내 짐이 있는지 찾아야 했다. 승객들은 일제히 직원을 주시하다가 자기 가방이 나오면 손을 들어 자기 것임을 외치고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공항을 떠나갔다. 안타깝게도 내 가방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낼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공항 내부의 열기가 더욱 가혹하게 느껴졌다. 1시간이 10시간 같았다.


'B-612'의 공항에서는 인천 공항과 'F'의 공항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공항 울타리 밖으로 사람들이 운집해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두 손을 높이 들어 힘차게 흔들었고, 공항을 빠져나온 승객들을 기다렸다가 'Hello', 'Where are you from?'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인사들이

‘언젠가는 나도 저 비행기를 타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고 말 거야!'

라고 들렸다.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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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30km. 'B-612' 도로의 제한속도다. 처음에는 '천천히'가 익숙지 않아 조금 답답했지만 이내 이 느긋함이 좋아졌다. 연식이 꽤 되어 보이는 선팅되지 않은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내내 창밖의 사람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B-612' 사람들의 모습은 내게 언젠가부터 낯설어진 모습이었다. 바쁜 걸음을 걸으며 스마트폰을 보거나 귀를 막고 있지 않았으며, 마주 오는 이와 밝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길을 지나는 저 사람들은 엄청 가까운 사이인가 봐요."

"물론이지. 이웃이거든."

!?...

속도가 느릴수록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시야가 늘어나는 법이다. 'B-612' 사람들은 느렸다. 그리고 여유로웠다. 어쩌면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더 빠르게, 더 치열하게 달려야만 하는 거대한 마라톤 경기장이 아닐지도 모른다. 쉬지 않고 달리는 건 지구 하나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가족, 친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해야 할 시간과 미소를 연료 삼아 끝이 없는 이 세상의 끝을 향해 달린다. 무엇을 향해 달리는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달리는가. 한 가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속도와 방향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행복의 눈동자에 비친 각자의 모습을 보기 원한다는 것이다. 연어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 철새가 시기를 따라 이동하듯 우리는 모두 행복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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