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26 / 행복을 묻는 그대에게

by BO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항으로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장 친한 친구인 메티에게 들러 작별 인사를 건넸다. 평소 감정표현을 잘하지 않는 메티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꼭 돌아와서 다시 만나자.”

“당연하지. 반드시 돌아올게. 우리 가족들 다 데리고 돌아와서 인사시켜줄게.”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언젠가 메티의 두 딸에게 줄 멋진 선물을 들고 가족과 함께 꼭 다시 돌아가서 메티를 소개해주고 싶다. 그리고 'B-612'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곳에 스민 행복했던 추억을 소개해주고 싶다. 'B-612'에서 많은 친구를 사귀었지만, 메티는 내게 가장 특별한 친구다. 내가 외롭고 슬플 때는 친구가 되어 위로해줬으며, 내가 힘들고 배고플 때는 엄마가 되어 맛있는 음식을 해줬다.

메티가 내게 400원짜리 차우 라면을 주면서 울먹거리며 말했다.

“이거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잖아. 한국 가면서 먹어.”

언젠가 차우 라면을 먹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고 챙겨 준 것이다. 절대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안타깝게도 손바닥 크기의 작은 라면 앞에서 그 다짐은 너무나도 쉽게 무너지고 말았다. 앙다문 입이 떨려왔고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였지만 들썩거리는 몸은 누가 봐도 흐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펑펑 울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잘하고 싶은 내 마음과는 달리 실수도 잦았고 서툴렀다. 특히 작년 말부터는 뮤지컬 공연 준비로 인해 힘들기도 했고, 행복을 마주하기 위해 남태평양에 왔지만 돌아갈 날이 가까워져 감에도 여전히 행복의 정의를 내리지 못함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자연히 친구들에게 까칠하게 대하는 빈도가 늘어갔고 친구들도 까칠한 나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다. 망망대해 태평양에 내 편은 없고 나 혼자인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외로웠다.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다. 한국 갈 날만을 기다리며 어차피 이제 떠난다는 생각에 더욱 까칠해져 갔다. 그런데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내 생각과 다르게 친구들은 빚을 져가면서, 외상을 해가면서, 버스비를 아껴가면서, 그토록 바라던 취직 기회를 버려가면서 나를 위해줬고 사랑해줬다. 그 모든 외로움과 초조, 스트레스, 분노는 실재했던 것이 아니라 내 생각 안에서 만들어졌던 허상이었다.


오늘 메티에게 차우 라면을 받으며 오랫동안 물었던 행복에 대한 답을 찾았다.

‘행복은 처음부터 모든 사람과 항상 함께 있었으며 이미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다만, 내 속에 내가 너무 커서 행복이 머물 자리가 없었던 것뿐이다.’

행복은 절대적이면서 동시에 상대적이다. 행복은 독점될 수 없고 어디에든 존재해 모두에게 공정해야 하며 값없이 주어져야 한다. 다행히 행복이 그렇다. 행복은 그래야만 한다. 통조림을 망망대해 태평양 바다에 던져도 절대 통조림 안으로 바닷물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처럼 나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행복 바다에 살고 있었지만, 내 속에 내가 너무 크고 높아서 행복이 머물 자리가 없었다. 스스로를 높게 여기는 사람은 매사에 불평이지만, 스스로를 낮게 여기는 사람은 주변의 모든 것에 감사한 법이다. 내가 작아지니까 비로소 친구들의 사랑이 보였고 공기, 물, 햇빛, 모든 것이 감사했다.

사회에서는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에게 보상이 주어진다. 그러나 행복은 사회의 통념과는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 행복은 잘하는 사람에게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공짜로 주어진다.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은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은 거창하거나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다. 처음부터 모든 사람과 항상 함께 있었다. 우리 삶 자체가 행복이다. 일기를 쭉 다시 보면 행복했던 일이 가득하다. 그게 행복이었다.


계단을 올라 비행기 문 앞에 멈춰 돌아섰다. 'B-612'는 내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쾌청하다 못해 너무나도 아름다운 'B-612'를 향해 나도 있는 힘껏 작별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마지막 'B-612'를 눈에 담고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그때 저 멀리 활주로 너머 철망 밖에서 혹여나 내가 못 보고 갈까 두 손을 높이 들어 인사하는 메티와 페로가 보였다. 너무 놀랐고, 고마웠다. 비행기 엔진 소리에 묻혀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분명 우리는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절대 잊지 않을게. 꼭 다시 보자.’

더 이상 탑승하지 않으면 안 될 때까지 한참을 서서 손을 흔들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비행기 안으로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도 메티와 페로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홀가분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했다. 기분이 묘했다. 'B-612'에 지내는 동안 즐거울 때도 많았지만 힘들 때도 정말 많았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포기하고 싶을 때 반드시 비행기는 순풍이 아니라 역풍을 타고 날아오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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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에 도착해서 공항 옆 호텔에 짐을 풀고 'A'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했다. 'A'에 처음 온 날, 첫 식사로 먹을 때만 해도 너무 짜서 한 입만 먹고 다 남겼던 치킨이었는데 오늘은 깨끗하게 다 먹어 치웠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본 밤하늘과 희미하게 불어오던 바람이 마지막 날을 걷는 청년의 알 수 없는 감정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밤새 호텔 잔디밭에 누워 지그시 눈을 감고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더 진하게 느끼고 싶다.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이제 진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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