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식사를 입으로 했는지 코로 했는지도 모르게 하고 거울 앞에 서서 유난을 떨었다. 평소보다 선크림을 더 짜 발라 미백효과를 더했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다듬었다. 대학생인 내가 한 나라의 대통령님을 만나 뵌다니 신기하고 기뻤다.
집무실 밖에 마련된 의자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각진 자세로 앉아 면담을 기다렸다. 긴장해서 경직된 탓이다. 안 그래도 더운데 긴장하니 더 더운 것 같았다. 무거운 침묵이 길어졌다. 각진 자세가 불편해질 만큼의 시간이 흘러 서서히 자세가 풀어지던 차 집무실 문이 열렸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올랐고 풀리던 자세에 긴장이 더해졌다. 곧 문 뒤에서 비서가 나와 집무실로 안내했다. 경직된 채로 들어갔는데 대통령님의 달덩이처럼 밝은 미소에 긴장이 풀렸다.
"젊은 청년이 만리타향 남태평양까지 와서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고생하셨습니다. 며칠 전에 해주신 멋진 공연 시민들과 즐겁게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에서 1년간 살며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대통령님을 비롯한 VIP분들과 많은 시민분께 뮤지컬이라는 특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드릴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B-612'에서의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매일 1.5L 물로 샤워했고, 물 한 컵도 가볍게 마실 수 없었다. 비가 오면 비에 흠뻑 젖어 으스스 떨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처마 밑 물을 받았고, 고기도 자주 먹지 못해서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고기 하나 때문에 싸우기도 했으며, 매일 밤 한국에 가서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를 적었다. 에어컨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선풍기도 부족했다. 인터넷도 사용할 수 없었고, 매일 우물에 가서 손 빨래했으며, 버스비가 없어 뙤약볕 아래를 걸어 다녔는데 길에 들개가 많아서 긴 막대를 들고 다녀야 했다. 그러나 힘들 때도 많았지만 즐거울 때도 많았으며,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배꼽 빠지게 웃을 때도 많았다. 별과 사람이 가장 선명한 나라에서 지낼 수 있어서 기쁘고, 감사했다.
-
멀지 않은 곳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쓰였던 진지와 대포가 여러 개 있었다.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무채색의 진지는 그 뒤에 보이는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바다와 너무나도 대조됐다. 전쟁은 세력과 세력의 대립이다. 한국전쟁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이었다. 국가를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러니까 자유를 위해 공산주의에 맞서 싸운 모든 분께 항상 큰 존경과 감사를 품고 산다. 한국전쟁 참전 용사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이 하셨던 말씀이 내게 큰 감동을 줬다.
“공산주의가 자유를 위협하는 것을 보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는 국민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 국가가 국민을 탄압한다면 그 국가는 더 이상 국가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사람은 별보다 밝고 큰 존재인데 감히 사람보다 큰 것이 무엇이기에 국민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가? 국가는 국민이 있기에 존재하며,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대한민국은 큰 위기 속에서도 수많은 희생으로 지켜졌고, 발전했으며,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종종 헬조선이라며 한국이 암담하다고 하는 말을 듣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국가의 정책에 상처받고,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처럼 자유롭고, 안전하며, 꿈을 펼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는 나라가 얼마나 있나. 많은 분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이 있었기에 견고한 터 위에서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고,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며,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이 세상은 세력과 세력의 끊임없는 전쟁터다. 그렇기에 이 세상 안에서는 절대 이 세상을 올바르게 볼 수 없다. 사람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것은 매스컴인데 결국 매스컴도 세상 위에 있지 않다. 헬조선은 잘못된 매스컴으로 형성된 여론이라고 생각한다. 불평할 조건도 분명히 있지만, 감사할 조건이 그보다 훨씬 많고 클 것이다. 나는 내가 대한민국 사람인 것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대한민국에 받은 은혜가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