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부터 오늘 오후까지 쉬는 시간 거의 없이 합숙훈련과 드레스 리허설했고 저녁에는 (비록 립싱크지만) 'B-612' 최초의 뮤지컬 공연을 하기 위해 모든 소품을 챙겨서 번화가에 있는 광장에 갔다. 무대를 설치하고 뮤지컬 멤버들과 모여 앉아 기다리는데 장난기 많은 페로와 타바와 마저도 평소와는 다르게 사뭇 긴장돼 보였다. 먹구름이 짙게 깔린 하늘이 심상치 않다 했더니 얄밉게도 근 몇 달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남자들이 뛰어나가 비바람을 맞으며 뮤지컬 세트가 날아가지 않게 꽉 잡고 버텨야 했다. 비바람은 멈출 생각은커녕 더욱 거세졌고 어쩌면 우리의 노력과 시간이 모래성이 파도에 쓸려 무너지듯 허무하게 무너져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혼자였다면 쉽게 무너졌겠지만 비를 맞으며 버텨내는 서로를 보며 우리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인 레드우드는 높이가 약 110m가 넘지만, 뿌리는 3m에 불과하여 구조상 바람에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레드우드는 뿌리를 옆으로 뻗쳐 옆 레드우드 뿌리와 연결한다. 각각의 나무지만 땅속의 뿌리는 하나의 거대한 연결고리인 셈이다. 그렇게 뿌리를 연결한 레드우드는 아무리 강한 허리케인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꼭 레드우드 같았다.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지만 함께였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점차 비가 줄어들더니 시작 직전 완전히 그쳤다. 딱 공연하기도, 보기도 좋은 만큼의 선선한 바람만이 불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비가 안 와서 정말 다행이다.
특히 오늘 공연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은 가족이었다. 몇몇은 공연 시작 전 앉아있는 관객들 사이에서 가족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몇몇은 아예 분장한 채로 가족들에게 달려가 사진을 찍기도 했다. 가족들이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사방이 뚫린 광장에서의 공개된 공연이었기에 시민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의자가 없어 맨바닥에 앉아야 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저 웃음과 박수로 공연에 화답해주셨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뮤지컬과 함께 호흡했다.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함께 웃었고, 성냥팔이 소녀가 추운 겨울을 걸으며 구걸할 때는 모두가 숨죽인 채 소녀의 다음을 주시했다. 영부인께서는 소녀가 불쌍했는지 나오셔서 소녀의 바구니에 돈을 넣어주셨다. 기뻐하시는 시민분들을 보니 더 힘이 났고 뿌듯했다.
준비하는 과정은 너무 힘들었지만, 함께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이루는 것이 행복했고 대통령님을 비롯한 VIP분들과 시민들께 평생 잊지 못할 뮤지컬을 보여드렸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특히 평범한 하루, 평범한 가정에 특별함을 더해줬다는 것이 가장 기쁘고 영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습에 불성실한 학생이 많아서 걱정됐었는데 우려와는 다르게 모든 동작이 잘 맞았고 실수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고 한다. 행복은 누군가와 진정으로 함께할 때 훨씬 강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다.
마음은 우주라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거대한 질서 속에서 그 어떠한 물리법칙도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무언가일 것이다. 그리고 행복은 그 유일한 무언가에서만 만들어지고, 존재하는 고귀한 진주와 같다. 사랑도 그렇고, 감사도 그렇고, 희망도 그렇다. 반대로 미움, 불만, 좌절은 우주에서 가장 어둡고 부패한 것일 테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함께 할 때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배가 되고, 어둡고 부패한 것들은 반이 된다.
언제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우리는 다른 이들의 관심과 기대 없이 초라하게 배를 띄워 뮤지컬이라는 항해를 시작했었다. 오히려 걱정과 의심이 가득했다. 소품도 없고, 세트장도 없었으며, 뮤지컬을 해보거나 배워본 사람도 없었다. 전혀 준비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B-612'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선물하자는 마음 하나로 일단 무모해 보이는 항해를 시작했다. 역시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소품도 만들어야 했고, 장소도 구해야 했고, 무대 세트도 필요했으며, 함께할 사람도 구해야 했다. 연습에 늦거나 오지 않는 사람들을 초조하게 기다려야 했고, 밤잠을 줄여가며 맨땅에 헤딩하듯 연습해야 했고, 심한 감기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많다. 그러나 안 된다는 상황에 내 마음을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피하고 싶지 않았다. 부딪혀보고 싶었다.
젊음에 젊음을 더하고, 꿈에 꿈을 더하고, 열정에 열정을 더하여 던진 도전이 몇 번의 차디찬 시련을 겪고 운동성과 그 방향을 잃을 때가 있다. 길이 보이지 않고 암담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답답한 상황에 놓일 때도 있다. 그때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바라볼 수 있기를, 비행기는 역풍을 뚫고 날아오른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전구의 다른 이름은 '10,000번의 실패와 1번의 성공'임을 잊지 않기를, 가장 어두운 밤에서도 여명을 기다릴 수 있기를, 그런 사람이기를 나는 바란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수많은 실패를 겪었고 단 몇 번의 성공만 거뒀을 뿐이다.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발전을 가져온 인물인 에디슨은 수만 번 실패했고, 미국 국민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수많은 낙선을 겪었으며, 세계 최고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도 그의 홈런 수의 두 배에 가까운 1,330번의 삼진 아웃을 당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해리포터의 저자 JK롤링도 그러했고, 월트 디즈니, 스티븐 스필버그, 헨리 포드도 그러했다.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우리의 항해는 'B-612' 전역을 행복으로 물들이고 끝이 났다. 공연은 끝났지만, 뮤지컬팀 모두 항해의 끝이 아쉬워서 자리를 떠나는 사람이 없었다. 이 밤을 더 느낄 수 있게, 이 밤이 더 길었으면 좋겠다. 행복하다.
Ps. White Cht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