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 쭈그려 앉아 개미를 잡다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매일 개미를 잡고, 개미집 입구에 끈끈이를 설치하고, 곳곳에 약을 설치했지만 보란 듯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여 결국 임무를 완수해내는 개미들을 보며 '나는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미도 문제를 마주했을 때 부딪혀 이겨내는데 나는 너무나도 쉽게 안 된다는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여 포기하곤 한다. 나는 진정으로 할 수 있다고 믿어본 적이 얼마나 있는가?
마침 'B-612' 땅에서 단 한 번도 뮤지컬 공연이 없었다는 크리스틴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렇게 우리는 소품, 세트, 장소도 없으며 뮤지컬을 해본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지만 'B-612'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선물하기로 했다. 불가능한 상황에 내 마음을 동조하고 싶지 않다. 피하고 싶지 않다. 부딪혀보고 싶다. 온 세상이 눈을 부릅뜨고 '안 된다'고 말한다고 해도, 최소한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밭에 작물을 심기 위해 가장 먼저 밭을 갈고, 자갈을 걸러내고, 잡초를 뽑는다. 그렇게 한 밭과 하지 않은 밭은 절대 같은 결과를 낼 수 없다.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안 된다'는 생각을 뽑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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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며칠 전에 초대받았던 이웃집 돌잔치에 갔다. 'B-612'에서는 첫 번째 생일과 스물한 번째 생일을 특히 크게 여긴다. 첫 번째 생일은 인생의 시작을 축하해주는 파티고, 스물한 번째 생일은 성인식과 같은 의미가 있는 파티다. 맛있는 음식을 잔뜩 준비하겠다고 해서 일부러 배를 비워서 갔는데 예정보다 많이 늦어져서 오랫동안 허기와 싸워야 했다. 너무 배고파서 온몸에 힘이 빠졌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날이 어두워져 전등을 켤 때쯤이 되어서야 생일파티 손님들이 하나둘 음식을 들고 나타났다. 'B-612'의 파티는 크게 축하 공연과 식사로 구성된다. 먼저 공연으로 파티의 시작을 알린다. 주로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간단한 댄스를 준비하지만 간혹 댄스팀을 섭외하기도 한다. 준비된 서너 개의 공연 후에는 식사를 하는데 손님들이 가져온 음식을 뷔페처럼 진열해서 나눠 먹는다. 드디어 파티가 시작되었고 나는 외국인이라고 특별손님 자리에 앉았지만 MC가 'B-612' 언어로 사회를 보는 바람에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채 멀뚱멀뚱 눈만 깜빡여야 했다. 젊은 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B-612' 사람들은 영어가 서툴거니와 파티에 참석한 손님 중 상당수가 동네 어른들이기에 그들의 언어로 사회를 보는 것이 당연하다.
그나마 언어를 몰라도 즐길 수 있는 몇 개의 축하 공연이 있었는데 그중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채 갑자기 불려 나가 일면식도 없는 어느 낯선 여인과 커플 댄스를 췄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손을 잡고 무대로 데려가는 그녀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저는 춤을 잘 못 춰요!"
"잘 못 춰도 돼요. 다른 사람이 비웃든, 박수를 치든 상관 말아요. 그저 지금 이 음악에만 집중하고, 몸을 맡겨봐요. 그게 우리 춤이에요."
무대에 올라선 그녀는 나를 이리저리 돌리고, 당겼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그저 음악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무시한 채로 음악에 몸을 맡겼다. 손님들은 크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프랭크는 홀로 앉아있는 도나에게 탱고를 추자고 제안한다. 제안을 들은 도나가 실수할까 두려워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프랭크가 이런 말을 한다.
'잘못하면 스텝이 엉키죠. 하지만 그대로 추면 돼요.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지요.'
인생은 훌라다. 훌라를 추다 보면 스텝이 엉키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훌라다. 인생도 그렇다. 내 인생에 조금의 지분도 없는 남들의 시선에 멈칫거릴 필요도 없고, 그들의 의견이 사실이 되도록 동조할 필요도 없다. 그저 흐르는 음악에 나의 몸을 맡기고 춤을 추면 된다. 그러다 스텝이 엉켜도 자책할 것 없고, 낙심할 것 없다.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작품이요, 아름다운 인생이다. 스스로 멈추지 않는 이상 우리의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한참을 더 굶주린 채로 알아들을 수 없는 생일파티에 참석하다가 드디어 식사 시간이 되었다. 거대한 뷔페식당이 되어 돼지고기와 닭고기, 다양한 브레드프루트 요리를 비롯한 각종 현지 음식이 즐비해 있었다. 배도 많이 고팠고 평소에 고기를 자주 먹지 못했기에 내 손은 다른 음식들을 지나쳐 돼지고기를 향했다. 접시가 넘치도록 가득 담아 자리에 돌아와서 양손에 고기를 들고 흡입했다. 앞으로 또 언제 만찬을 즐길 수 있을지 모르기에 이미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후식으로 케이크까지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