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공연이 이틀 남았다. 오늘도 하루 종일 연습 했는데 배역을 맡은 애들이 자꾸 연습 시간에 늦거나 심지어 안 오는 경우도 많다. 늦지 말라고 당부해도 소용이 없다. 공연 날이 다가오는데 완성도는 부족하고, 애들은 태평하게 있으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최근 이런 스트레스와 여러 일로 많이 예민해져서 심한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 특히 페로는 여러 번 타이르기도 하고 화도 내봤지만 오늘도 연습에 오지 않았다.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나는 오늘은 그냥 넘어갈 수 없어서 단단히 벼르고 페로의 집에 찾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걸 페로가 오두막(집)에 웃통 벗고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화가 폭발했다. 너무 화 나서 페로를 깨우고 쏘아붙였다.
“뭐 하냐. 지금 연습 시간인 거 모르냐. 이틀 후에 공연하는 거 모르냐. 연습 늦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냐. 왜 이렇게 사람을 무시하냐.”
말없이 듣던 페로가 씩씩대고 있는 내게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나도 연습에 참여하고 싶은데 옷이 없어서 못 갔어.”
전혀 예상치 못한 페로의 대답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정적이 흘렀다. 너무 머쓱한 나머지 여전히 날카로운 말투로 빨랫줄에 걸려있는 평소 페로가 자주 입던 옷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걸려있는 옷은 뭔데.”
“저 옷은 엄마 옷인데 엄마가 안 입을 때만 내가 입을 수 있어.”
확실했다. 진짜 확실했다. 확신할수록 화가 커졌다. 그래서 페로가 누워 자는 모습을 보고 폭발했고 한 치의 의심도 없이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내 확신이 확실했냐는 것이다. 비단 이번 일만이 아니다. (특히 인터넷상에서) 누군가의 잘못을 공격하는 말과 글, 여론을 자주 본다. 온갖 비난과 비아냥을 주고 심지어 사회의 절벽으로 밀어버려 다시는 사회에 설 수 없게 만드는 경우를 본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그 확신이 확실했냐는 것이다. 회복할 수 없는 상처와 피해를 준 그 확신이 정말 확실했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확신하고, 그 확신으로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준다. 목적지가 없는 비난이 만들어낸 상처는 얼마나 허무하고 쓰린가. 우리는 충분히 더 현명한 사회에 사는 더 현명한 우리가 될 수 있다. 비난은 반드시 비수가 되어 자신에게 날아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잘 알지도 못하고 화를 냈던 내가 부끄럽고 미안했다. 고맙게도 페로가 빨랫줄에 걸려있던 엄마 옷을 챙겨 입었고 우리는 아무 말 없이 터덜터덜 걸었다. 연습실로 가는 3분 남짓의 시간 동안 침묵이 유지되었다. 아주 시끄러운 침묵이었다.
‘미안하다고 해야겠어.’
‘잘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화를 냈구나.’
‘화낼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어떻게 사과하지?’
‘페로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내 사과받아 줄까?’
...
생각이 길어지면 용기는 사라진다. 생각은 내게 남아있던 조금의 용기마저 앗아가 버렸고 그 공간은 순식간에 두려움이 채웠다. 결국 나는 도착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페로는 무슨 생각을 하며 걸었을까? 아무 말도 없던 페로는 연습실 문을 염과 동시에 가면을 바꾸어 우스꽝스러운 동작과 목소리로 입장했고 모두 빵 터졌다. 그렇다. 나도 웃고 있던 그 사람들처럼 항상 문을 열고 들어온 페로의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만 봤었지, 문밖의 페로의 아픔과 어려움은 보지 못했었다. 늘 페로의 반쪽만 봤었고 반쪽만 알았다. 나는 페로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