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타바와와 페로가 구상한 홈스테이 계획을 들었는데 나도 설레었지만, 타바와와 페로가 더 설레어 보였다. 버스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뭐가 그리 즐거운지 우리는 작은 농담에도 웃어대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시속 30km의 버스를 타고 슬슬 지루해질 만큼의 시간을 달리고 나서야 마침내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 타바와 집까지 걸어왔는데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 당시 터졌던 포탄으로 인해 군데군데 파인 전쟁의 흔적 사이를 지나기도 했고 공항 바로 옆을 지나기도 했다. 활주로를 둘러싼 하얀 울타리와 에메랄드 바다의 조화는 내가 봤던 그 어떤 풍경보다도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카메라를 꺼내 들어 사진으로 담고자 노력했으나 손바닥만 한 기계에 광활한 자연을 담을 수 있을리 없었다.
그렇게 해안선을 따라 한참 걸으니 동네가 나왔다. 생각보다 멀었다. 타바와는 매일 이 먼 길을 걷고 버스비를 지출해가면서 나를 보러 왔던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타바와 어머니께서 점심 식사하라며 평소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생선튀김과 브래드프루트 요리를 주셨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걱정스레 바라보는 타바와 어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도 덩달아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입에 맞지 않으면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그러나 곧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려와는 달리 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이나 먹었다. 식탐은 없지만('B-612' 와서 식탐이 생긴 것 같다.) 가리는 음식 없이 뭐든지 잘 먹는 것이 내 장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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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너머에 제법 어두워져 가는 바다에 갔다. 붉은 황혼을 배경으로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과 잔잔한 파도 소리가 작년 한 해 고향을 떠나 만리타향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젊음을 보낸 나를 격려해 주는 것 같았다. 바람과 파도 소리가 좋아 눈을 감았다. 포근하고 시원했다.
“앗 차가”
페로가 얼른 들어오라며 물을 뿌렸다.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물을 뿌릴 것 같아 나도 곧장 웃통을 벗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놀다 보니 희미했던 달빛이 어느새 물결 위로 선명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타바와가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입을 열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바닷속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어 한 마리가 공격해오더래. 그래서 몸을 옆으로 틀어 가까스로 공격을 피했는데 이번에는 옆에서 더 큰 상어가 입을 벌려 집어삼키려고 달려들었대. 순간적으로 주둥이를 옆으로 밀면서 피하고 아가미를 때렸더니 상어가 도망갔대.”
물론 거짓말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보다 우선 바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더 바다에 머물 수 있겠는가? 겁에 질려서 육지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마음과 달리 바다에서는 걸음이 왜 이렇게 더딘지 빠져나가는 내내 꼭 상어가 쫓아 오고 있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달빛을 조명 삼아 마당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퍼 바닷물을 씻어냈다. 개운했다. 몸을 닦고 사방이 뚫린 오두막에 누웠다. 얇은 여름 이불을 반쯤 덮었다. 바닷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온다. 철썩철썩 파도 소리가 자장가 같다. 전깃불이 없어서 일찍 자야 한다. 8시쯤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