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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그리고 40대 소고(小考)

관성의 법칙, 겸손 그리고 지혜

by 로맹 제이

내가 서른 살 결혼할 때, 동갑내기 부모님 나이가 50대 초반이었다.

부모님들이 결혼할 당시 당신들 나이가 20대 초반이었고, 1960년 당시 52.4세에 불과했던 기대수명을 고려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동갑내기 부모님이 60세 환갑을 맞으면 해외여행을 보내드릴 요량으로, 아내의 제안으로 동생과 함께 매월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몇 해를 모아 부모님 첫 해외여행을 보내드렸다.


결혼하고 30년이 지난 지금 기대수명이 80세를 훌쩍 넘기고 이제 환갑잔치라는 말은 사라졌다.

주변 지인들의 자녀가 결혼하는 나이를 보면 대부분 30대 초중반이다.

기대수명뿐만 아니라 교육환경, 경제환경 등을 이유로 결혼 적령기가 늦어지고 있고 그에 맞게 삶의 패턴도 많이 변했다.

30년 사이 환경이 급격하게 변했다.

앞으로도 더 빠르게 변할 것이다.


아주 오랜 옛날

아니 그다지 멀지 않은 50년, 60년 년 전만 해도 나이 마흔은 꽤 삶을 오래 산 축에 끼었으리라.

나의 10대 시절 내 눈에 비친 주위의 마흔 살, 40대는 그야말로 노인이었다.


그렇게 작지 않은 나이, 마흔 살이 되던 해 해외 현지에서 이직을 하고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마흔 살 그리고 40대는 거침이 없었다.

2010년대 중반까지 개인사에서 그야말로 찬란한 40대를 보냈고, 그 40대의 끄트머리에서 예상하지 않은 위기상황을 만났으며, 절치부심 다시 기회를 잡아 호기롭게 극복하고 일어나 낯선 도시에서 홀로 새롭게 일을 시작했다.


물리적 현상으로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지만, 우리 삶에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

멈추어 있는 것은 계속 멈추고 있고 싶어 하고, 움직이는 것은 계속 움직이고 싶어 한다.

관성의 법칙은 매우 단순하나 그 힘은 대단하다.

현지에서 10년 일을 했으니 더 계속하고 싶었다. 멈추고 싶지 않았다.

마음만으로 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방법을 몰라하던 그때 기회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재빠르게 움직였다.

경험을 녹여서 이력서를 작성하고 서울에서 진행된 서너 번의 면접을 치르고 또다시 일어섰다.

마흔 살 되던 해 해외현지에서 법인장으로 자리를 옮겨 10년을 살아냈으며, 그 이후 또 다른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으나 다시 기회가 왔고 그것을 잡았다.

이 모든 일들이 내가 잘해서 내가 능력이 있어서 그리된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상황들은 관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내가 잘해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나는 다만 살아냈을 뿐이다.


30대는 어려서 겸손을 몰랐다지만, 나의 40대 역시 겸손과 거리가 멀었다.

삶을 좀 더 지혜롭고 겸허하게 살았어야 했다.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며 지낸 나의 마흔 살과 40대, 좀 더 지혜롭고 겸손하게 살았어야 했다.


40대를 보내며 한국 출장 중에 예외 없이 헌책방을 들렀다.

당시 함석헌의 글을 좋아했다.

그의 글에는 힘이 있었고 영혼을 울리는 울림이 있었다.

그의 글을 통해서 힘과 용기를 얻었고, 삶의 방향을 잡아 나갈 수 있었다.

서울 출장 중에는 언제나 헌책방에 들러 그의 오래된 책을 찾는 작업을 했다.


그의 글 중에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글이 있다.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큰 힘, 그분의 발길에 채여서 인생을 살았노라고.'

정확한 글귀는 기억나지 않으나 보이지 않는 큰 힘에 떠밀려 살았다는 뜻의 글로 기억하고 있다.

내가 잘나서 무엇이 잘되었다는 인간적인 오만, 혹은 역으로 내가 못나서 잘 못되었다는 인간적인 고뇌 역시 인간의 착각이라는 말이리라.


40대의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경험하면서 삶의 지혜를 조금씩 쌓아나갔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잘 했던 잘못했던, 어떠한 상황에서도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마흔 살, 그리고 나의 40대는 삶의 전성기였으나, 그 어떤 큰 힘에 떠밀려 살아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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