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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동일 Apr 14. 2021

부산과 광주의 작곡마당

작곡마당 이야기(5)

장르와 전공을 초월한 작곡가들의 모임인 작곡마당이 2021년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기념 공연 개최를 주저하고 있고, 우선 브런치에 지난 20년을 정리하는 글을 시리즈로 게제했습니다. 작곡마당 이야기 마지막 편은 지방에서 활동하는 작곡마당, 부산작곡마당과 광주작곡마당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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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부산에서 작곡가 백현주 님이 작곡마당을 찾아왔다. 그 당시에 여러 창작동요제에서 주요 상을 휩쓸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던 작곡가였다. 그는, 2003년 문예진흥기금을 지원 받아 CD와 함께 출간했던 작곡마당의 첫 번째 작품집 <장르의 벽을 넘어서> 악보집을 부산의 한 음악사에서 발견하고, 자기가 원하던 모임이라고 생각해 작곡마당을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창작동요 활동은 그만하고 자기만의 작곡 활동을 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제9회 신동일의 작곡마당>에서 그의 첫 작품 발표를 했는데, <바다에 대한 일곱가지 생각>이라는 피아노 모음곡 중 발췌하여 연주했다. 


그렇게 작곡마당과 인연을 맺은 백현주 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산 지역에서 중요한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고, 성격도 적극적이고, 작곡마당의 취지에도 크게 동감하는 듯 하여, “신동일의 작곡마당”에 2차례 정도 참여한 뒤에 부산에서 작곡마당을 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부산에서 이런 활동에 참여할 작곡가들을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며 자신 없어했었는데, 나는 그가 작곡마당을 부산에서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생각되어, 서울에서 적극 지원해 드리겠다고 설득하여 “부산작곡마당”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그리하여 2006년 여름, <제14회 신동일의 작곡마당>이 부산 금정문화회관 소공연장에서 열고, 부산작곡마당의 출범을 알렸다. 

백현주 님이 걱정했던 대로 부산에서 참여할 작곡가를 구하기 어려웠다. 부산 작곡가로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김태환 님이 참여했고, 서울에서 나와 함께 서재용, 김연선, 김한나, 정보형 등 5명의 회원 작곡가들이 부산으로 출동했다. 그리고 부산이 고향인 김정희 회원이 공연 관람을 위해 일정을 맞춰 부산으로 내려왔고, 나는 연주를 맡아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여름 휴가를 대신하는 일정을 잡아 부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시작하여 나는 한 동안 매년 여름, 휴가 겸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가서 부산작곡마당 발표회를 열었다. 


부산에서 첫 발표회를 한 뒤, 인제대학교 작곡과의 오세일 교수가 합류했다. 오세일 교수는 나의 대학 후배였는데, 백현주 작곡가가 우연히 어떤 심사 현장에서 만나 “신동일”을 잘 아는 것을 확인하고 부산작곡마당에 합류를 권유했다고 한다. 오세일 교수는 지금까지 백현주 대표와 함께 부산작곡마당을 이끌어 오는 주축이 되어주고 있다. 


2007년 여름, 부산에서 열린 <제17회 신동일의 작곡마당>에는 백현주, 김태환, 오세일, 김수진 등 4명의 부산 작곡가가 참여했고, 서울에서 나와 정보형, 그리고 작곡마당 성가모임에 참여하고 있던 김진아 등 3명이 참여했다. 김정희 회원은 이번에도 부산 방문 일정을 작곡마당 공연 시기에 맞췄고, 합창단 음악이 있는 마을에서 단원과 작곡, 편곡 등을 맡아 활동하던 부산 출신의 이찬수 작곡가도 공연을 관람했다. 이날 공연을 마친 뒤의 뒤풀이는 밤을 새워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넓은 숙소를 하나 빌려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새벽에 몇몇이 바닷가로 나와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해운대에서 해돋이를 보았다. 부산작곡마당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계기가 된 해였다. 


2008년 다시 부산에서 열린 <제19회 신동일의 작곡마당>에는 서울에서 나와 윤희나 회원 등 2명이 참여하고, 부산에서 5명의 작곡가가 작품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오세일 교수의 추천으로 인제대학교 작곡과 학생이 한명씩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부산작곡마당 이름으로 부산문화재단에서 기금 지원을 받아 자립을 하게 되었고, 매년 자력으로 정기발표회를 이어나가고 있다. 더 이상 서울에서의 지원은 필요 없다. 내가 아예 참여를 못한 해도 있었다. 

부산작곡마당이 자립한 2009년의 <제4회 부산작곡마당 정기연주회>부터 합창지휘자 김강규 님이 의기투합하여 그가 지휘하는 민간합창단이 후반부 스테이지 전체를 담당하여 창작합창곡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처음에는 부산하모니합창단이, 현재는 부산지휘자합창단이 부산작곡마당과 함께 하고 있다. 특히 몇 년 전부터는 젊은 작곡가들을 대상으로 합창곡 공모를 하여 신진작곡가들에게 합창곡 연주 기회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부산작곡마당의 합창단 스테이지는 큰 의미가 있다. 공연 규모가 커지고, 관객들에게 더 흥미로운 작곡발표회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었고, 지역 합창 음악의 산실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20년에는 부산작곡마당의 또 다른 계기가 주어졌다. 작곡마당이 15년 동안 공연해 온 금정문화회관에 새로운 관장님이 오시면서 금정문화회관 20주년 기념 음악극 <금어기행>을 제작하게 된 것이다. 금정문화회관도 최초의 창작 공연이었고, 부산작곡마당으로서도 최초의 기획 제작 공연이었다. 부산작곡마당의 백현주, 오세일, 진소영 등 전문작곡가들이 나와 함께 공동 창작했고, 부산의 연출가 김지용 작, 연출, 부산에서 오랫 동안 활동해 온 지휘자 김강규 등 부산 예술가들의 역량을 최대한 모아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부산작곡마당의 새로운 도약을 기대해 본다.    



  

2001년 가을, “제2회 신동일의 작곡마당”에 고등학생으로 참여하여 졸업할 때까지 대단한 활약을 보였던 광주의 이승규 회원은 작곡과 진학을 실패하고 군입대 후 연락이 끊어졌다가, 30살이 되어서 다시 작곡을 시작하고 싶다고 작곡마당 문을 두드렸다. 그는 그렇게 재기하여 광주광역시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지금은 광주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전개하는 작곡가로 발돋움했다. 


그가 광주에서 음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광주작곡마당”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광주는 부산보다 음악 환경이 더 열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지만, 나에게 “광주작곡마당”을 운영하기 위한 몇가지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도 만들고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광주를 한 번 가서 일을 만들어내면 될 것이었는데, 내 개인적인 작업들이 계속 이어지면서광주에 갈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광주작곡마당” 출범은 계속 미뤄졌다.  

그러는 동안 작곡가 이승규는 더욱 가열차게 음악 활동을 했다. 작곡가로, 피아니스트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즉흥 연주를 포함한 다양한 음악 작업을 통해 광주의 유력 작곡가로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이승규 스스로 “광주작곡마당”을 시작해 보겠다고 연락해 왔다. 이승규가 광주의 작곡가들을 모아, 2018년 마침내 <제1회 광주작곡마당 창단음악회>를 열었다. 정말 뜻 깊은 일이었다. 나와 부산작곡마당의 백현주 대표가 응원하는 마음으로 음악회에 함께 참여해서 작품을 발표했다. 


“광주작곡마당”은 2019년 제2회 정기연주회와 뮤지컬 세미나 등을 개최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혀가는가 싶었는데, 2020년 코로나 사태로 인해 활동이 정지되었다. 코로나가 진정되고 “광주작곡마당”이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절이 돌아오기를 희망해 본다.      




작곡마당이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가고 있다. 다른 몇몇 지역도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활동의 중심이 되어줄 중심 회원들이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주저하고 있다. 

작곡마당은 서울에서의 활동 조건이 오히려 열악하다. 서울은 전공자와 비전공자가 함께 하는 예술 활동에 지원해 줄 수 있는 공공기금이 없다. 2003년 지금은 없어진 음반 제작 지원을 받아 첫 작품집 <장르의 벽을 넘어서>를 만들었고, 참여정부 시절 “독립, 다원예술지원” 카테고리가 생겨서 2년 정도 지원받을 수 있었는데, 나중에 “독립예술” 분야는 없어지고 “다원예술지원”만 남게 되어 그나마도 지원받을 수 없게 되었다. “부산작곡마당”은 대체로 안정적으로 부산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왔고, “광주작곡마당”은 이승규 대표의 열정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단체의 역량을 키우고 있다. 


작곡마당은 창작음악 활동으로는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방식으로 이어온 작곡가들의 모임으로, 작곡계의 가장 밑바닥을 다지면서 창작음악의 저변 확대에 실제적으로 기여해왔고, 알게 모르게 새로운 음악 문화를 만들내면서 작곡가들과 관객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주어 왔다. 공공기금 지원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자력으로 의미 있는 창작 활동을 전개해 왔다. 작곡마당은 열려 있다. 작곡마당 활동에 열정을 쏟은 작곡가들도 있었고, 작곡마당 활동을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간 작곡가들도 있다. 현재 세 분의 정기 후원회원과 공연 때마다 대관료를 지원해 주시는 특별한 후원인도 계시다. 작곡마당은 형편이 좋든 나쁘든 작곡마당의 길을 갈 것이다. 후퇴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https://youtu.be/NcxYSuUZBOo

신동일 "바다와 달"(이현수 작사) / 2017년 제10회 부산작곡마당 정기연주회 공연 실황 / 부산지휘자합창단(지휘: 김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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