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병맥주 한 잔이 절실한 밤이 있다. 안주로는 열린 창 밖으로 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실은 좋아하는 영화나 노래와 만년필과 끄적일 종이뿐이지만. 그런 밤 조명을 켜고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뒤적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청승을 떨어도 좋겠다. 오래가진 못한다. 내심 짜증 나게 부럽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 봄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는데, 만족할 만큼의 양이길 바란다. 건조하고 덤덤한 건 마치 가면을 쓴 나 같아서 제발 모든 것을 적셔줄 비가 절실하다. 비 오는 밤의 냄새와 소리가 만발한 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립다.
여보, 당신 갱년기 시작됐나 봐. 오늘은 밥 하지 말고 빨래도 하지 마. 재활용도 내가 해줄게. 2박 3일 어디 여행이라도 갈래? 어디 가고 싶니. 물어줄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따뜻하게 안아주며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니 옆엔 내가 있다고. 다 잘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