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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아나 Jul 05. 2023

어떤 발걸음


https://youtu.be/-1_Dq3Ex968





안 신던 신발을 며칠 신고 다녔더니 양쪽 발가락 여기저기에 물집이 잡혔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바쁘게 다녀도 그렇지 빨간 물집이 잡힐 정도의 통증을 못 느꼈나 싶어서다. 아마 걸을 때 아프다 싶다가도 일하느라 잊었을 것이고 시간에 쫓기다 보니 물집이 터져 피나기 일보 직전에 집에 들어왔던 것. 들어오자마자 아이 저녁 밥상 차려주고,

맛있냐고 두어 번 확인 후 파김치가 되어 그대로 침대에 벌러덩 누워 있으려니 쓰라리고 통증이 밀려왔다.


짜증 나게 오늘따라 반창고가 안 보인다. 분명 지난번 다이소 갔다가 사 왔는데, 평소에도 가위, 칼, 이런 건 발이 달렸는지 찾을 때마다 없다. 옛날에 엄마가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찾다가 볼 일 다 본다고. 그때의 젊은 나는 엄마가 허둥대며 물건을 잘 못 찾으시는 게 이해되지 않았고, 이런 싹수없는 말을 했다.


엄마, 우선 어디에 있던 물건인지 가만히 생각을 해야지.

그리고 천천히 찾으면 나와요. 여기 있네 엄마!


넌 찾기 선수다. 어째 그리 잘 찾냐.


큰소리쳤던 내가 허둥지둥 이러고 있었다니 결국 못 찾고 엄마를 떠올렸다니, 이런 거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래서 엄마가 그랬던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간이 입바른 소리를 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엄마의 그림자를 따라 그 길을 걷고 있다. 엄마라는 삶의 무게와 자식들 모르게 무수히 흘렸을 눈물과 파묻어버린 아픔들. 그 먹먹함이 밀려온다.


가끔 길 잃은 아이 같다. 심적인 독립이 덜된 값을 톡톡히 치르는 중이다. 길 잃은 아이처럼 울다가 문득 나의 책임이 눈물을 그치게 하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생계를 위해 뛰어드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때론 형벌 같고, 때론 배부른 소리 같다. 견디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 끝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나를 믿지 못해서 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려움 앞에 무릎을 꿇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이 있어서 다행이다. 어떤 총량의 법칙이라도 내게 적용되어 아침이면 새로운 해가 뜨듯 용기가 생기길 바라며 사는 수밖에. 그리고 그 용기는 나를 낳아준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믿는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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