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봄이다.
삶의 의욕과 희망이 싹트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입맛을 돋우는 다양한 봄나물이 지천에 널린 시기이다.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마트에 가면 이름도 낯선 여러 가지 야채들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한다.
어릴 적에는 엄마가 해주는 반찬에 익숙해져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는 인스턴트식품인 라면 정도였다.
결혼을 하고 맞벌이 부부로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주방을 들락거리며 아내의 등 뒤로 요리의 기본은 배웠다.
팔순을 넘은 아버지는 밥하기와 라면 끓이기 정도의 단순한 음식 조리밖에 못하시는 수준이고 장인어른도 최근에야 아내의 도움으로 전 국민의 기본 반찬인 김치찌개를 만들어 드신다.
아내의 퇴근이 늦어지고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 시작했던 요리에의 도전은 내게 커다란 모험이었다.
제일 먼저 도전한 음식은 돼지고기와 김치를 이용한 볶음요리였고 그 후 더욱 용기를 내어 각종 국류와 나물 무침, 그리고 국수 요리에 도전했다.
그런 나의 도전에 가속도를 붙인 것은 인터넷 레시피였다.
티브이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유명한 남자 요리사들이 방송에서 여러 가지 맛있는 요리를 척척 만들어 내는 것을 보면서 '나라고 저렇게 못할 이유가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스마트폰을 검색해서 만들 요리의 레시피를 한번 쓰윽 스캔한 후에 내 나름의 판단을 보태 뚝딱 만들어 내니 한 그릇의 맛있는 요리가 만들어졌다.
요리 초기에는 간 맞추기와 야채 씻는 게 힘들었다.
진간장을 쓸지 국간장을 쓸지, 참기름을 써야 하는지 들기름을 써야 하는지, 소금으로 간을 해야 하는지 긴장으로 간을 해야 하는 지의 문제는 요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포인트였다.
제일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만만한 요리는 돼지고기 김치볶음이었다. 돼지고기를 볶고 김치를 곁들여 설탕을 조금 첨가해서 볶아내면 한 끼 반찬으로 충분한 돼지고기 김치볶음이 완성되었다.
첫 요리에 성공하자 자신감이 생겼다.
아내의 생일날 미역국에 도전했다.
참기름에 소고기를 볶은 후에 물에 불려둔 마른미역을 같이 볶아서 소금 간을 해서 아내에게 차려주니 아내는 너무 맛있다고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요리사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내의 입맛을 즐겁게 해 주고 난 후에는 두 딸을 위한 요리에 도전했다. 면 종류를 좋아하는 딸들의 최애 음식인 잔치국수와 비빔국수를 시도했다.
멸치와 무, 그리고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면을 쫄깃하게 삶아
달걀지단, 김치볶음을 고명으로 얹고 진간장에 참기름, 파, 고추, 다진 마늘, 고춧가루를 섞어 양념간장을 만들면 잔치국수가 탄생했다.
두 딸들은 아빠의 잔치국수가 제일 맛있다며 주말이면 국수를 만들어 달라고 졸라 댔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달걀지단을 만들 때 계란 프라이 뒤집는 게 제일 어렵다.
그 과정은 온전히 아내의 힘을 빌어야 한다.
그동안 만든 요리는 다음과 같다:
미역국, 콩나물국, 근대국, 된장국, 소고깃국, 카레&라이스,
갱시기, 잔치국수, 비빔국수, 미나리 무침, 취나물 무침, 동초 무침, 봄동 무침, 유채 무침 등.
나는 항상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맛이 없는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그것 만큼 불행한 일이 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곤 했다. 요리는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맛있게 만들어 내는 것이 관건이다.
어제저녁에는 오랜만에 근대국과 깻잎순 멸치볶음을 만들어 보았다. 아내가 먹어 보더니 자기 입맛에 딱 이라며 그릇에 담아서 장인어른께 갖다 드렸는데 오늘 너무 맛있게 드셨다는 얘기를 전해 주었다.
오늘 저녁에는 봄내음이 물씬 나는 취나물과 미나리를 조물조물 무쳐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행복도 우리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삶의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