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에서 Keane의 노래 'Everybody's Changing' 이 흘러나온다. 내가 변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본다.
사랑해서 결혼했고 비가 오나 눈이 와도 서로를 위하며 백년해로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지금 나는 혼자다.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딸애가 엄마, 아빠가 자꾸 싸우면 집에 오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고 간 걸 보면 우리 부부가 좀 싸우긴 했었나 보다. 단순한 말싸움부터 속을 확 뒤집는 전쟁까지 지난한 부부 싸움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부부 싸움 후에 이어지는 반목과 무관심도 그 후유증으로 계속 따라다녔다.
서로 다른 인격체 둘이 만나 20년 넘게 싸우지 않고 산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렇지만 부부 싸움은 그 결과로 보면 득이 없는 제로섬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아내 모두에게 별로 득이 되지 않았다.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와 하나가 만나 화학반응을 일으키면 최소한 둘과 그 부산물인 알파가 있어야 하는데
부부싸움의 끝은 항상 제로이거나 마이너스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학창 시절 친구와의 싸움에는 항상 그 알파가 존재했다.
친구와 화해하고 나면 친구와의 우정은 더 돈독해지고 친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부부 싸움은 그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불가사의한 행위이다.
싸움이 끝나고 한동안 소강상태와 잠잠한 휴전기를 거치고 나면 머지않아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그동안 노정된 서로의 약점과 단점을 보완하여 다음 전투에는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또 다른 전략과 전술을 연구한다. 그렇게 부부의 전쟁은 휴전과 속전의 악순환을 반복한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 싸움에는 항상 무언의 불문율이 있다.
절대 '이혼'이라는 이야기는 감히 누구도 먼저 꺼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우리의 전쟁은 종전을 고하고 더 이상의 싸움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혼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기 싫어서 더 치열하고 열렬하게 싸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부부싸움의 원인을 분석해 보니 같이 생활하는 시간이 많으면 싸우는 횟수가 더 늘어나는 것을 직접 목도했다.
그리고 어떤 글을 보니 정년퇴직 후 부부가 같이 생활하면서 부부싸움의 빈도가 늘어난다는 조사가 내 눈길을 끌었다.
퇴직 후 노후를 아내와 즐겁게 보내겠다는 꿈같은 이야기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래서 삼식이라는 신조어도 생겨 난 것이리라.
나는 부모님께 잠시 떨어져 계시라고 조언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아 두 분은 여전히 그렇게 아웅다웅 싸우며 사신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옛말은 맞지만 물을 너무 자주 베다 보면 손을 벨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부부 싸움이 잦을 때는 가끔씩 떨어져 지내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싸울 확률이 높은 건 기정사실이다. 대화의 평행선을 벗어날 재간이 없고 해답 없는 말싸움은 한쪽이 말문을 닫거나 사라지는 것만큼 좋은 해결책은 없다.
나는 가끔씩 잠든 아내에게 입을 맞추는 일이 있다.
잠에서 깨어 내 곁에 잠든 아내의 모습을 보면 아내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운 생각이 이따금 든다.
그럴 때 나는 가만히 아내의 손을 잡아 보기도 하고
아내의 입에 입술을 대기도 한다.
이번 주말에도 나는 아내를 떠나 나의 서재에서 혼자 유유자적하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 주말에는 아내와 싸울 일은 없음을 위안을 삼는다.
내일 또 다른 부부 싸움의 전장에서 핏대 올리며 싸울 지라도 오늘은 잠시 휴전을 고한다.
Keane의 노래 가사가 가슴에 와닿는다.
"모두는 변하고 예전 같지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