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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산은 거기 있었다(1)

by 석담

며칠 전 아내가 뜬금없이 눈꽃 축제가지 않겠냐며 내 의사를 물어 왔다.

생전 처음 가는 눈꽃 축제라 한껏 기대에 들떴지만 이름만 축제일뿐 그냥 눈산을 오르는 눈길 산행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남덕유산 설산 산행이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아내는 대학 재학시절 산악부 활동을 했다. 신혼 초에 '자일'이니 '앙카'니 하며 전문용어를 써가며 자신의 산악부 경력을 호기롭게 자랑했다. 결국에는 앙카를 제대로 못해 6개월 만에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할 무렵에는 등등하던 기세는 사라지고 한풀 꺾인 풀 죽은 목소리로 끝까지 가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내가 매주 동네 주변의 근거리 산행을 다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내는 1년에 한두 번 장거리 산행을 떠났다.

주로 설악산과 지리산을 무박종주로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등산을 떠나는 아내를 보며 나는 "언감생심" 같이 가자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아내의 등산 레벨에 견주어 보면 나의 등산은 겨우 "새발의 피"나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수준이 아닐까 자평해 본다.


다가오는 일요일 당일 산행으로 급하게 결정된 터라 마음이 바빴다.

나는 한 번도 눈길 산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아이젠이 없었다. 급하게 익일 배송이 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적당한 가격의 아이젠을 골라서 주문하고 낡아서 해진 등산배낭을 교체할 요량으로 30리터 새 배낭을 주문했다. 그렇게 하나씩 이틀 후로 닥친 눈길 산행을 위한 준비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체력이다.

2년 전만 해도 매주 산행을 다니며 기본 체력을 연마했기에 이 정도의 산행은 "식은 죽먹기" 였으나, 주말농장을 하면서 매주 밭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전혀 산행을 딱 끊지는 않았었다. 몇 달에 한 번씩 청도 남산을 혼자서 등산하곤 했다.

몇 주 전에도 청도 남산을 혼자서 올랐었다.

해발 1508m인 남덕유산이지만 향적봉(해발 1614m)도 오른 전력이 있는 나로서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주말 비예보가 있더니 금요일 새벽 출근길에 만난 굵은 빗줄기는 내 마음을 무겁게 때렸다.

눈꽃 보러 가야 하는데, 초를 쳐도 분수가 있지. 웬 겨울비가 이렇게 내리는지...

나는 이 굵은 빗줄기에 남덕유산의 눈이 녹아 눈물이 되어 흐를 것 같은 최악의 상상을 했다. 출근하자마자 덕유산무주리조트의 실시간 cctv를 가동해 현재의 산 상황을 둘러보았다.


"아뿔싸"내 입에서는 외마디 탄성이 흘러나왔다.

스키장을 가로지르는 일련의 무리들이 전부 우산을 쓴 채 이동 중이었다.

나는 지금 이 비가 남덕유산에서는 빨리 눈으로 바뀌는 신기를 보여주기를 기도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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