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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명절

by 석담

40년 전쯤엔 그랬었다.

설이나 추석을 쇠러 촌에 가려면 몇 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차표를 예매해야 했고 발 디딜 틈 없는, 정원을 한참이나 초과한 기차에서 내리면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몸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승객들로 빽빽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고향 간다는 일념으로 최면을 걸면 모든 피로와 고통도 사라지던 시절이었다.


신작로에서 내려 고향집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소한 돼지기름에 배추적은 노릇노릇 익어가고 "우리 장군 왔나?" 하시며 반기시는 촉촉한 큰어머니의 눈가에는 반가움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사촌형, 사촌동생들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을 동수나무 아래 모여서 해가 지도록 얼음을 지쳤다.

설날 아침 한복 예쁘게 차려입고 새배를 드리면 큰아버지, 큰어머니 웃으시며 주머니도 없는 한복 바지에서 종이돈을 끝없이 만들어 내셨다.


차례 지낸 상머리에 큰아버지는 족보를 내어 놓으시고 시조 할아버지는 누구인지 우리는 누구인지 자세하게 설명하시지만 고만고만한 사촌 형제들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면 큰어머니는 일가친척들에게 바리바리 봉개를 싸서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문 앞에서 엄마와 큰어머니는 손을 잡고 눈물의 이별을 했다.

내년에 또 오겠다며 또 보자던 그 굳은 약속도 세월 속으로 묻혀 버렸다.


다시 강산이 두 번 바뀌고 큰아버지도 별세하시고, 큰어머니도 재작년에 돌아가셨다.

이제 고향 가는 기차표 예매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만원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된다.


미루나무 신작로를 지나야 있는 고향집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이름 모를 길 고양이가 텃밭에서 노닐고 잡초만 무성하다.


이제는 시골에 가도 우리를 반겨줄 서글서글한 웃음의 큰어머니도 없고, 돋보기 너머로 빙그레 웃으시던 큰아버지의 미소도 없다.


더 이상 고향집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사촌형은 대구에서 차례를 지내고 서울 사는 사촌은 명절에 오지 않은지 오래이다.


몸도 마음도 편해진 명절이지만 오히려 20년 전의 설 명절이 그리운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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