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막을 기다리며

樂滿亭의 탄생

by 석담

태생이 촌놈이라 그랬을까?

내게는 언제부터인지 농촌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항상 귀농이나 귀촌에 관심을 가지고 귀농귀촌 관련 카페나 블로그를 기웃거렸다.

그런 나의 농촌 사랑에 불을 지핀 건 마누라였다. 자기는 절대 시골 가서는 못 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던 그녀가 언제부터인가 농촌 예찬론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내가 시골 예찬론자로 돌아선 건 청도에 텃밭이 생기면서부터다.

주말 농장을 갖기 위해 일 년 넘게 주말마다 부동산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현장 답사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떡하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 법한 적당한 크기의 마음에 꼭 드는 위치의 밭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그렇게 우리 가족은 주말 농장을 갖게 되었다.

작년 가을에 400평 정도의 적지 않은 밭을 구입 해 계약을 마치고 농지원부 발급까지 마무리했다.


올해 춘삼월.

아직 지난겨울의 허허함이 가시지 않은 청도 들판에서 생초보 농부의 텃밭 농사가 그 불안한 시작을 예고했다.


동네 주민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정보를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익힌 터라 우선 음료수 여러 박스를 구입해 안면이 있는 동네 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이장님께 선물공세로 나아갔다.

인상 좋은 동네 옆 밭 아저씨에게는 우리 밭 로터리 치는 것을 부탁해 두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부담 없는 비용으로 기꺼이 우리 밭 로터리를 쳐 주신단다.


모든 농사 정보는 유튜브를 통해서 얻고 그래도 부족한 실전 정보는 농약사나 종묘사를 통해 얻었다.

초보 농부답게 계획이 거창했다.

감자, 콩, 땅콩, 고구마, 들깨, 상추, 호박, 오이 등 그 가짓수도 다 못 외울 정도의 종자며 모종을 심었다.


나는 곧 닥쳐올 병충해와의 전쟁, 잡초와의 전쟁은 상상도 못 한 채 친환경 농사를 짓겠다며 유기농 농약상을 들락거렸다.

초보 농부의 호기로운 장담은 올해 여름이 끝날 무렵 그 종지부를 찍었다.

장마철에 일주일이면 무릎까지 자라는 잡초와 벌레 먹어 떨어지는 숱한 낙과를 감당하기에는 나의 일천한 농사 경험과 짧은 지식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야채 종류의 부식을 사 먹지 않았다는 걸 그나마 작은 위안으로 삼았다.


더운 여름날 주말 하루 종일 400평이 넘는 밭의 빽빽하게 자란 잡초를 예초기로 자르고 나면 온 몸이 땀범벅이 됐다.

그것은 주말 농부가 아니고 중노동이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제초제를 쓰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다.

아마도 옆에서 큰 도움을 주었던 어머니나 아내가 없었으면 올해를 마지막으로 때려치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주말이었다. 어머니가 내게 혼잣말처럼 한마디 툭 던지셨다.

"집 한 채 지어라. 내가 부산에서 왔다 갔다 할라니까 너무 힘들다."

"돈 대 줄랍니까? 진짜 지예?"

그것은 우리 농막의 탄생을 알리는 어머니의 일성이었다.

그 후로 공사업체 현장 답사하고, 견적 받고, 공사 계약금 보내는 것 까지 일사천리로 농막 제작 프로젝트는 술술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인터넷으로 읍사무소에 가설건축물 축조 신청까지 마쳤다.


또한 장인어른이 기꺼이 농막 이름을 지어 주셨다.

'즐거울 락(樂) 찰 만(滿) 정자 정(亭)

즐거움 이 가득한 집'

우리 농막은 樂滿亭으로 이름 지어졌다.


그리고 지난주에 우리 밭에서 농막 제작의 시작을 알리는 포클레인으로 터 다지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12월에는 농막에서 브런치 글을 쓰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농막 문패를 제작하기 위해 디자인한 글씨체는 예서체로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