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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매도 설레요

by 석담

1997년 겨울, 1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좀처럼 눈 구경하기 힘든 대구에 함박눈이 하루종일 내린 토요일이었다. 주말이라 시내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지금은 없어진 동인호텔 커피숍에서 선을 보기로 했었다.

나는 내리던 눈을 서설(瑞雪)이라 마음대로 생각하며 커피숍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인적 사항을 미리 듣지 못했지만 선 보려던 이성을 찾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구석 자리에 앉아 보리차를 홀짝 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카운터에서 나를 찾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나는 손을 들어 "내 여기 있노라"하고 티를 낸 후 그녀를 만나러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26년 전 호텔 커피숍에서 아내를 만나던 당시의 풍경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장인어른이 아내에게 손수 적어주신 나의 인적사항에는 신문방송학과 대신에 방송통신대학(?)이라는 엉뚱한 인적사항이 적혀있었다. 그래서 아내의 표정에는 약간의 실망감이 비친 듯했지만 장인어른이 오기하신 것을 알고는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그 당시 나는 서른둘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로 맞선도 벌써 스무 번 넘게 보았다.

커피숍을 나온 우리는 한잔 하면서 저녁을 먹기로 하고 레스토랑을 찾았다.

맥주를 곁들여 스테이크를 먹고 2차로 노래방에서 의기 투합했다.


어두워진 거리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고 갔으며 낮에 내린 눈은 밤이 되자 얼어붙어 거리는 온통 빙판이 되어 있었다. 아내는 맥주 한잔에 취했는지, 작전이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비틀거리다 눈길에 미끄러져 아스팔트 위에 드러눕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놀란 나는 그녀를 부축하려다 같이 드러눕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고 말았다.

첫 만남 치고는 좀 파격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그날의 맞선을 마무리하고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한 후 각자 택시를 타고 헤어졌다.

그날은 내 청춘의 마지막 데이트였고 유부남이 되기 위한 첫 관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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