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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Dec 14. 2023

라떼 아빠의 자식 사랑

오래전에 어린아이가 혼자 시장을 다녀오도록 설정하여 집으로 잘 찾아오는지 카메라가 추적하며 지켜보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방송을 보면서 나는 국민학교 4학년때가 떠올라 코웃음이 났다.

부산에 살던 내가 경북 의성의 깡촌을 혼자서 찾아 떠난 건 4학년 여름방학 때가 처음이었다.

시골에는 큰아버지가 정미소를 하셨고 나는 혼자 사시는 큰어머니 댁에서 머물렀다. 큰아버지 댁에는 동갑내기 사촌과 두 살 위의 사촌형이 있었다.

사촌과 나는 여름 내내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들로,  산으로, 그리고 강으로 쏘다녔다.


내가 여름방학을 맞아 처음 시골행을 결심했을 때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혼자서 가기는 힘들다는 게 그 주요 이유였고 큰어머니를 귀찮게 해 드린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호락호락 허락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반나절의 단식과 삼박사일 조르기 끝에 나는 반강제적으로 허락을 받아냈다.

시내버스조차 자주 탈 기회가 없던 초등학교 4학년인 그 무렵 시골 가는 길은 걱정과 도전의 길이었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부산역으로, 부산역에서 기차(지금은 사라진 통일호)를 타고 동대구역으로, 동대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북부정류장으로, 북부정류장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의성의 면소재지로 그렇게 쉬지 않고 이동했다.  나는 점심 무렵이 마침내 큰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에 도착했고 큰어머니는 부산의 엄마에게 잘 도착했노라 안부전화를 하셨다.


두 주 전에 큰딸아이가 서울에 직장을 구하는 바람에 차을 운전 하여 서울에 사는 처형집에서 당분간 출근하라며 데려다주고 왔는데 그 사이를 못 참고 방을 얻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번 주말에 또 차를 운전해서 서울을 가야 한다. 토요일에 방을 구해서 일요일 이사까지 해주고 올 요량이다.

문득 대학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부모님은 대학 입학식에 오시지 않았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천리길을 달려오실 여력이 없으셨고 나는 오시지 않아도 된다며 한사코 만류했었다.

하숙집 구하기도 이삿짐 옮기기도 혼자서 해냈다.

올해 새해에는 부산 광안리에서 온 가족이 모여 일출을 맞았다. 우리 가족은 몇 년 전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해맞이 여행을 해오고 있다. 올해 연말에도 부산 해운대에서 우리 부부와 두 딸이 모여 2024년 새해를 맞이하기로 했다.

대학에 다니는 작은 딸이 기차 편을 예약하기가 힘들다며 타박을 하길래 오늘 직접 발 벗고 나섰다.


오늘 오후 2시에 발매가 개시될 거라는 소식을 듣고 기차표 예매 앱을 열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12월 31일 내려올 기차와 1월 2일 상경할 기차를 예약해 달라는 딸아이의 요청에 아무 걱정 말라며 호기롭게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2시 정각이 될 무렵 기차표 예매 앱은 로딩 상태로 들어갔다. 진행이 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느리게 진행되어 탄성을 지르며 들어가서 적당한 시간과 좌석을 선택하고 결제를 진행했는데 결제가 먹통이었다.

그러면 다시 처음부터 로딩이 되었다. 그러기를 몇 차례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나는 1시간 넘게 스마트 폰과 씨름하다 마침내 두장의 표를 예매하는 데 성공하여 작은 딸에게 전달했다.

딸아이는 나에게 감사의 하트를 보냈다.


"문득 학창 시절의 내 모습이 보인다.

그곳은 부산역 광장 앞이다.

그날은 추석 귀성 기차표 예매가 있는 날이었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날, 부산역 광장은 추석 기차표를 예매하려던 많은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국민학생이었던 나는 슬리퍼에  반바지 차림으로 그을린 얼굴에는 삐질삐질 땀까지 흘리며 추석 기차표 예매를 위해 반짝이는 눈으로 끝없이 이어진 긴 줄의 끝을 바라본다. 혹시라도  새치기하는 사람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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