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었다.
지난겨울이 시작되고 주말 농장에서 내 투박한 두 손에 흙 묻혀 보기는 어제가 유일했다.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수도가 꽁꽁 얼고 농막 안에도 냉기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 농사일은 감히 꿈도 꿀 수 없었다.
추위를 핑계 삼아 농한기라는 이유로 이곳저곳 떠돌기도 하고 가족들과 여행도 다녔다.
어제는 달랐다.
영상 20도가 넘는 완연한 봄날씨에 수도가 녹아 물이 나왔고 겨우내 딱딱했던 밭이 푸석푸석해져 먼지가 날리고 있었다.
봄바람이 태풍급으로 몰아치던 어제 오전에 청도 농막을 찾았다.
겨우내 미뤄둔 농사거리를 하나씩 해볼 요량이었다.
지난 초겨울에 부직포로 대충 덮어 놓은 봄동의 부직포를 걷어 냈다.
지난겨울의 추위에 전부 얼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봄동이 파랗게 살아서 다시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봄동은 배추의 한 종류로 겨울을 이겨내고 자란 맛있는 봄 식재료이다.
마늘과 양파만 겨울을 이겨낸 것이 아니었다.
봄동은 야채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소이다. 봄동 겉절이도 맛나지만 나는 특히, 봄동 전을 즐겨 먹는다.
아내가 노릇하게 부쳐내는 봄동 전은 막걸리를 부르는 맛이다.
배추 전도 맛있지만 봄에 먹는 봄동 전의 맛에 비길 수없다. 아마도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채소라 그런가 보다.
먼저 과일나무에 밑거름 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자두 두 그루, 미니사과 두 그루, 밤나무 두 그루, 매실 두 그루, 대추나무 한 그루, 사과 대추나무 한 그루, 감나무 여덟 그루, 호두나무 세 그루.
퇴비를 수레에 싣고, 나무 밑동에 둥글게 홈을 만들고, 퇴비를 주고, 흙을 덮고 하는 동작을 반복해서 하고 또 했다.
반쯤하고 나니 허리가 뻐근하고 오금이 저려왔다. 그때부터 일의 속도는 쉬는 시간과 반비례했다. 커피 한잔 마시고 한번 쉬고, 음악한곡 듣고 한번 쉬고, 그렇게 농땡이가 늘어갔다.
농땡이에 길들여질 때쯤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미나리깡이 떠오르고 봄미나리에 생각이 미칠 때쯤 나는 전화기를 들고 청도에 와있던 동생에게 문자를 날리고 있었다.
"부모님 모시고 한재에 미나리 먹으러 가자."
잠시 후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고 농막으로 나를 태우러 왔다. 엄마는 끓이던 떡국도 중단하고 왔다며 동생이 투덜거렸다.
나는 못 들은 척 한재에 있는 미나리 맛집으로 출발했다.
오랜만의 외식이었다.
부모님과 우리 형제가 같이 외식에 나온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청도에서 한재 지역은 미나리로 특화된 농촌이다. 한재 미나리는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고 다른 미나리보다 가격도 잘 받는다.
한재마을 초입부터 미나리 비닐하우스가 온통 지천에 널려 있었다.
한재 미나리 전문 식당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계획했던 맛집은 대기시간만 한 시간 반이라는 얘기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다.
대신에 근처의 한산한 식당에서 한재 미나리와 문경 옥돌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돌아왔다.
점심 먹고 더 힘을 내서 남은 유실수에 거름 주기를 계속했다.
퇴비주기를 마무리하고 나니 오후 4시간 넘었다. 나는 마음이 바빠졌다.
전동 가위들 들고 가지치기에 나섰다. 짬짜미 유튜브로 익혔던 유실수 가치 치기 기술을 응용해 내 맘대로 자두나무, 사과나무, 매실나무 가지를 치고 마지막으로 대추나무 가지치기를 마쳤다.
감나무는 나무가 너무 커서 힘들고 올라가서 하다가는 떨어질 우려가 있어서 일단 다음으로 남겨두었다.
오후 6시쯤 일을 마무리하고 밭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작년 가을에 들인 금강송 두 그루가 잘 안착해서 자라는 것 같아서 너무 기뻤다.
한국인의 기개처럼 강인하고 꿋꿋한 금강송의 자태를 보며 나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