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 당하던 시절

by 석담

"야 인마, 디비 갖고 돈 나오면 십 원에 한대다. 알았나? 이 시베리안 허스키야!"

깡패라 하기엔 포스가 좀 약해 보이는 양아치라는 호칭이 딱 어울릴 것 같던 족제비 눈을 가진 그놈은 그의 교련복 상의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만 원권 지폐 두 장을 찾아 내고는 그에게 까불면 죽을 줄 알라며 엄포를 놓고는 골목길로 잽싸게 사라졌다.


그 무렵 그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교련 사열이 끝나 일찍 학교를 마치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집에서 30분 거리의 학교를 중학교, 고등학교 통틀어 5년째 걷고 있으니 눈을 감고도 찾아갈 정도의 눈에 익은 골목길이다.

교련복 상의 주머니에 든 만 원짜리 지폐를 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리며 그 돈으로 뭘 사 먹을까 행복한 상상을 하자 슬며시 미소가 그려졌다.


그 미소가 채 입가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골목 어귀에서 기다리기도 한 듯이 그 양아치가 앞을 가로막았다.

친한 척 어깨동무까지 하고는 골목 후미진 곳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태생이 겁자이고 범생이과인 그는 싸움이라고는 거의 해본 일도 없고, 항상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며, 어쩌다 싸울 일이 있으면 꼬리부터 내리는 비폭력주의자였다.


그 양아치가 저만치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심장이 두근 반 세근 반 뛰기 시작했다. 옆길로 새야 하는데 외길이다. 도리가 없다.

그는 오던 길을 되돌려 다시 학교 방향으로 진로를 잡았다.


"야이 새꺄, 거기 안서나?"


채 열 걸음도 가지 못해 뒤통수를 울리는 소리에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췄다.

그걸로 끝이었다.

울퉁불퉁한 시멘트가 발린 벽에 그를 밀어붙인 그 양아치는 소위 그에게 '깡'을 치기 시작했다.


80년대의 학교 주변에는 깡이 빈발했다.

오죽했으면 어떤 학생들은 일부러 몇 천 원씩 헌납하기 위해서 들고 다니기도 했다.

그는 없어 보였는지 지금까지 깡을 한 번도 당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오늘 처음 깡을 당하고 거금 이만 원을 털린 것이다.


양아치가 가고 난 후 허탈한 심정으로 이마에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는 집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세상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는 이참에 태권도라도 배워 볼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루에 아버지가 계셨다.

낮에 집에 계시는 게 이상해 왜 일찍 오셨는지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오늘 깡 당한 거 말씀드릴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아버지께 털어놓았다.


아버지는 급하게 대문 밖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그가 깡 당한 자리로 가 보았지만 아무 흔적이나 단서는 없었다.

아무 소득 없이 돌아오신 아버지는 그를 나무랐다.


"바보 같은기 일대일인데 한번 붙어보지? 그래 겁나더나?"


그의 눈에는 억울함으로 눈물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의 주먹에 힘이 가득 들어갔다.

다음번에 또 깡 당하면 한번 붙어 볼 기세다.


그리고 몇 개월이 흘렀다.

수업 시간에 교감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학교 주변에서 돈 뺏긴 사람 있으면 상담실 앞으로 와서 창문으로 자기 돈 뺏은 사람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도록"


그는 망설였다. 혹시 고자질한 거 알면 보복당하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그래도 양아치를 신고하고 싶었다.

상담실 창에는 동전 크기만큼 종이를 뜯어낸 곳이 있었다.

그곳으로 상담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다섯 명 정도의 사람이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그가 찾는 양아치는 보이지 않았다.

그 도둑놈이 보이지 않아서 억울했다. 왜 그 새끼는 잡지 못했는지 경찰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휴 하고는 숨을 크게 내 쉬었다.

어느새 그는 그 양아치가 잡히지 않아서, 그 상담실 안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원히 그 양아치가 잡히지 않으면 좋겠다고 바보 같은 상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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