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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Jan 10. 2022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는 딸에게

딸아,

새해 벽두에 전해진 너의 대학 합격 소식에 아빠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회사 사무실 직원들에게 음료수도 한잔씩 돌리며 생색까지 냈단다.

그동안 네가 쏟은 열정과 수고로움을 몇 마디 말로 위로한다는 발상이 가소롭더라도 아빠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구나.


이제 새 봄이 다가오면 가족을 떠나 객지인 서울에서 새롭게 생활할 널 생각하니 기대에 앞서 물가에 내놓은 어린애 마냥 너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떠나질 않는구나.

우리 딸이 씩씩하게 잘 해낼 거라고  믿으면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요즘의 세상살이를 생각하니 마음의 큰 짐을 이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나의 오래전 대학생활을 돌아보고 네가 동일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네게 몇  가지 조언을 하고자 한다.

물론, "꼰대"세대의 "라테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가볍게 들어주기 바란다.


아빠는 85학번이었다.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무수한 고민과 갈등을 거듭하던 386세대였다. 학기 내내 캠퍼스에는 최루탄과 독재타도 구호가 난무했었다.

6.29 민주화 선언의 시발점이 되었던 고 이한열 열사도 아빠와 동시대에 대학을 다닌  분이었다.

 그분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가 어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하며 민주화에 평생 헌신하셨던 대단한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빠는 네가 사회과학계열로 지원한 것을 알고 있다.

우선 아빠처럼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발을 걸치지 말고 네가 가야 할 노선을 분명히 하는 대학 생활을 했으면 한다.

요즘에야 예전처럼 이념 논쟁에 휩싸여 지낼 일이 별로 없겠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목표를 확고히 하고 대학생활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대학생활 내내 꼭 명심하고 지켜야 할 것으로 일상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아빠는 대학 입학과 더불어 찾아온 자유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방종에 가까운 생활과 잦은 음주로 건강까지 나빠져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하지 못했다.

항상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 그리고 운동으로 건전한 육체와 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건강한 캠퍼스 생활이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 생활 중 음주는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지만 항상 네 스스로를 소중히 다루어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동아리 활동에 대한 바운더리를 정해 두어라.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대학생활 내내 영어신문사에

몰두하는 바람에 학과 공부에는 등한시하게 되어

학점이 나빠져서 나중에 취업할 때 애를 먹었단다.

그러니 동아리 활동에는 적당한 거리를 두어서 너무 깊이 빠지지 않도록 조절하는 노하우가 필요할 듯하다.


아빠는 네가 공부만 열심히 하는 공붓벌레가 되는 걸 바라지는 않는다.

지금껏 그래 왔듯이 스스로 공부할 것을 찾아서 하고 준비해 가는 너라면 대학생활에서도 잘 적응하고 목표한 데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올해는 코로나가 좀 진정되어 대학생들이 신입생 환영회도 하고, 대성리나 청평으로 기차 타고 MT도 가고, 벚꽃 만발한 오월에는 캠퍼스에서 축제도 열렸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전공서적을 가슴에 앉고 캠퍼스를 걷는 네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우리 딸이 진정으로 대학생활을 즐기고 그 과정을 통해 더 큰 세계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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