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오드리 헵번이 아트를 하는 이유에 대해 인터뷰한 장면을 봤다. 그녀는 아트란 “내 영혼을 숨 쉬게 하는: letting your soul breathe” 무엇이란 표현을 썼다. ”Breathe:숨 쉰다”라는 단어. 나는 이 말이 아날로그 사진에도 해당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핸드폰과 셀카와 디지털카메라가 만든 사진의 홍수에서 왜 갑자기 아날로그 사진이 유행하는 걸까 질문한다. 나는 햅번의 인터뷰에서 그 대답을 찾았다. 필름 사진을 찍게 되면서 “내가 숨을 쉬게 되었다.”
디지털사진기로 사진을 찍게 되면 카메라와 렌즈만 사고 나면 가욋돈이 들지 않는다. 필름을 살 필요도, 현상, 스캐닝을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기어만 장만하고 나면 따로 돈 쓸 곳이 없으니 필름같이 내가 찍고 싶은 장면을 골라서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셔터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대상이 앞에 있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마구 누르고 나중에 정리하였다. 그 이유로 백장도 좋고 천장도 좋으니, 우선은 셔터를 누르고 본다는 게으른 심뽀가 내 머릿속에 박혀있었다. 그림이 좋다 아니다는 나중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프로듀서가 따라다니기 힘들 정도로 빨리 찍는다는 결코 좋지만은 않은 평판도 듣게 되었다. 좀 천천히 찍으면 어떻겠냐는 동료도 있었으나 새겨듣지 않았다. 갖은 핑계를 대어가며 내심 “정해진 시간 내에 찍고 싶은 걸 다 찍으려면 빨리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니야?” 하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슬로다운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가지 찍었던 사진들을 종합적으로 리뷰하기 시작하면서이다. 이상하게 내 눈에 들어오는 사진들은 내가 천천히, 정신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찍을 때 나온 것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그 순간에 내가 완전히 집중을 하고 거의 무아지경에서 셔터를 눌렀던 사진들이 훨씬 좋았다. “이건 뭐지?” 하고 생각했다.
왼쪽사진: 어느 날 아침에 세수하면서 보았던 내 그림자. 벽에 떨어진 그림자를 보자마자 이거 찍어야지 하는 생각에 카메라를 가져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필름셔터 누르듯 한 장 한 장 온전히 집중해서 찍었던 사진 중 하나이다. 오른쪽사진: 동경에서 비 오는 날 저녁 혼자서 우산을 쓰고 긴자의 에르메스사 앞에서 셔터를 눌렀던 필름사진. 어두워서 뭘 찍는지도 잘 몰랐지만 찍어야 한다는 일념하에 셔터를 눌렀다. 스캔닝 한 파일들을 보면서 반짝거리는 필름사진의 텍스처에 깜짝 놀라 입이 벌려진 사진 중 하나. 일포드 ISO3200 필름이어서 가능했던 사진.
필름은 한 롤이 $14-20 정도, 인화에 스캐닝까지 (그저 그런 퀄리티로) 하면 약 25불(한국은 엄청 저렴해서 만원이면 되더라.)에 미국에선 현상, 스캔에 1-2주 정도를 기다려야 한다. (한국은 아침에 건네주면 저녁에 찾을 수 있다.) 좋은 현상소를 찾아 엘에이까지 보내려면 보내는 우편료만 십 불이다. 계산하면 36장 한 롤을 찍고 현상 스캔을 하면 50불 정도 든다. 약 칠만 원을 넘으니 장당 1900원 정도이다. 나의 경험에 의하면 이 중에서 한두 장 내 맘에 드는 사진을 만나면 운이 좋다고 생각하니 그대로 한 장당 이십오 불이라 생각하면 삼만오천 원이다. 그렇다고 그 두장이 마스터샷이냐? 물론 아니다. 그냥 괜찮다는 정도의 샷이다. 친구말마따나 웬만큼 여유가 없으면 손 떨려서 필름 안 쓰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필름사진 찍겠다 안달들이다.
왜 그럴까?
1. “색” 때문이었다.
단순하게 말해서 보통의 경우 디지털의 색상이 너무나 맘에 안 들었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디지털은 그 빨간색이 어딘지 모르게 둥! 뜨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화학적 반응으로 현상한 이미지와 아무리 파일이 크다해도 0과 1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디지털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인간의 촉은 못 피해 간다.
왼쪽이 디지털사진, 오른쪽이 필름사진. 둘 다 채도가 높고 선명한 색상이지만 뭔가 다르지 않은가? 내 눈에만 그런가?
2. 원하는 텍스처와 색감에 따라 필름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요즘 나오는 필름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원하는 분위기와 장소에 따라 각양각색의 필름을 고를 수가 있다. 마치 화가가 아크릴 물감이나 오일물감이나 수채화 물감을 고르듯이 내 입맛에 맞는 필름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사진사, 특히 예술사진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겐 커다란 매력이 아닐 수 없다.
3. 필름의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좋다.
이 외에도 필름 사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디지털이미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필름 사진이 주는 바이브는 뭔가 깊은 사색이 가능하게 한다. 기계가 아닌 유기적인 방법으로 생겨난 이미지는 렌즈와 카메라라는 기계를 거쳐 태어났지만 필름이라는 유기적인 매체로 인하여 생명의 냄새가 난다.
이런 것들이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해서 지난 도쿄워크숍에서는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에 같은 렌즈를 끼우고 같은 세팅에서 같은 모델을 찍어본 적도 있었다. 왼쪽이 디지털, 오른쪽이 필름사진이다. 오른쪽 필름의 경우, 조도를 잘 못 맞춰 너무 어둡게 나오는 바람에 스캔한 이미지를 밝게 하면서 보니 너무 그레이니(grainy) 하게는 보였지만 나름의 자연스러운 맛이 살아 있었다. 그러나 왼쪽의 이미지는 뭔가 딱딱하다. 내가 가진 가장 부드럽게 나오는 렌즈인 녹틸러스를 썼는데도 그랬다. 이 딱딱함과 자연스러움이 디지털사진과 필름 사진의 근본적이 차이점이라 생각했다.
4. 진짜 이유는 디지털 사진을 찍으며 알게 된 “필름의 순간”에 있다.
필름으로 확장을 하기로 마음먹은 진짜 이유는 이 년 정도 찍은 사진들을 한 번에 모아두고 좌르르 리뷰를 했는데 눈에 들어온 사진들에 일관된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디팅에 귀재인 친구가 고른 사진들은 하나같이 내가 각각의 촬영 순간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언제 어떻게 찍었다 정도가 아니라 내 마음 상태까지 기억이 났다.
왜 그럴까 하고 누구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필름의 순간: the film moment” 이란다. 뭐가 필름의 순간인가? 하고 생각을 해보니 내가 나의 모든 정신을 그 상황에, 내 대상의 이미지에 온전히 집중한 순간이었다. 불교/한자 용어로 얘기한다면 나의 대상과 내가 합이 된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 순간에는 시간도, 대상도, 나도 없었고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것만 같았다. ”무“의 순간이었고 ”합“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시공이 사라진 무아의 경지? 좀 식상한 표현이지만 그리 얘기할 수도 있겠다.
사실, 그런 순간이 디지털 사진을 찍을 때도 가능했고, 그렇게 찍은, 내 마음에 든 디지털 사진도 몇 된다. 그러나 필름으로 찍기 시작하면서 그런 사진들이 훨씬 많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색채에 대한 걱정이 사라져 굳이 흑백으로 바꾸지 않아도 내 마음에 드는 칼러 사진들이 생겨났다.
필름 카메라는 디지털이 가진 자동화 장치, 예를 들면 내 사진기는 매뉴얼이라 오토포커스는 아니지만 카메라 뒤에 장착된 스크린에서 내가 찍는 이미지가 어떤 것인지 찍는 순간에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자신을 가지고 셔터를 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필름 카메라로는 초점을 수동으로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 것이라는 것은 상상으로만 가능하다. 반쯤 장님 같은 상황에서 경험과 상상에 의지해서 사진을 찍기에 억지로라도 나를 멈추게 하였고 생각하게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 사진들에는 내 혼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애쓴 흔적이 있다고나 할까?
예를 들어 얼마 전 사진을 찍는 아들과 지인의 결혼식 사진을 맡아서 찍어준 일이 있다. 여기에서 대부분은 디지털카메라로 찍었지만 각기 한 롤씩 필름으로 찍었다. 결과는? 아들의 필름 한 롤이 잘못 감겨 하나도 안 나왔다. 다행히 둘 다 디지털카메라로 충분한 양의 모든 장면을 찍어 놓아 별 문제가 없었다. 이유는 필름이 디지털보다 잘못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혹시라도 필름이 잘 못 감기거나, 노출이 잘못되었을 경우 생각해서 디지털을 메인으로 찍은 것이었다. 사진이 잘못되었다고 결혼식을 다시 하자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필름만을 고집했다면? 아찔하다.
이렇게 사진의 예술성보다 기록성이 중요한때는 주저 없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나간다. 아니면 둘 다 가지고 나간다.
사진에도 무조건 필름이냐 디지털이냐가 아니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시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