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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떠나기로 했어요

여행의 시작은 예약

by 지마음

벚꽃이 만개하고 날씨가 아주 좋은 봄날, 우리는 만났습니다. 떠나기로 한 약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요. 우선 비행기는 얼떨결에 예약을 마친 상태였고, 이제 남은 건 숙소와 렌트카였습니다. 아주 큰 테두리만 정한 채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우리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얼마나 묵을 건지, 어떻게 이동할지 등 결정해야만 예약가능한 이슈 앞에 놓인 것이죠.



벚꽃이 만개한 양재천은 걷기에 참 좋았어요. 사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커피나 낮 맥주를 마시며 이것저것 정하고, 예약도 하려고 했는데 벚꽃 때문인지 우리가 만난 것이 주말이기 때문인지 가는 곳 마다 카페엔 사람이 가득했고,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어딘가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해 버렸습니다. 결국 양재천 근처에 있는 지금사진 작가님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죠.



나이도 하는 일도 다 다르지만 저희는 모두 3명의 작가입니다. 저는 글쓰는 작가, 다른 한 분은 사진 작가님, 또 다른 한 분은 펜 드로잉을 하는 그림 작가님. 이렇게 3명이 작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어쩌다 보니 함께 만나고 친해져 여행까지 떠나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술을 마시다가 의외로 대화가 잘 통하고, 의외로 무탈하게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에 더 깊게 친해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희의 일정은 우선 6월 초에 떠납니다. 바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왕복 항공권을 예약했어요. 그리고 동유럽을 렌트카를 예약해 한 바퀴 동그랗게 돌기로 했습니다. 이제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몇 박을 묵을 건지 정해야 했는데요. 그래야 숙소 예약이 가능하니까요. 짐을 싸고 풀기가 어렵고, 한 도시를 조금 더 깊고 길게 보기 위해서 왠만하면 2박 이상하기로 하면서 꼭 가고 싶은 도시들을 서로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생각보다 빠르게 도시들을 추릴 수 있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유명한 도시도 가지만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작은 도시, 작은 마을도 가보자 라는 마음으로 정한 도시도 있었고요.


드디어 나라와 도시가 픽스 되었습니다. 저희는 도착한 날, 오스트리아 빈에서 슬로바키아에 있는 브라티슬라바로 이동해 그곳에서 하루를 자고, 헝가리 부다페스트 2박,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2박, 크로아티아 풀라 3박, 블레드 호수를 거쳐 오스트리아 루스바흐, 할슈타트 호수에서 2박,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 2박, 오스트리아 빈 2박까지. 이렇게 14박 15일을 함께 하는 일정으로 나라와 도시를 픽스했어요.


렌트카는 생각보다 쉽게 예약이 가능했는데, 숙소를 전부 예약하는 것이 정말 오래 걸리더라고요. 숙소 컨디션도 체크해야 하고, 위치도 체크해야 하고, 무엇보다 주차가 가능한지가 가장 중요했거든요. 그렇게 꼼꼼하게 하나씩 체크하면서 숙소 예약을 마치고 나니... 세상에 낮 3시에 만났는데 저녁 6시가 넘어간 것 아니겠어요? ㅎㅎㅎ 이제 저녁도 먹고 가볍게 술도 한 잔 할겸 근처에 있는 마오로 이동을 했습니다.



저희가 좋아하는 술, 공보가주 입니다. 조금 독하기는 하지만 깔끔해서 중국음식과도 잘 어울리고 뒤끝도 없어요. 저희는 술을 마시며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어느 도시에는 이게 좋다더라, 여기는 꼭 가고싶다, 여행하다가 서로 불편한 것이 있으면 참지 말고 꼭 서로에게 이야기 해주기로 하자 등등. 사실 저는 별 걱정이 없는데 지노그림 작가님은 우리와 함께 하는 여행이 혹여나 불편해질까 걱정과 고민이 아주 많더라고요. ㅎㅎㅎ



맛있는 안주와 함께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여행의 이야기로 인해 벌써 여행을 간 것 같은 설레임과 떨림이 함께 전해져 왔습니다. 사실... 여행은 가서도 좋은데 가기 전에 준비할 때가 가장 설레고 좋잖아요. 저만 그럴까요? 일단 항공도 예약을 했고, 숙소와 렌트카도 예약을 했으니 이제 정말 여행의 반 이상이 끝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이젠 저질렀으니 무조건 떠나는 것 밖에는 할 것이 없는거죠. 아주 조금은 너무 완벽하게 정해두고 떠나지 않아도 그 여백 안에서 채워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으니 그것도 감내해 보려고 해요. 너무 빡빡하게 정하고 떠나면 현지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못할 때도 많더라고요.



그렇게 저희는 밤이 깊어 가도록 술을 마시고, 여행에 취해 대화를 나눈 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모임에서는 어떤 대화를 해야 할까요? 이제 도시에서 어디를 들릴지 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여행에서의 규칙을 정해야 할까요. 아마 그런 것 보다는 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여행에서의 소중한 감정들을 어떻게 오롯이 남겨 돌아올 것인가에 집중하지 않을까 싶어요. 세 명 모두 작가이다 보니 여행 후에 남겨지는 것들에도 소홀하면 안되니까요. ㅎㅎㅎ 우당탕탕 여행이 되겠지만 작가 셋이 14박 15일을 함께 하면 뭐라도 남아 돌아오지 않을까요? 저는 낯선 곳에서 생길 우리들의 에피소드, 이 부분이 가장 기대가 되고 설레입니다.


작가 셋이 떠나는 동유럽 이야기는 앞으로도 쭈욱 계속 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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