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북클럽 입문기를 새 노트북에 비유하여 나타냄
조용한 새벽 2시,
읽다 만 책들을 뒤집어 놓고 잠을 청하러 간다.
뚜벅뚜벅 “탁” 쿠팡 새벽 배송으로 집 앞에 택배가 도착한다.
며칠 전 3년을 쓰던 노트북의 ㅁ(a) 부분 자판이 빠져 서비스를 받으러 갔더니 자판을 통째로 갈라고 한다.
25만 원이라는 소리에 도망치 듯 센터를 빠져나왔다.
몇 걸음 못 가 미안한 모습을 하며 주차 도장을 찍으러 간다.
이 순간 노트북보다 주차장 도장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주차장 요금 천 원. 천 원도 이리 아까운데 25만 원을 내느니 새 노트북을 사기로 한다.
내 커다란 눈에는 조막만 한 자판 하나가 빠졌을 뿐인데 왜 이렇게 불편 한 건지.
자판이 빠진 건 완벽한 정사각형의 모양의 한 부분이 찌그러진 모양처럼 불편하다.
불편만 하면 다행이다.
바닥이 다 드러나 보이는 자리를 누를 때마다 따끔거리는 고통이란 아프다고 하기도 좀 그런 모양새다.
새 노트북을 사자마자 느낀 건데 기억도 나지 않는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쳐야 했고, 한글도 다시 깔아야 했으며 유튜브 프리미엄을 보려면 로그인도 다시 해야 했다. 그저 나는 자판을 편하게 쓰기 위해 새 노트북을 샀을 뿐인데 내가 자판을 두드리기에 앞서 행해져야 할 거룩한 일들이 새 컴퓨터에는 너무나 많았다.
귀찮았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좋아한다.
자주 가는 짜장면 집, 자주 가는 편의점, 자주 가는 카페, 자주 가는 병원, 자주 만나는 사람들 하지만 이들과도 첫 만남이 있었다. 첫사랑, 첫 친구, 첫 시험 등 우리는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설레하며 배척한다. 단지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말이다.
내가 그랬다.
온라인 북클럽의 입문은 오래된 노트북을 바꾸는 것보다 더 불편했다.
새 노트북도 쓰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아 잠깐씩 전에 쓰던 노트북을 찾았다.
내 물건도 새것을 맞이하는 일은 이렇게 힘들다.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는 일은 내게 어려운 일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익숙하지도 않았다.
온라인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줌으로 만나고 시간을 같이 보내며 익숙해진다는 것은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편견은 오래가지 않았다.
온라인에서 책을 함께 읽고 인증하는 작업이 즐겁다.
익명으로 참가하며 시작했는데 지금은 줌토크도 하고 야간낭독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즐거움은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다.
익숙한 책을 완독 하는 경험을 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책을 만나러 가야 한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저 움직이는 일뿐이다.
먹어보지 않고 망고의 달콤함을 알 수 없듯이 고립된 삶 속에서 즐거움이라는 달콤함을 느끼고 싶다면 실패라도 찐하게 하러 나와야 한다.
코로나 19 이후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무기력, 사회적 고립 등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사회적 장치는 만들어져 있지만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좀처럼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쉽다. 마우스로 클릭 몇 번이면 된다.
사람들은 흔히 ‘회복 탄력성’이라는 말을 쓴다. 회복 탄력성이란? ‘실패나 부정적인 상황들을 극복하고 원래의 안정된 심리적 상태를 되찾는 성질이나 능력’을 말한다. 쉽게 말해 역경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데는 긍정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2년 가까이 정말 많은 사람들과 책을 읽었다.
내 안의 나를 꺼내고자 시작한 일이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나오는 일은 많은 용기와 시간이 필요하다.
북클럽은 그 시간과 용기를 전달해 주는 연결고리와 같은 역할을 해준다.
함께 읽고 나누는 일은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자존감이 높아지고, 회복탄력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힘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나의 삶을 투영해 보고 별거 아닌 내 삶이 별 것이 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면 어떤 날은 정말 그 별거 아닌 이야기가 새로운 길을 가게 해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 쯤되면 내가 어떤 노트북으로 글을 썼는지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노트북을 원하는가?
나는 새로운 노트북을 골랐다.
충전을 하고 새로운 마우스를 꽂으며 새로운 노트북을 부엌의 가장 명당자리에 놓았다.
새로운 시작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