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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란아이 Sep 14. 2023

노란 지붕에서 한 달 살기

오픈 카카오톡으로 즐기는 북클럽

새로운 달이 시작되기 2주 전 다음 달 읽을 책을 고른다.

이번 달은 어떤 책을 함께 읽어볼까? 새벽까지 검색창을 켜두고 책장을 뒤적거리며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손을 뻗어 본다. 손에 잡히는 파란색 원서를 들고 중간쯤을 펼쳐 본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읽기 쉬운 수준의 단어와 쉽게 읽히는 원서인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리고는 검색창을 통해 인지도는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지 확인한다.


서너 권을 고르고 한참을 고민해 본다.

이 책들로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야무지게 노란색 원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들고 집을 지으러 간다.      


집을 지으러 가는 길은 멀지 않다. 파란 바다와 무지개색 파라솔이 없어도 시원하고 콘크리트 벽과 철근들이 없어도 단단하게 지을 수 있다. 누구나 지을 수 있는 그곳은 우리들 손안에 있다.

      

휴대폰 바탕화면 가장 중간에는 노란색 카카오톡 앱이 있다.

앱을 터치해서 열고 말 풍선 두 개짜리 오픈 톡방을 누른다. 오른쪽 위에서 새로운 오픈채팅방을 누른다.

그런 후 그룹 채팅을 선택하고 오픈 채팅방 이름에 “로알드달클럽“이라는 이름을 새긴다.

프로필에서 너란 아이를 클릭한 후 커버 이미지에 미리 찍어둔 사진을 등록한다.

마지막으로 완료 버튼을 누르면 한 달 살 집이 만들어진다.      


너무 쉽게 만들었다고 가볍게 생각할 집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집 안을 꾸미기 전에 전투태세를 갖춘다.

양쪽으로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하나로 쫑긋 묶고 의자에 엉덩이를 깊숙이 넣어서 자세를 고쳐본다.

메타버스처럼 우주를 초월하는 세계는 아니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또 다른 공간이자 집이니 말이다. 메타버스는 그 안에서 아바타를 이용해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을 하지만 우리는 웹상에서 프로필 사진들로 나를 표현한다.


실제로 그렇게 불리던 아이디가 나의 세컨드 네임으로 쓰인다. 너란 아이처럼 말이다.         


집을 만들면 그 안에 함께 살아가기 위한 도구들이 필요한데 그걸 만들기 위해 오픈 채팅봇을 활성화시키고, 공지를 이용해 내 소개와 읽을 원서에 대한 소개를 한다.

인증 기간은 어떻게 되는지 참가비, 페이백 기준, 인증 방법과 제한 사항까지 깨알같이 적어둔다.      


노란 지붕에서 집을 짓고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장치들이 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하니 기본적인 룰이 있다. 집에서 한 달을 살기 위한 목적을 정해주고 울타리를 쳐준다.      


이건 또 하나의 장치인데 방장과 집을 운영해 갈 부방장 지원자들을 받는다.

물론 선착순이지만 쉽게 부방장 지원을 하지는 않는다. 부방장님들의 급여는 커피 한 잔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작은 일일 수 있다.

하지만 부방장이 되면 더 열심히 읽게 되고 더 많은 정보를 주기 위해 애쓴다.

왕관무게 이상의 관심과 애정을 쏟는다.      


이만하면 한 달 살 집으로 제법 멋지지 않을까?

스스로 만족하며 집 안을 쭉 둘러보고 함께 읽을 원서를 신청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리플로 초대를 한다.

다 들어오시면 아이디 확인과 비번을 걸어 문을 잠그는 일도 잊지 않는다.      


겨울이 누나님이 들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     


행복한 원서 읽기님이 들어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이번달도 잘 부탁드려요.     


별 하나 님이 들어왔습니다.

야간낭독 참여하려고 신청했습니다. 반갑습니다.     


Julie님이 들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역시나. 모르는 단어들이 참 많네요.

이번 달에는 한 권만 하니.. 조금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해야겠습니다.     


Hannah님이 들어왔습니다.     


마프 1호점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외국인쌤 Bless님이 들어왔습니다.

Hello everyone, I am Bless. It’s nice to meet you all.      


보이지 않지만 어색한 듯 긴장된 얼굴로 노란 지붕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한다.      

같은 책을 두고 둘러 싸여 무슨 강강술래라도 하듯 모여든다.

커버를 인증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읽어 나간다.


책의 내용을 그림을 그려 인증하는 헤이씨, 아기 아기한 목소리로 세상 사랑을 독차지하며 낭독하는 날아라 뿅뿅뿅, 포스트잇에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을 적고, 영국 황실에나 있을 것 같은 황동색 에스프레소잔을 문진삼아 고급진 인증을 하는 유리스, 초록초록한 마당이 보이는 화분 옆 유리창에서 늘 필사로 인증하는 마프 1호점. 책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인증에 진심이라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날은 인증을 보고 나누는 것만으로도 힐링이다.      


한 번은 어떤 분이 비가 온다며 막걸리를 먹어야 한다 했다.

오늘 하루 모두 쉴까요? 하는 순간 또 다른 인증이 올라온다.

어색함이 사라지고 아이디가 익숙해질 무렵 찾아오는 행복한 소란스러움 그리고 무료함.

성인들의 북클럽이지만 그 안에는 엄마가 있고, 딸이 있고, 나눔이 있고, 배움이 있기에 행복한 소란스러움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는다.  


그 소란스러움을 깨는 단 하나의 마법 같은 선착순 선물.  여기서 받는 바나나맛 우유는 그냥 우유가 아니다. 무료함의 마침표를 찍어주는 아주 귀한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저랑 노란 지붕 밑에서 바나나 맛 우유 한 잔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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