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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란아이 Oct 07. 2023

밤 10시 서재가 되는 부엌

원서를 읽는 시간

밤 10시,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동실을 연다. 며칠 전에 사둔 구룡포 반건조 오징어를 꺼내 해동을 시키기 위해서다. 선반 위에 올려 오징어를 해동시키며 늘 읽던 원서 책 두어 권에 시선을 돌린다. 1시간짜리 낡은 모래시계와 향초도 주방 한 편을 차지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자리였고 누구도 그들의 자리를 넘볼 수 없다. 앉을 시간도 없이 단 몇 초 만에 나의 두 번째 일이 시작된다. 배꼽시계가 울려대니 오징어를 굽긴 해야 하는데 손에 올려진 책 두어 권의 페이지를 찾느라 정신이 없다. 접어 둬야 하지만 접어두지 않아서 더 좋다.      

매일 나는 일이 끝나고 부엌으로 출근 한다.

다섯 식구인 우리는 늘 방이 부족하다. 당연히 내가 원하는 우아한 그림의 서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식사 후 남겨진 잔반들과 커피포트, 어지럽게 올려진 컵들이 나를 맞이할 때면 나를 기다리는 책들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낭독을 시작한 이후로는 저녁을 거의 먹지 않았다. 그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늦은 시간에 들어오면 밥을 퍼 담고 반찬을 꺼내고 다시 설거지를 하는 일이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오징어가 내 허기짐을 대신 채워줄 것이다. 오징어를 먹으면서는 원서 낭독이 가능하지만 구우면서는 힘들기 때문에 먼저 오징어를 굽기로 하고 선반에 있는 살짝 해동된 오징어를 떼어냈다. 굽는 동안 오징어 향이 주방을 한 가득 채운다. 누구라도 이 향을 맡으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하며 오징어를 굽는다.

      

우리 집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세라믹 비슷한 아일랜드 식탁한쪽에 접었다 폈다하는 보따리 장사 같은 서재가 존재한다. 내가 앉아야 서재가 되는 그런 곳이다. 나름 분위기를 내고 싶어 식탁 한 편에 책꽂이를 만들어놨지만 여러 사람이 이용하다보니 가끔은 책에 물을 줄 때도 있고, 김치 국물이 튀어서 책에 옷을 입혀줄 때도 있다. 너무 싫어서 책장을 옮기기도 해봤지만 신기하게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다.


여기 주방이 내 자리인 것이다. 모든 것들이 내 진두지휘아래에 돌아가는 그 곳.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메아리 한 번 치지 않는 비밀스럽고도 안전한 곳이다. 드디어 오징어가 다 구워졌다. 주방에서는 연기도 내가 하고 관객도 내가 한다.      


주방에서 낭독하며 연기한지 1년 하고도 6개월이 되었다.

20대 이후 영어를 다시 공부하는 게 처음이었던 나는 두려워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원서 낭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영어 원서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한 번 눌렸고, 영어 울렁증이 주는 압박감에 또 한 번 눌려 시작이 쉽지 않았다. 잘 읽어야만 했고 내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여러 번 녹음과 취소를 반복했다. 처음 10분 낭독이 너무 힘들었다. 음성 파일 올리는 게 창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낭독을 해야만 했을까?

한국어 책들도 많은데 왜 많은 것 중에서 원서를 읽어야만 했을까?

매일 매 순간 낭독을 시작하기 전에 이 생각을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영어를 언어로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가니 마땅히 다닐 학원도 찾기 힘들었고 왔다갔다 써야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이렇게 게을러서야 어떻게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겠니? 라며 나를 채찍질했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나까지 학원을 다닌 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처음 시작이 스스로의 의지로 된 것은 아니었다.

15년 경단녀였던 내가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오래 된 친구가 권유를 했다. 온라인으로 원서를 읽는 모임이 있는데 참여해 보면 어떻겠냐는 달콤한 제안이었다. 그런데 딱 달콤함은 거기까지였다. 원서의 장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고등학교때 배운 영어 실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낭독이었다.

처음 낭독은 그냥 읽기였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파닉스를 끝내고 읽기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며 읽어갔다. 챕터 하나를 한 10번쯤 읽으며 든 생각은 ‘이거 되는 거 맞나?’라는 의심이었다. 첫 달에 처음 선택한 책이 뉴 베리 소설 Number the stars (별을 헤아리며) 였는데 첫 책으로 너무 어려운 책을 골랐다 싶었다. 낭독을 많이 하는 게 목적이어서 자기계발서와 소설방도 껴서 무조건 읽었다. 그 때는 창피해서 그랬는지 큰 아이 방에 숨어서 읽고 작은 아이 방을 빌려서 읽고 했다. 그러다보니 낭독이 오래가지 못했다. 점점 힘들었고 매일 검증하는 시간들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나는 얼마나 더 읽어야 하는가? 이래서 다들 원서읽기를 포기하는구나 싶었다.      


징징거리며 한 달, 포기해! 말아! 그러면서 한 달, 하지만 함께 하다 보니 다음 달에도 그 다음 달에도 책을 선정하는 날이 기다려졌고 포기했던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다시 오픈 톡방의 참여 날을 기다렸다. 가끔은 무모함이 내 무기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함께 하며 힘을 얻었고 잘 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포기하고 싶은 마음보다 더 크게 내 가슴을 채워갔다. 50대 50이었던 마음이 60대 40이 되면서 주방은 낭독을 하는 공간이 되었다. 용기도 주방에 있을 때 더 힘껏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원서를 이해할 수 있는 양도 60프로나 되었다.


사실 원서를 읽고 번역서를 읽을 때면 내가 잘못 읽은 부분들이 눈에 확 뜨였다. 세상 처음 보는 내용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도 이해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작은 설렘과 믿음으로 무리하게 정복하겠다는 마음을 버렸다. 정복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아님을 광개토대왕이라도 되는 듯 전투적으로 시작한 낭독은 이제 나에게는 취미생활이자 루틴이 되었다.      


혼자 힘으로 힘들다면 권유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나도 누군가의 이끌림에 의해 여기까지 왔듯이 모르는 척 나에게 끌려와 함께 시작할 수 있다면 말이다. 일단 해봐야 실력이 얼마나 바닥인지 알 수 있고 그 깊이에 따라 끌어내어 주는 힘도 다르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질량을 가진 물체 사이의 중력의 끌림을 말하는 물리학법칙으로 함께하는 힘에도 이런 귀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퇴근 후 작은 주방 한 편으로 출근을 한다.

향초를 켜고 모래시계를 뒤집는다.

습관적으로 앉아 책을 만지작거리며 오늘 하루 잘 있었냐고 인사를 건네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페이지를 찾아 헤맨다. 작은 주방 한 편에서 들려오는 주방 후드 모터소리와 작은 향초가 내뿜는 공기의 따뜻함 조용히 흘러가는 낡은 모래시계의 움직임에 맞춰 경쾌하게 낭독을 한다.

원래 이 소리들이 하나였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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