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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당이 Nov 30. 2022

애답지 않던 애

어릴 때부터 또라이

정말 오랜만에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일기장을 들춰봤다. 세상 진상 또라이 어린이가 거기 있었다.


근데 난 아직도 또라이라 그런지 그랬던 내가 사실 좀 기특한 부분도 있다. 좀 되바라졌지만 사리분별은 할 줄 알았던 것 같아서.


애답지 않은 아이가 꼭 나쁜가?

애다운 것이 풍부한 상상력과 동심이라면 인정.

사리분별 못하는 것이라면 안 인정이다.

걔도 꼭 그러고 싶어 그렇게 된 건 아닐거다.


넌 무슨 애가 그런 말을 하니?

너는 무슨.. 네 속에 영감이라도 들었니?

어른한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이런 말들. 어릴 때 참 많이 들었다.




초등학교에서는 키 순서대로 번호가 주어졌다.

나는 키가 작아서 늘 앞번호였다.

4번 혹은 5번. 번호가 8번이었을 때는 얼마나 기뻤는지 키 큰 사람들은 모를 거다.

아무튼 이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이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왜 꼭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야 하냐고. 담임선생님은 늘 하던 거라 그냥 이렇게 하는 거다 정도의 대답을 하셨지만 나는

 '그러니까 왜 늘 그랬냐는 거죠.'라고 되묻고는 키가 작은 당돌한 초딩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학급에서 도난 사건이 있었다.

선생님께서 이쑤시개 하나씩을 나눠주시면서 모두 눈을 감고 양 검지 손가락으로 그 이쑤시개를 잡으라고 하셨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들고 있는 건 요술 이쑤시개야. 그건 나쁜 짓하는 사람이 들고 있으면 길어지거든. 진짜로 길어지기 전에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사람은 손을 조용히 들면 선생님이 용서해줄게.'


그리고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는지 선생님이 격양된 목소리로 모두 이쑤시개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손톱으로 이쑤시개 양 끝을 갉아낸 것은 딱 2명.

진짜 학급에서 다른 친구의 지갑에 손을 댄 녀석, 그리고 나.


선생님은 둘 중 어느 녀석인지, 혹은 공범인지 혼란스러워하시는 것 같았다. 결국 그 친구의 가방에서 훔친 물건이 발견됐고 나는 교무실로 불려 갔다.

'대체 왜 그런 건데?'선생님이 물어보셨다.

'그냥요. 진짜 마술인가 보려고요. 진짜 범인이 저처럼 할 거라고 생각하셔서 그렇게 말씀하셨던 거죠? 요술 이쑤시개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천하의 버르장머리 없는 초딩. 그게 나였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어느 날의 일기는 한 사서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좋아하지만 어릴 땐 더 좋아했다. 공부엔 관심도 없는데 매일 같이 구립도서관에 갔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어른들이 읽는 책도 자주 읽었다. 하루는 한명회와 데미안을 빌려가려고 대출대 앞에 섰다. 그랬더니 사서분이 물었다.


'너는 엄마 아빠 대신 이 책을 빌려 가는 거야?'

'아닌데요.'

'왜 이해도 하지 못할 책을 빌려가니?'

'왜 제가 이해 못 할 것 같은데요?'

'넌 어리니까...?'

'나이가 아니라 수준의 문제라고는 생각 안 해보셨어요?.'

'어른한테 그렇게 말하면 버릇없는 거야.'

'아이한테도 예의를 지켜주셔야죠.'


본인이 무슨 예의를 안 지켰냐 어쨌냐 몇 번의 핑퐁이 오간 후 그녀는 내게 무척 무례해졌다. 책 뒤의 도서카드를 빼고 무언가를 도서대출서류에 적고는(그 당시 그곳엔 도서 바코드 따윈 없었다.) 책 두 권을 내 앞으로 던지듯 팍 내려놨다. 그래서 내가 물어봤다.


'근데요. 이렇게 불친절해도 월급 받아요?'


그녀의 대답을 듣기 전에 돌아서서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일단 나도 좀 애가 이상하긴 했는데, 그 사람도 확실히 이상했다.  넌 또라이지만 잘했다!



중학교 때는 일명 '왕따'가 유행하며 나도 피해자가 된 적이 있다. 갑자기 궁지에 몰려 누명을 쓰고 억울한 상황에 놓였었다. 대부분은 울고 시무룩해있는데

나는 역시나 미친놈이니까 기를 쓰고 싸웠다.

소풍이고 수련회고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왕따를 즐겼다. (근데 생각해보면 어린애가 즐기는 척 한거 같다. 사실은 억울함에 이를 악물고 버틴거였을거다. 내가 버티던 그 시간들은 선생님도, 가족들도 모두 몰랐다. 아니, 몰랐어야 했다.) 근데 꼭 착한 애들이 있다. 왕따를 당하는 내가 안쓰러워서 밥을 같이 먹자 하고, 끝나고 떡볶이를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는 다정한 아이들. 그럼 솔직히 마지못해 같이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네 나 도와주려고 하지마. 그러다 이제 너네 차례가 올 거야. 그냥 모른척해. ' 그 친구들은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사실이긴 한데 어린애가 저런 말을 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참... 미친놈이다.


그 당시 학교 건물 지하에 학생 식당이 있었다. 라면이나 만두 등 간단한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는데 왕따 당하던 시절, 라면을 먹어볼까 하고 식당으로 내려왔는데 소위 말하는 각반의 왕따들이 모여서 밥을 먹고 있었다. 그중 한 친구가 내게 손을 흔든다. '우리랑 밥 먹으러 온 거야?' 나는 그 제안이 기가 차서 더 기가 차는 말을 하고 돌아 선다. '왕따들끼리 모여서 밥 먹으면 좀 위안이 되니? 난 혼자 먹으련다.'

이렇게 왕따들 사이에서도  왕따가 되었다.




학원에서 원장직책을 맡고 있을 때 나는 그 당시 수업, 상담, 선생님들 트레이닝, 커리큘럼 개발, 그리고 면접 및 채용 업무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날 면접대상자들 이력서들을 쭉 훑어보는데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특이했으니까.

바로 나에게 누명 아닌 누명을 씌워 억지로 왕따의 세계로 밀어 넣었던 그 친구. 약속 시간에 맞춰 그녀가 도착했고, 다행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본인의 경력에 대한 이야기를 쭉 하며 본인이 아이들을 참 좋아하고 아이들도 자신을 잘 따른다고 했다. 나는 그냥 웃으면서 모든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난 후에 나를 알아보겠냐고 물었고 그녀는 여전히 물음표 뜬 얼굴로 날 바라보다가 이내 깨닫고는 얼굴이 빨개졌다.


'다 지난 일인데 뭐. 너도 어렸고 나도 어렸고. 철없을 때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뭐. 그런데 나는 네가 우리 아이들 안 가르쳤으면 좋겠다.  아직도 없는 말 지어내고 그러는 건 아니지? 같이 일 못하게 되어서 유감이다. 세상이 참 좁지?'  하며 그녀를 배웅했다. 그녀는 내게 미안하다는 한 마디 하지 못하고 학원을 나섰으나 미안했겠지? 화가 났으려나? 세상 창피했으려나? 내가 알바 아니다.  


내 뒤끝 장난 아니라고? 진짜 뒤끝 장난 아닌 것은 그 친구를 채용해서 엄청나게 괴롭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 살 두 살 먹으면서 미친놈이 된 줄 알았는데

일기장을 보니 새삼 선천성 미친놈 었구나 싶어서 재미있다.


나이가 들면서 남에게 기분 나쁠 말은 돌려서 이야기하는 스킬이 조금은 생긴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2023년 나의 목표는

'Being Myself'다.

그냥 나 자신이 되겠다는 건데

좀 슬슬 겁나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적당히 해야겠지.


결론은

애 같지 않은 아이가

꼭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거다.

돌아보면 천진난만한 아이였을 수 없던 과거의

내가 좀 짠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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