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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한다는 것

by 구름마중

볕 좋은 주말아침이다. 나는 볕 좋은 아침을 사랑한다. 특히 겨울에는 햇빛이 잘 드는 아무 곳에 앉아 '볕멍'을 즐긴다. 차도 있으면 좋지만 그냥도 좋다. 몸도 마음도 한가로운 게 마냥 좋다. 창문 아래 초등학교 태극기가 펄럭거리지 않는 것을 보니 바람이 없다. 그렇다면 날씨가 꽤 좋다는 것이다. 볕멍도 즐겼으니 외출기회를 만들어야겠다.

'잘됐다 작은 아들 방학 동안 밖에 나가지도 않고 휴대폰만 하니 건강을 위해서라도 나가자'라고 결심했다.


이미 침대와 휴대폰이 한 몸인 신랑과 그리고 작은 아이다.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둘은 등을 반대편으로 돌린다. 이런,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할 건지 짐작하는 자세다.


"아들 지난번 스케이트 한번 더 타보고 싶다고 했지! 가까운곳에 있는데 오후에 한번 가볼래?" 제안했다. 약간에 귀찮음과 망설임이 보였지만 작은 아이는 '오후에?'라고 대답하는 걸 보니 갈 마음이 있었다. 싫다고 하기 전에 더 이상의 대화는 금물이다. 신랑에게도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하지 않고 기회를 기다렸다.


작은 아이가 살짝 지루할 틈에 재빠르게 "가자"하고 "오빠 작은 아이가 간다네 데려다줄 수 있지?" 그리고는 나는 나갈 준비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신랑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작은 아이도 나갈 준비를 마쳤다. 휴대폰을 갖게 되면서 먼저 어디 가자고 안 하는데 이렇게라고 나서니 모두에게 좋은 일 아닌가!


겨울철에만 운영하는 스케이트장에 주말 손님들이 꽤 많다.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준 신랑은 차에서 쉬겠다고 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서둘러 3시 1회권을 끊었다. 시간은 벌써 3시 20분이다. 3시에 시작해서 한 시간 뒤 30분은 점검시간이다. 얼마 타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급히 스케이트 대여소를 찾아 뛰었고 뒤 따라 작은 아이가 걸었다. 스케이트를 빌려 많은 사람들속 스케이트를 신을 장소를 찾아 신을 찰나 "엄마 나 화장실에 가야겠어" 작은 아이는 화장실 반대편으로 간다. 서둘러 전화를 해서 반대편이라고 알려주려는데 평소 무음으로 해 놓는 작은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조금 뒤 이쪽으로 다시 걸어오는 아이에게 "반대편이야"하고 화장실을 빨리 갈 수 있도록 안내했다. 급하지만 급한 티를 내지 않고 아주 친절하게 말이다.


화장실에 다녀온 작은 아이는 스케이트화를 신는다. 그런데 한쪽발만 두 개다. 이런! 다시 대여소로 뛰어가 바른 두 짝을 가지고 와서 신었다. 헬멧까지 착용한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빙판장까지 '옆으로 옆으로' 아장아장 걸어 들어갔다. 입구가 가장 미끄러워서 난간을 꼭 끌어안고 들어갔다. 입장하는 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리고 우리가 탈 수 있는 시간은 또 얼마인지 알 수는 없었다. 이미 들어왔고 열심히 타보자라는 각오로 출발이다.


나는 20대 때 회사 다니면서 퇴근 후 직장언니들과 넓은 공터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본 기억이 있다. 쌩쌩 달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쭉쭉 달리는 정도였다. 그런 감각이 있어서 그런지 날카로운 날이 얼음에 닿으며 쌩쌩 나가는 속도가 조금은 무서웠지만 중심을 잡고 한 발은 지탱하고 한 발로 빙판을 치고 나가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앞으로 나간다. 앞으로만.


작은 아이는 작년에 한번 타보고 약간에 두려움을 극복한 정도였는데 일 년 만에 타 보니 감을 잡지 못하고 난간을 잡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간다. 작은 아이는 운동신경이 좋은 편은 아니다. 그래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런 성향을 알기 때문에 다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작은 아이가 의지하는 난간이 있으니 나는 뒤에서 더 해줄 격려의 말이 없었다. 그 보다 엄마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엄마도 잘 못 타는데 용기 내서 먼저 간다" 하고 앞질러 나갔다.

작은 아이가 천천히 난간과 함께 걸어 한 바퀴 돌 때 나는 이미 한 바퀴를 더 돌아 아들 곁에 왔다. 그렇게 몇 바퀴를 돌지 않았는데 시간은 벌써 4시다. 한쪽발이 아팠고 작은 아이도 이미 쉬고 싶은 얼굴 표정이었다. 잠시뒤 정비시간을 알리고 우리는 스케이트장 밖으로 나왔다. 의자에 앉아 스케이트화를 벗는 아이는 더 탈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또한 먼저 더 타자고 하지 않을 아이이기에 "아들! 정비시간 30분 동안 쉬고 간식 사 먹고 한번 더 탈래?" 물으니 "간식! 그래"


아이는 간식이란 단어에 힘이 솟는지 흔쾌히 승낙했고 마침 우리를 보러 온 신랑과 간식을 고르는 동안 나는 다음 회 입장권을 구매하고 스케이트장에서 사용하는 보조장비까지 대여를 마쳤다. 만만에 준비를 하고 남은 시간 동안 여유 있게 떡볶이와 꼬치, 풍선 터트리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두 번째 스케이트를 타는 시간 "아들 보조장비가 있어서 이거 끌고 다니면 편할 거야"하며 우리는 다시 스케이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한결 표정이 편안해 보이는 아들은 보조장비를 이용해서 천천히 걷듯 한 바퀴를 돌며 나는 그런 아이 곁에서 조심조심 이동한다. 그때 동화에서 나오는 작은 파란 물고기가 무지개 물고기 뒤에서 접근했을 때처럼 6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내 뒤에서 옆으로 와서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그래! 그럼 네가 아줌마 알려줄래"

"네! 발을 가운데로 모았다가 가고 모았다가 가야 해요" 하고 몇 번 보여주고는 사라졌다.


나는 남자아이 말을 중얼거리며 "모았다 가고 모았다 가고"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가기를 반복했다. 아주 간단한 행동이었지만 훨씬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스케이트를 타는 나를 발견했다. 놀라운 발견에 잠시 상상했다. 쌩쌩 달리는 생각을, 반짝이는 빙판을 따라 내 자신감도 반질거렸다. 꼬마를 찾아가 인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잘 타는 남자아이는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작은 아이는 보조 장비가 있다는 마음에 한결 가벼운 채 나는 스케이트 타는 것에 집중을 했다. 팔을 움직이고 다리를 모으고 떼고를 반복하며 직선과 곡선을 쉬지 않고 한 바퀴를 돌았다. 난간을 잡고 주춤주춤 가던 나는 빙판을 보고 생각을 멈추고 작은 아이에 대한 걱정도 버린 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스케이트화와 내가 한 몸이 되어 모든 힘을 쏟아붓는 온전히 집중하는 내가 되었다. 그 순간이 좋았다. 집중한다는 것이 이렇게 매력적이고 나를 힘차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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