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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목장날 꿀맛 같은 배경음악

by 구름마중 Jan 27. 2025

긴 설 연휴로 몸도 마음도 한가롭다. 시가가 멀지 않아서 화요일쯤 식구들이 모여 어머님이 준비해 주신 재료들로 몇 가지 전을 부치는 정도의 음식준비를 한다. 그러니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는 특별한 일정 없이 여유 있다. 그날은 토요일 대목장이다. 신랑(오빠)과 나는 각자의 오전일과를 보내고 시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거의 다 왔어! 시장 어디에서 볼까?"

"나도 이제 끝났어! 바로 갈게."


사방이 시장 입구고 시장 어디쯤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와 오늘을 허락해 주겠노라고 다짐한 듯 눈부신 햇살에 찬바람은 대수롭지 않았다. 양손 가득 검은 비닐봉지나 시장바구니를 든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차는 '바쁘다 바쁘다'하지만 느릿하다. 요리조리 사람과 차를 피해 걷는 동안 시장 어디쯤에서 나를 찾아오는 오빠를 만나야 하는 목적과 어릴 적 구정이 되면 엄마손에 이끌려 목욕탕에서 묶은 때를 아프도록 밀고 살짝 덜 마른 머리카락과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목욕탕 문밖을 나서자마자 개운함과 시원함이 동시에 팍! 밀려오듯 그날은 상쾌한 기분으로 괜스레 설레었다.  


"어디야?"

"볼링장 근처에 주차했어! 오빠는 어디야?"

"내가 거기로 갈게"


저 멀리 검은 옷은 다 똑같지만 희고 둥글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일상에서 신랑의 얼굴과 모습은 세밀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듯 보물을 발견한 어른아이처럼 호들갑스럽지 않게 신랑을 반겨주었고 반가웠다.


사방이 입구니 어디로든 들어가면 시장 중앙 통로에 닿는다. 중앙 통로로 양쪽으로 500m 터쯤 더 되는 거리로 수십 가지 먹을거리, 볼거리가 다양하다. 비릿하고 구수한 냄새가 있고 물건을 고르고 파는 사람들의 표정이 있고 사람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간접적으로 끼기고 하고 대목인 만큼 넉넉하게 사고파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 친정엄마도, 시가어머님도 그리했을 거라는 생각에 모든 사람들이 친근한 이웃집 사람 같았다.

 

대목장인만큼 사람이 많다. 정말 많다. 중앙 통로에 진입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한 줄 기차를 양쪽으로 사람들이 교차한다. 우리가 잡은 손은 사치 었다. 이산가족이 되지 않으려면 신랑의 옷자락이라도 잡고 어림잡아 보폭을 맞추거나 잘도 피해서 걸어야 한다. 중앙 통로에 합류해서 걷는 조건은 앞사람 간 부딪혀도 이해해 주는 것이다.


여름에 작은아이와 탔던 파도풀이 생각났다. 튜브와 튜브가 서로 끼여서 물살에 저절로 한 바퀴 돌았던 기억!

앞에서 멈추면 우리도 멈추고 앞에서 출발하면 우리도 출발한다. 빈틈이 보이면 그 틈으로 빠져나와 여유 있게 걷다가도 다시 밀리고 밀리는 대목장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런 상태로 끝까지 가고 싶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고 우리는 사람 파도풀에서 내리기로 했다.


"다 봤지? 우리 이제 살 껀만 사고 가자"

사방이 출구여서 빠져나올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중앙 통로를 벗어났다. 골목은 한가로웠고 우리의 걸음걸이도 제야 자유로웠다. 우리의 목적은 평소 시장에서 잘 사다 먹는 김구이집을 찾아야 한다. 골목을 몇 개를 지나 최대한 김구이집과 가까운 곳으로 가서 중앙 통로로 다시 진입을 해야 했다. 나따라오라는 당당한 발걸음의 신랑을 따라 중앙 통로로 다시 들어갔다. 역시나 나와 비슷한 몸짓, 아니면 더 왜소하면서 구부정한 몸짓의 사람들, 검은색 아니면 회색의 옷차림을 한 얼굴 없는 등짝을 보며 걷는다. 흰머리, 검은 머리, 들쑥날쑥 다양한 뒷모습을 보며 걷다 보니 어디쯤인지 가늠이 안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나에게 구원자처럼 신랑이 "저기네, 연기 나는데"

 

김구이집은 다른 연기와는 다르게 더 짙고 순간적으로 연기가 피식피식 피어오르기를 반복한다. 연기 나는 곳을 따라 걷던 중 예고 없이 내 콧속에 어떠한 맛있는 냄새가 훅 파고든다. 그 옆을 내려다보니 파전이며 국수를 파는 곳이다. 커다란 솥 안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직원은 장갑을 낀 한 손에 그릇을 잡고 다른 한 손엔 국자로 지금 막 건져 올린 야채 같은 것이 그릇에 달라붙어 있는 것을 정성스럽게 담는다.    


"오빠, 이게 무슨 냄새지?"

"해장국 같은데"

"그래! 냄새 너무 좋은데 우리 먹고 가자!"


신랑은 조금은 못미더워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 식사를 끝낸 한 팀이 일어나고 우리가 들어가자마자 직원은 자리를 정리해 주었다. 포장마차에서 봤던 파란 테이블과 파란 의자 세트가 괜스레 마음에 들었고 천막바로 옆과 주문하는 곳과 멀지 않아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에서는 음식을 주문하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신랑이 못 미더워했던 것도 지난번 지인과 함께 왔을 때 저 안쪽에서 주문해서 먹기까지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니 주문할 때는 목청이 크거나 직원과 사인이 잘 맞거나 직접 발품을 팔아 주문을 해야 한다. 신랑은 우리 자리가 가까움에도 직접 가서 주문을 하고 앉는다.


직원이 여러 명이다. 학생처럼 보이는 사람, 나와 비슷한 나이에 여자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인다. 계산을 하는 사람, 주문을 받아 한번 더 체크하고 음식을 테이블마다 나르고 정리하는 사람, 국수를 삶는 사람, 전을 부쳐 그릇에 담는 사람, 모두들 역할이 있고 일사불란하게 손발이 척척 맞는 듯 주문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음식이 나왔다.

 

뜨근한 어묵 국물과 초록색 막걸리 한 병, 그리고 내 콧속을 파고들었던 해장국이 나왔다. 평소 어머니가 해주시던 붉은 선짓국과는 다르게 맑은 된장 선지해장국이다. 국물 한 수저 입에 넣으니 냄새 못지않게 구수하고 깔끔한 맛에 감탄을 했다. 그제야 신랑도 우윳빛깔 막걸리를 잔에 가득 채운다.


해장국에 국물과 건더기를 건져 먹을 때마다 감탄을 했다. '이렇게 내가 미식가였나! 음식을 좋아했나!'싶을 정도로 맛을 즐기고 있었다. 그럴 때쯤 모둠전이 나왔다. 명절에 먹던 시가 버섯 전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나는 앞에 놓은 모둠 전을 한입게 크게 넣고 야무지게 먹는다. 맛있다. 잘 먹는 나를 보며 신랑은 남은 전 한 조각을 양보한다. 내 입과 몸이 즐거우니 시장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북적거림은 자연스럽게 배경음악이 되었고 그 속에 우리는 최고의 대목상차림을 먹었다.


다음 장날이 또 주말이라면 우리는 국수를 먹어보기로 했다. 후루룩후루룩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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