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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타래를 타고 동백이가 왔다

by 구름마중 Feb 02. 2025

1997년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선배 언니는 일 년 먼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사회생활을 격려해 주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레몬주 맛을 처음 알게 해 주었고 언니의 결혼식에 축가를 불러주며 어쩜 자매보다 더 가까운 사이었는지도 모른다.  


털실 같은 우리의 인연은 연결되고 또 연결이 되어 부부 동반으로도 이어졌고 같은 해 태어난 아이들은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의 뜻을 갖고 대학에 진학했다. 그렇게 함께한 28년이라는 시간 동안 털실에서 명주실타래처럼 보기만 해도 편안하다. 


이사를 나오기 전, 주말이면 저녁식사를 자주 했고 가족여행도 다녔다. 그러나 아이들이 성장하고 거리가 두배로 멀어진 만큼 만남의 횟수도 자연스럽게 줄어 들었고 아이들 각자 사정에 의해 하나둘 빠지는 날이 많아지면서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했다. 처음엔 아이들 없이 맛있는 것을 먹으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또한 익숙함으로 이제는 일부러 맛집을 찾아다닌다.


명절을 보내고 또다시 돌아온 주말, 금요일부터 뭘 먹을지 메시지로 대화가 오고 간다. 토요일 오전까지 이어지는 '깨톡'소리에 나는 신랑에게 패스했다. 결국 신랑이 나섰지만 네 사람 입에 맞는 음식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익숙한 듯 편안한 우리지만 먹는 것에서는 맞아도 장소 선정에 있어서는 늘 배려와 타협 방식이어서 결정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결단력이 좋은 언니는 우리가 가보지 않았고 언니부부가 가 보았던 지인 추천 맛집 "들깨 칼국수"에 가기로 정했다. 


차로 30분 거리다. 목적지에 대한 기대감은 없었지만 도착한 들판 한가운데 그리고 가끔 다니는 지방 도로옆에 옛스러운 작은 집.

집 옆으로 보이는 나무와 나무옆에 작은 손수레가 내 마음을 톡톡 두드린다. 칼국수 맛을 상상하기도 전 풍경에 빠져 카메라 버튼을 연신 누르고 있는 나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발걸음 또한 가볍다.  


허름해 보이지만 허름하지 않은 단단함과 하얗게 칠한 단정한 천장과 천장기둥 사이사이에 연결된 검은 전선과 전선사이에 무심한 듯 자리 잡은 애자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이미 칼국수의 맛보다 분위기에 반했다.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보이는 커다란 창가에 먼저온 두팀이 앉아있어고 커다란 창문에 휴식기를 보내는 논풍경이 가득하다. 


곧 언니부부도 도착했고 칼국수를 주문했다. 들깨칼국수.

사장님의 투박한 몸짓과는 다르게 칼국수맛과 국물이 일품이다. 신랑은 면을 먹기도 전에 국물을 두 사발이나 마셨다. 넷이서 함께 후루룩 거리는 소리와 리듬 있게 "맛있다"소리 내며 우리는 남김없이 맛있게 감탄하며 들깨칼국수를 먹었다. 음식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다음에 만날 장소를 함께 공유한다. 다음엔 순대국밥으로 정했다. 


다른 때 같으면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지만 오늘은 인근에 있는 식물원 나들이를 가자고 제안했다. 모두들 오케이 했다. 식물원 입구가 조금 달라졌다. 입장료도 그 당시와는 다르게 많이 올랐다. 어떻게 변했을지 아이들이 없이 가는 식물원이라 꽤 흥미로웠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받고 식물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인도보리수나무가 성처럼 거대하다. 고개를 들어 올려 한참을 봐야 보일만큼 커다란 나무에 감탄했다. 

우리들의 아이들이 어릴 적 앞서거니 뛰며 재잘거리는 소리와 땀 벅범인 채 음료수를 사달라고 했던 그 시절의 꼬마들을 마음 한 컨에 넣어두고 어른들만의 느긋함으로 걷는다. 


여유 있고 천천히 급하지 않고 우아하게.

나무 하나하나 생김새와 줄기사이에 삐져나온 뿌리를 신기하듯 바라보고 꽃마다 생김새를 느끼고 다르다는 것을 예뻐하고 소장한 사진을 찍고 전보다 이름하나하나를 더 알고 말하는 나를 대견해하며 어른들만의 시점으로 걷는다. 식물이 위대하다는 것과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컸다는 생각으로 식물원을 나올 때쯤 매표소에서 받은 입장권으로 식물 하나를 바꿔준다고 한다. 


언니는 작고 노란 화분을 선택하고 나는 평소 키우고 싶었던 언제나 잎이 푸르고 꽃을 피우는 동백꽃을 선택했다. 신랑은 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멀리 달아난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아이로 할 거야"

다시 돌아온 신랑은 마지못해 화분을 들어 올려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내가 계산을 하는 동안 동백꽃은 우리 집으로 가기 위해 분갈이대로 이동한다. 분갈이해주는 사장님에게 신랑은 내 헌담을 한다. 아니 걱정을 한다. 

"이분이 산세베리아만 빼고 다 실패했어요"

"그럼 물을 잘 안 준다는 건데 그럼 잘 살아"라고 사장님이 웃는다.


그렇다. 나는 전적이 많다. 선인장도 허브도 율마도 내손에 닿으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산세베리아는 하나로 시작해서 지금은 다섯 개의 화분이 될 만큼 잘 자란다. 


커피값보다 값지다는 언니 부부와 다음을 약속하며 동백꽃을 차에 조심스럽게 싣는다. 그리고 신랑이 이름을 지어줬다. 이동백이라고.

이제 동백꽃은 이동백이 될 것이다. 실패하더라도 우리 집에서 함께하는 동안 무심하듯 물을 주고 산세베리아처럼 잘(?) 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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