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는 고등학교, 작은 아이는 초등학교 졸업을 했고 긴긴 방학을 보내고 있다. 출근하는 나는 아이들이 먹을 아침 겸 점심을 해놓는다. 이것저것 해놔 봐야 먹는 것만 먹으니 쉽게 꺼내 먹고 설거지하기 편한 볶음밥이 딱이다. 퇴근하고 돌아와 밥 한 톨 없는 프라이팬을 보면 괜스레 뿌듯함에 볶음밥 체인점을 차려야 하나 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하곤 한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는 6살 터울이다. 둘은 같은 집에 살지만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다. 고학년이 되면서 더욱 그렇다. 자고 일어나는 시간도 서로 다르고 평일이든 주말이든 큰아이는 얼굴 보기가 어렵다. 무슨 업무가 그리도 많은지 늦게까지 자다 언제 나갔는지 모르게 외출했다가 늦은 시간 귀가를 한다. 작은 아이는 오전에는 자기 방에서 게임을 하고 오후부터는 몇 개의 학원을 다녀오면 저녁 7시가 넘는다.
큰 아이와 작은 아이, 큰아이와 가족 모두 하루종일 얼굴 맞대는 시간이 30초나 될까 모르겠다. 그런 큰 아이의 바쁜 업무로 저녁은 큰아이를 제외한 세 식구뿐일 때가 많다.
평소라면 아무도 없을 집에 제일 먼저 들어와 불을 켜는 나다. 오늘도 현관문을 열고 중문으로 들어와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거실로 걸어 들어가는 소파에 형채를 알 수 없는 뭔가가 기다랗게 누워있다. 컴컴하지만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뭐야'하고 불을 켜보니 큰 아이가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무슨 일인가! 어디 아픈가? 하는 마음에 자세히 보니 큰 아이가 맞고 멀쩡하다. 그리고 깊이 잠이 들었다. 그런 큰 아이가 반가워 볼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는 작은 아이가 오기 전 집안일을 대충 하고는 회식을 간다는 밝은 목소리의 신랑의 밥을 제외하고 저녁을 준비한다. 곧 작은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 돌아와 씻고 나왔다.
큰 아이에게 저녁을 먹자고 깨워보았지만 내가 아는 그 느낌 '더 자고 싶다'라는 생각에 우리는 먼저 밥을 먹는다. 작은 아이와 오늘 일상을 이야기하며 낮에 형아가 집에만 있었고 형이 맛있는 것을 사줬다며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형이 뭐 사줬는데?"
"치킨"
"오~ 형이 치킨 사줘서 좋았겠다"
"응 맛있었지"
학교 다니는 평소라면 평행선 같은 둘의 관계가 방학기간 동안 조금은 기울어져서 서로를 챙겨주고 따르는 모습에 괜스레 흡족하면서 고마웠다. 그런 형에 대한 작은 아이의 마음을 꺼내보고자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 작은 아이가 "엄마 형한테는 비밀인데"하며 내 귀에 속삭인다. 아직도 비밀을 지켜야 하고 비밀을 절대 꺼내져서는 안 되는 굳건한 작은 아이에게 "응 알았어 비밀로 할게"하며 귀를 가까이 댄다.
"형이랑 나이차이가 많이 나잖아 나는 3살 정도만 차이나도 좋았겠어!"
"왜?"
작은 아이는 소파에 누워있는 형을 응시하며 조심스럽게 그리고 은밀하게 이야기한다.
"형은 우리 집에 사는 삼촌 같아"
"푸하하 하하하"
삼촌의 이미지가 이렇게 웃겼던가! 나는 한참을 웃었다.
'우리 집에 사는 삼촌' 큰 아이의 모습이 너무도 잘 어울리게 표현한 작은 아이의 한 문장이 오늘 나를 웃게 했다.
어느새 깼는지 소파에서 낄낄낄낄 소리가 새어난다. 큰아이는 어느 시점에서부터 우리 대화를 듣고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참지 못하고 일어난다. 그리고 저녁을 다 먹은 작은 아이와 몸장난을 친다.
우리 집에 사는 삼촌 같은 큰 아이는 9시가 훨씬 넘는 시간 갑자기 가방을 메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어디가? 아들!"
"스터디카페"
오늘도 업무가 바쁜 큰 아이, 그리고 순수한 작은 아이야~ 방학은 길지만 반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