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꽃밭에서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봄꽃, 여름꽃, 가을꽃.
자주는 아니어도 생각날 때마다 갑작스레 연락을 해서 시간이 되면 경치 좋은 카페에 들러 차도 마시고 겸사겸사 사진도 찍어주면 엄마는 마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유일하게 내가 엄마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복잡하지 않는 효다. 수국이 활짝 핀 그날도 엄마와 H카페에 갔다.
"엄마 시킬 줄 몰라! 네가 알아서 시켜"
카페인을 뺀 달달한 커피를 두 잔 시켜 엄마와 경치 좋은 창가에 앉는다. 주말이니 사람들이 참 많기도 많다. 그 속에서 한 외국인 여자가 혼자서 차를 마시며 책을 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엄마와 나는 언제라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양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 아빠와의 결혼생활, 다섯 형제들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끝도 없는 듣는다. "아~ 그랬어!" 하며 박자를 맞춰야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엄마이야기에 집중하며 내 눈길은 낯선 외국인 여자에게 눈길이 간다. 가을볕에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찻잔과 가끔씩 넘겨지는 책장.
"엄마 우리 오늘은 카페 옆에서 막국수도 먹고 갈까!" 하며 때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주말이어서 홀은 가득 차있었지만 대기 번호 "1번". 엄마와 나는 빈 테이블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대기석에 앉았다. 잠시 뒤 식당 안으로 카페에서 보았던 낯선 외국인 여자도 들어선다. 여자는 대기표를 받고 우리가 앉은 대기석 앞에 앉는다. 엄마 가까이에 앉은 외국인 여자를 향해 엄마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반갑게 말을 건다. "러시아사람?" 엄마시선에서는 머리가 금발인 여자가 러시아에 왔다고 생각했는지 무례한 질문에도 외국여자는 당황하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는 밝은 표정으로 "아닙니다. 미쿡사람입니다"했다.
괜한 소리를 하는 것 같은 엄마에게 눈치를 주는 나에게 외국인 여자는 대화를 건다. 한국말을 잘하는 미국인 여자. 선글라스를 벗은 눈빛과 인상은 무척 선했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에 나도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혼자 식사할 그녀에게 두 번째 무례함으로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그래도 됩니까?" 하며 오히려 고맙다며 자연스럽게 한상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낯선 것도 없이 우리 셋은 자연스럽게 이야기 꽃을 피우며 언제 외국인과 대화를 해볼까 하는 마음에 쉬지 않고 함께 대화는 나누는 시간이었다. 알고 보니 인근 초등학교 원어민 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주말에는 가까운 곳을 돌아다니며 여행을 하는 것을 즐기는 YM 씨였다.
식사를 마치고 한 테이블에서 먹은 음식을 계산할 차례다. 외국사람들은 더치문화라고 해서 각자 계산해야 하나 하고 생각을 했지만 YM 씨의 밥값은 내가 계산을 했다. '그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이 사람에 대한 선물이다'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 무례함이었고 YM씨도 무척 미안해했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이 되었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근황을 묻던 YM 씨 그동안 감기와 폐렴에 몸이 아팠던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 만날 수 있어요?"
그리고 오늘 YM 씨를 만났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던 YM 씨. 두 번째 만남이었고 서먹하지 않으며 부담되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우리는 서로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00 씨", "YM 씨" 환호를 했다.
그동안 못 본 YM 씨의 한국말은 더 유창해졌고 대화는 더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미국에서 한국 그리고 이곳까지 온 배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처음엔 이곳이 너무 시골이어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외로울 때마다 수시로 서울을 오가거나 학교 방학기간 동안에는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고 했다. 인상 깊은 곳은 베트남이라고 했다. 미국과 베트남에 대한 역사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미국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베트남 박물관에서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며 미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는 눈빛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1월 말 다시 일본, 대만, 홍콩 여행을 계획했다고 했다. 일본도 미국과의 역사에 관련된 이야기와 대만, 홍콩의 다양한 음식을 경험볼 예정이라고 하며 무척 설레고 기대찬 표정이었다. 그런 YM 씨를 보며 나의 20대 두려움이 없이 도전했고 즐겼던 나의 시간들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그리고 24살인 YM 씨.
인생을 즐기며 경험하는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박수를 보내며 그녀의 여행을 응원한다.
어쩜 우리는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확률로 지구촌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우연히 만나 또 다른 인연이 되어가는 지금 삶이 주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어쩜 꼭 만나야 했던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대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