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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머리 손에 들린 딸기

상추가 딸기로

by 구름마중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시작되는 글과 엄마와 상추를 소분하는 두 아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평소 우리 동 주민들은 채팅방에 일기예보, 그날의 뉴스를 올리거나 주민들의 불편한 이야기,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바쁜 출근길이지만 상추 담는 아이들의 모습과 아직 댓글 단 사람이 없어 혹 아이들이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염려로 하트나 엄지 척을 달아줄까 생각하다 최근 상추가 금상추라는 신랑의 말이 스치듯 생각이 났다.

"저 상추 받을게요" 제일 먼저 손을 들었다.


댓글을 달고 나니 이내 답글이 왔고 최근 비싼 상추값에 귀한 상추를 살림에 보탬이 되듯 신랑에게 자랑도 할 수 있어서 부푼 기대감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사실 자가로 조금만 가면 시가이고 시가는 하우스에 다양한 농작물을 재배한다. 파, 양파, 무, 배추등은 사지 않고 가져다 먹었고 상추 또한 그랬다. 하지만 내가 먹고 싶은 건 상추가 아니라 상추를 소분하는 아이들의 정성이 먹고 싶었다. 내 뒤로 일곱 집이 손을 들어 소분한 상추는 이내 매진되었다.


"상추는 8 가정으로 마감할게요~" 봉지 앞에 호수를 적어놓고 20층 엘베 앞에 두겠다는 메시지.

퇴근 후 모임에 다녀왔다. 상추를 잊은 채.

모임이 끝나고 스치듯 상추가 생각났지만 늦은 밤이기도 해서 한없는 여유와 게으름을 피우며 내일 아침 가져오기로 하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아침, 서둘러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카트에 상추는 없었다. 20층이 맞나 확인을 하고 또 카트를 다시 들여다 보아도 호수가 적힌 상추봉지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 늦게 와서 없는 걸까? 다른 사람이 잘못 가져갔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집으로 내려와 단체톡에 "제 상추는 어디로"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내 답장이 왔고

"아 제가 이따 가져다 드릴게요ㅋ 아침에 냉장고에 넣었어요"


안도했고 감사했고 미안했다. 내 해석은 상추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냉장고에 넣었다는 말에 감사했다. 진작 가져왔으면 서로 이런 번거로움은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번거롭게 하는 건 아닌지 싶어 "제가 올라가겠습니다"하고 집에 있는 몇 가지 간식을 봉지에 담아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너무 빨리 올라갔을까? 문 앞에 상추는 없었다. 상추의 보담으로 들고 간 아이들 간식을 문 앞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서른 개쯤의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그래 상추가 먹고 싶었던 게 아니잖아. 아이들의 예쁜 마음을 받았으니깐' 뭔가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며칠뒤 엘리베이터에서 20층을 만났다.

"문 앞에 간식을 왜 놓고 가셨더라고요! 감사해요. 애 아빠가 상추를 드린다는 게 깜빡한 것 같아요"

"아닙니다. 아이들 마음이 이뻐서 저도 간단한 간식 챙겨드린 거라 너무 신경 쓰지 마셔요"


결국 11월의 나의 상추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 머릿속에 완전히 잊혔다. 언제나처럼 20층을 만나면 늘 한결같이 웃어주며 안부를 물었다.


그러던 12월의 어느 날, 퇴근 후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로 말린다.

"띠리리링리"

"엄마, 누가 왔나 봐?" 일찍 하교한 큰 아이가 소리쳤다.

"누구지? 올사람이 없는데, 한번 나가 볼래" 아직 귀가하지 않은 아빠나 작은 아이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을 테고 생각하며 급히 머리를 말린다.

"20층이시라는데"

'20층!' 빗질을 하지도 못한 채 부스스 사자갈기를 하고 현관으로 뛰어갔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상추 못 드려서 이거 드리시라고 가져왔어요"

"아고고 뭘 이런 걸. 괜찮습니다" 어색한 나의 손은 사자갈기머리를 한쪽 쓸어 누른다.

"상추 드린다고 하다 시간이 계속 안 맞아서 늦게나마..."

"아닙니다. 상추는 다 잊었는데 아가들 마음이 예뻐서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이렇게 챙겨주셔서 감사하네요. " 머릿속에서는 뭘 보담으로 드려야 할지 집에 있는 음식 찾기 레이더가 가동 중이다.


나의 사자 같은 갈기 머리에 민망함과 내 손에 들린 빨간 딸기, 한 달이 지나도록 그 마음을 잊지 않은 20층의 따뜻한 마음에 고마움이 밀려왔다.


사자머리를 정돈하고 다시 계단으로 오른다. 봉투에 어제산 못난이 귤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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