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내린 눈으로
서해안은 밤새 눈이 내린다고 했다. 토요일 밤 11시, 늦도록 컴퓨터에 앉아서 미루던 일들을 하는 동안 거실에 TV를 보던 작은아이가 소리쳤다.
"엄마, 눈 왔어! 온 세상이 하얗네"
"그래" 나는 벌떡 일어나 "아들 나가자" 하며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겨울외투와 장갑, 목도리, 털부츠까지 챙겨 신는데 단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저 지금 나갑니다. 눈 놀이 10분만 합시다"하며 평소 동화모임하는 애기엄마들에게 메시지를 날렸다.
작은 아이와 나는 완전무장을 했고 출입문을 나서는 순간 찬바람이 불며 하늘에서 소리 없이 눈이 내린다. 얼마나 내렸는지 나뭇가지마다 흰 눈이 쌓어 우리를 반겨주었다. 2초의 설렘으로 우리는 뽀드득 밟히는 눈을 느끼며 아파트옆 초등학교까지 걸었다.
늦은 밤이었지만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아이와 노는 부부도 있었고 몇 소녀들의 깔깔거리는 소리에 나의 마음은 더 흥분이 되었다. 이 순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짜릿함과 2024년의 첫눈놀이여서 걸어가는 내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생각에 작은 아이보다 더 설레였다. 내 발걸음은 학교운동장이다. 하지만 작은아이는 걸어가는 내내 눈을 모아 굴리고 굴려 성인 머리만큼 큰 눈 덩어리를 만들었다.
작은 아들의 눈덩어리를 낑낑거리며 학교운동장에 도착했다. 운동장에 쌓인 눈을 밟으니 눈과 함께 모래가 밟혀 올라온다. 여기서 눈을 굴리다가는 작은아이의 눈덩어리가 엉망이 될 것이다. "아들 여기는 굴릴 수가 없을 것 같아", "알아 엄마"
눈덩어리를 잠시 내려놓고 조용하며 은밀한 학교운동장에서 둘만의 달리기가 시작되었고 쉼을 하고 있는 그네에 올라 눈발을 맞으니 기분이 묘하며 내일이 일요일이여서 부담이 없는 편안함이다. 우박처럼 내리는 눈 때문에 작은아이가 "엄마 얼굴이 따갑다"하며 그네에서 내려와 우리는 다시 아파트단지로 올라갔다.
작은 아이의 눈덩어리는 어느새 아빠배처럼 볼록하게 커졌다. 나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들과 함께 눈사람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눈을 굴렸다. 수분이 많은 눈은 쉽게 커지고 동그랗게 만들기 위해 조각가처럼 눈을 덮붙히기를 하고 잘라내기를 반복하여 눈은 커졌다.
"지금 나가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잠시뒤 내 등에 눈 덩어리가 떨어졌다. "으악" 하는 소리와 함께 아파트 지인들이 하나둘 나왔다. 그 시각 11시 30분.
우리는 만들던 눈덩어리를 잠시 안전하게 주차해 놓듯 눈을 뭉쳐 서로에게 공격을 한다. 절대 소리는 지르지 않고(아파트 주민들은 자는 시간) 작은아이와 나는 작전을 세워 뒤를 공략하고 조용히 사뿐히 날아올라 머리에 '탁', 등짝에 '탁'.
방심한 사이에 얼굴에 눈폭탄을 맞은 나는 "복수다"하며 얼굴에 묻은 차가운 눈을 "퉤퉤" 털어내며 어릴 적 뛰어놀던 어른아이가 되어 뒤를 쫓고 달리고 숨을 헐떡이고 결국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토할듯한 숨을 고른다. 내 나이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 눈은 하염없이 내린다.
성인의 몸짓처럼 커진 눈덩어리 두 개를 낑낑거리며 길 한복판에 세워두었다. 눈사람을 조각하는 사람, 눈사람 눈코입의 재료를 찾는 사람, 모두들 눈사람을 기똥차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에 분주하다. 작은아이는 나뭇가지가 길어 잘라야 된다는 둥, 지인 꼬마는 '이모이모"하며 눈사람 단추를 찾아야 한다는 둥, 코를 멋스럽게 만드는 지인은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둥 모두들 지시하지 않아도 '척척척' 협조하는 사이 눈사람이 완성이 되어갔고 머리가 무척 큰 눈사람이었지만 한밤중 호들갑스럽지만 소소한 행복이 눈사람이 완성이 되었다.
곁에서 놀던 사람도 기념촬영을 할 만큼 흥미로운 포토죤이 되었고 우리도 추억을 남긴다.
한밤중 눈이 내렸다. 한밤중 고요했던 아파트단지에서는 몇몇의 소소한 사람들이 소소한 행복을 굴리며 행복한 추억을 만들었다. 그것은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에게 작은아이에게 그리고 지인들에게도 오래도록 기억될 추억이 완성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