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는 언니뒤를 따르렵니다'
로 시작하는 졸업식 노래가 울려 퍼지던 1993년 '리'단위 국민학교강당, 졸업생 44명과 재학생들이 함께 졸업가와 답가를 부르고 풍금소리로 가득 매워진 강당에서 6년 개근상을 받았다. 지금은 개근상에 대한 의미가 변질되었지만 그 당시 6년 개근상은 우등상 다음으로 귀한 상이었다. 부상으로 상장과 함께 백과사전.
표준백과사전이나 사전이 집에 있다는 것은 꽤 잘살거나 부모가 아이들의 학습에 관심을 가졌던 때여서 사전이 귀한 나로서는 백과사전의 의미는 큰 기쁨이자 최고의 선물이었다. 개근상으로 받은 백과사전 때문일까 지금에 나는 결근 한번 없이 꽤 착실히 맡으나 책임을 다한다. 한편으로는 꽤도 내서 연차도 쓰고 아프면 아프다고 조퇴도 쓰면 좋으련 만 직업의 특성상 자리를 비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어서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아껴두었던 연차를 사용해서 6살 터울인 큰아이와 작은아이의 졸업식을 일주일 간격으로 다녀왔다. 지난주 월요일 작은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그리고 오늘 큰 아이의 고등학교 졸업식.
시기적으로 졸업일자가 빨라졌고 졸업을 하고 나면 3월 입학하는 동안 방학이다. 졸업식의 분위기도 시대만큼 변했다. 졸업하는 아이들마다 졸업장 수여식이 대형스크린에 비치고 선생님들이 만든 아이들 영상과 교육감선생님의 인사말씀까지 화면 속에서 전달된다. 형형색의 꽃들은 커다란 흰 종이 가방에 담긴 채 여기저기 찰칵거린다. 졸업가노래는 '이젠 안녕' 어른들도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화면에 가사를 따라 함께 부를 수 도 있다.
작은아이의 졸업은 순수함이다. 반별로 입장하는 아이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고 애써 등을 펴고 수줍은 듯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작은 아이 미소에서 마음한컷에 뭉클함과 애잔함이 묻어난다. 분위기는 엄숙하고 간혹 기침소리만 들린다. 연습한 대로 졸업장을 받는 아이들은 교장선생님께 90도로 숙여 인사를 한다. 졸업식이 끝나고 아이들을 부르는 부모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 섞여 작은 아이를 찾고자 나는 작은아이의 옷차림을 생각하여 고개를 쭉 내밀고 미어캣모드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자고 하면 빨리 찍고 가자고 귀찮아하는 작은 아이. 하지만 어찌 한 장만 찍겠는가 학교에서 마련해 준 포토존은 포기해도 할머니, 할아버지와도 찍고 외할머니와도 찍고 엄마, 아빠와도 찍고! 찍고 찍고 간신히 열 장 정도 찍은 것 같다. 사진 찍기 부끄럽고 귀찮아해도 이날만큼은 옅은 미소를 보여준 작은 아이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졸업식이 끝나고 어른들을 모시고 미리 예약해 둔 짜장면집으로 갔다. 시대가 바꿔도 역시 졸업식은 짜장면이다!
큰아이의 졸업은 즐김과 축제다. 1부는 연주회로 학생들이 즐기는 시간을 갖고 2부는 학부모들과 함께하는 졸업식이다. 반별로 한 명씩 호명을 하면 졸업가운을 입은 성인 같은 큰 아이들이 한 명씩 걸어 들어간다. 큰아이 모습이 화면에 비치고 졸업 가운 끝자락이 한들거리며 걸음은 무게감이 있고 포즈는 여유가 있다. 살짝 새어 나오는 큰 아이의 미소에서 마음 한컷에 듬직함이 묻어난다.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는 큰 아이지만 이날만큼은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친구들과 우르르 사진도 찍고 주먹다짐을 하듯 포즈도 취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선생님들과는 모두들 잘 지냈는지 먼저 셀카를 들이밀며 찍고 또 찍고 사진 찍기 본식인 것처럼 즐기는 큰아이와 친구들. 아쉬워하는 모습보다 이날만큼은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당참과 또 다른 힘참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런 큰 아이에게 나는 초등 6년, 중 3년, 고 3년의 애씀을 벗어던져버리고 또 다른 책임과 자유를 향해 힘찬 박수로 응원하고 환호한다.
사전적 의미에서 졸업은 '학생이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과 과정을 마침'이라고 한다.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착용했었고 zoom교육으로 친구들을 일 년 남짓 보지 못한 아이들이 코로나시기도 이겨내고 소정의 교과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음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
추신 : 내일부터 나는 일상으로 복귀다. 방학 동안 집에 있을 두 아이를 위한 끼니는 뭘 해야 할꼬!!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