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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비밀

관장님을 알아본 나의 눈썰미에 놀래고

by 구름마중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의 힐링장소가 있다. 폐교.

폐교라고 하면 괜히 으스스한 기분이 들지만 최근 폐교를 활용한 문화공간이 많이 생겨나기도 한다. 더욱이 한적한 시골마을에 폐교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여 활용한 미술관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생태작품으로 눈길과 발길을 멈추게 하고 분기별로 바뀌는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일 년 동안 몇 번을 찾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그런 공간과 사계절의 만남은 더 아름답다. 벚꽃이 휘날리는 봄, 초록이 싱그러운 여름, 분위기 최고의 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미술관 안과 밖으로 들이우는 볕과 바람과 함께 작품도 보고 풍경을 보자면 나를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로 데려다주는 기분마저 든다. 사랑스럽게 편안한 곳이다.


때 이른 휴가기간이어서 가족들과 일정이 맞지 않았다. 신랑은 연차를 다 사용해서 쉬는 날이 없고 초등 6학년인 둘째 아이는 의무적으로 학교 가는 것을 무척이나 강직하게 지켜야 하는 성향이다. 고 3학년인 큰아이는 남은 기간 동안 친구들과의 도원결의를 다짐하듯 집보다 학교를 더 좋아한다. 그러니 무리수를 두어 같이 휴가를 계획하는 것도 나를 제외한 가족일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에게 시간낭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오롯이 나의 휴가를 만들고 쉬기로 결심했다.


휴가 첫날은 역시나 전업주부로 돌아와 그동안 밀린 집안일과 묵혀두었던 먼지를 제거하고 개운한 정신으로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 평일에 하지 못한 커피 마시기와 수다를 떨기로 여유를 부렸다. 둘째 날은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 크리스마스카드를 쓰고 버스를 타고 나가 우체국에 들려 카드 보내는 특별한 일과를 보냈다. 그리고 나흘.


쉬는 동안 얼마나 먹었을까! 수직 하는 내 몸무게에 대한 대책으로 산책이나 자전거 타기를 결심했다. 이야기동무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평일 오전에 연락 못했던 지인들 중 반가워할 연락처를 검색했다. 번개로 연락해서 자전거를 타는 지인이 있어서 나는 당연히 '오케이'라고 생각했고 당당히 첫 전화를 걸었다.


반가움과 동시 지인은 감기에 걸려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다. 지인의 건강을 염려하며 아쉽게 휴대폰 종료버튼을 누르며 다음에 전화할 다음 지인을 검색했다. 첫 전화가 성사되지 않은 머리에 스치는 불안감.


그럼에도 손가락은 벌써 두 번째 지인에게 통화버튼을 누른다.

역시나 두 번째, 세 번째 지인에게 연락을 했지만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거절 아닌 거절을 받았고 나는 운동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집 청소도 다 해 놓았고 집안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었다. 여기서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그리고 전화를 더 했다가는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칠 것이다.

'이제 그만.'


'되었다! 모처럼 혼자 걸어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급히 초록색 산책가방을 챙겨 들었다. 옷을 입는 동시에 물을 끓여 텀블러에 따끈한 커피를 담고 지칠 때 먹을 만한 복숭아맛 사탕 두 개와 미니 약과를 챙겼다. 겨울인 만큼 옷은 얇게 여러 겹으로 입고 털모자와 장갑, 목도리까지 단단히 두르고 산책의 필수아이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아파트 정문을 나서는 첫걸음에 설레고 찌링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발에 부스터가 작동한다.

평소 걷는 것도 좋아하고 걷다가 생각하는 것도 좋아한다. 음악을 들으며 나무와 춤을 추고 새와 인사하는 나의 간혹 4차원 같기도 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은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빨간 머리 앤 같은 감성을 지향한다. 살짝 주의할 점은 보는 사람이 있으면 멈춤이다. 혹여 그런 내게 다가와 귀에 꽃이라도 꽂아줄까 염려스럽다.


30분쯤 걷다 적당한 정자 볕 좋은 곳에 앉았다. 초록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뚜껑을 연다. 찬바람에 커피김이 휘리릭 피어오른다. 코끝으로 스며드는 동시 찬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걷는 동안 손과 머리에서 전도된 열기를 식히려고 장갑과 털모자를 벗는다. 혼자만의 낭만을 즐기는 시간 저 멀리 남자 같은 형체 셋이 점점 가까워진다. 혹여 두려운 마음을 예의주시하며 점점 가까워오는 모습에서 깔깔깔 웃음소리가 들린다. 남자는 아니었다. 안심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그들은 나보다 열 살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언니들!


그 사람들도 나처럼 적당한 정자 볕 좋은 내 쪽으로 앉으며 돗자리를 편다. 나는 눈이 마주친 한 사람과 눈웃음으로 인사했고 그 사람도 나에게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음식을 꺼낸다. 김밥, 반찬통 여러 개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민망했지만 궁금했다. 곁눈질을 하며 "소풍 나오셨나 봐요" 먼저 말을 걸었다.

"네. 그러네요. 같이 드실래요"하며 김밥을 권했다.

"아닙니다. 저 커피 마시고 있어요. 커피 좀 드릴까요?" 괜한 인사 치래를 하고 나서 밀려오는 어색함에 좋은 시간 보내라고 먼저 자리를 비켜주었다.


뭔지 모를 쓸쓸함이 3초 정도 밀려왔다. 하지만 뒷모습이 그러지 않은 척 털털하게 걸었다. 그 쓸쓸함을 극복하는데 또한 3초가 걸렸다. 분위기를 바꿔줄 만한 노래를 들으니 말이다.

결국 30분을 더 걸어 아미미술관이 목적지가 되었다. 한 시간을 족히 걸었다. 모처럼 걸어서 그런지 힘들었다. 돌아올 때는 버스로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버스시간을 체크하고 미술관매표소로 향했다.


자갈을 밟는 소리에 매표소 작은 창문이 열리고 밝게 웃으며 "어세오세요. 한분이신가요!" 하며 간단한 설명과 티켓을 건내 받았다. 표를 받자마자 "우와!"나는 감탄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미술관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의 휴대폰 사진촬영버튼은 쉬지 않았다.


가을에 볼 수 없었던 겨울의 분위기와 밤새 얼었던 나무와 넝쿨들이 한낮에 볕에 녹아 포근함이 느껴졌다. 나는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걷고 다른 각도에서 사진도 찍었다. 평일이어서 사람도 많지 않았고 한가로웠다. 나의 여유로운 시간처럼. 이 분위기를 나 혼자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설렘에 미술관 문을 열고 첫 작품실에 발길을 넣는 순간이다.


"마루공사를 해서 작품가까이 걸어요"하며 마루를 뜯어내고 잠시 쉬는 듯한 어르신 직원 모습에서 무려 12년 전 미술관 오픈식에서 벽에 붙일 타일에 그림 그리기 체험이 있었다. 그 당시 큰아이와 사촌아이를 데리고 와서 장수풍뎅이를 그리는 큰 아이에게 '솜씨 좋은데'라고 칭찬을 해주었던 관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 관장님 아니신가요?"

"하하 맞아요"


대박! 내가 수년 전 관장님의 모습을 알아본 눈썰미에 놀랬고 올 때마다 멋진 미술관을 만날 수 있도록 이곳을 만든 관장님을 눈앞에서 만났다는 것에 신기했다. 더 즐거운 것은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 기름칠을 해가며 마루를 쓸고 닦았던 어린 날의 기억과 그 맨질거렸던 마룻바닥 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비밀스러운 일에 무척 흥미로웠다.


목소리 톤이 한층 업된 나는 관장님과 미술관 오픈당시 큰아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관장님에게는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내가 기특해서였을까! 갑자기 선물을 주듯 "이리 와보세요. 내가 사진 한 장 찍어줄게요"하며 목장갑을 벗어 내 손에 들린 휴대폰을 뺏듯이 가져갔다.

"자 거기 서봐요. 여기 서서 찍으면 사진이 기가 막혀. 아무도 몰라"

"저는 사진 찍는 거 안 좋아해요. 찍는 거 좋아해요"하며 몸은 이미 관장님이 원하는 방향과 장소에 서있었다. 그런 나는 관장님의 지시에 순순히 따랐다. 손가락은 허공을 가리키며.


그런 나의 모습에 아님 관장님의 모습에 곁에서 지켜보던 여직원 분이 미소 짓는다.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었지만 즐기고 있는 나였다. 이런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관장님과의 만남 또한 생각할수록 신기했다. 또한 관장님이 찍어준 사진은 정말 잘 찍혔다.


관장님은 여직원을 시켜 전시된 작품 리플릿을 가져오라며 나에게 선물로 줬다. 그리고는 아주 재미난 것을 보여주겠다며 반대편 전시실로 가보자며 당차게 걸어갔다. 그런 관장님 뒤를 따라 호기심 가득 걸어갔다. 비걱거리는 마루소리와 걸어가는 열 걸음 정도의 시간 동안 '어떤 것을 보여주실까?', '사진을 또 찍어준다고 하면 적당히 거절해야지' 생각했다.


대각선 끝 창가 쪽에 관장님의 걸음이 멈췄다. 마룻바닥에 작은 구멍을 가리키며,

"여기에 아주 신기한 게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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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무릎을 꿇고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잡아당기니 B4용지만 한 크기의 나무조각이 따라 들어 올린다.

"자! 봐바. 여기가 예전에 교장실이었거든. 뭐가 있나 봐"

흥미로워하는 관장님 말투에 나는 몸이 들어갈 듯 고개를 숙여 마룻바닥을 들여다봤다. 컴컴한 공간에 빛이 닿으니 나뭇가지아래 초록색보다 옆은 유리병들이 가득했다.


낡아서 마루 공사로 인해 발견된 미술관의 비밀!

그날은 평소처럼 이라면 작품만 보고 감성을 채우고 돌아갔을 나였는데 관장님을 만났고 미술관의 비밀을 만나게 되었다. 마룻바닥 속에 잠들어 있던 어느 교장 선생님의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세상밖으로 나오는 공간과 비밀스러운 장소가 밝혀지는 신비로운 시간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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