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한 집단에서 권위 세우는 법
다툼이 두려워서 낯을 가렸다
사람들은 인간관계 안에서 쉽게 피로해진다. 타인에게 관심이 없지만, 선입견은 품기 때문이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진 않아도, ‘친해지고 싶다/싫다’, ‘만만하다/세 보인다’, ‘맵시가 좋다/안 좋다’, ‘나와 비슷하다/다르다’의 판단은 단박에 내린다. 그리고 본인 나름대로 그 호오를 숨기고 살아간다. 서로의 그러한 채점표를 오픈하면, 무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친해지거나, 대적하거나. 관계는 둘 중 하나로 치닫는다. 무리 안에서는 제삼자에 대한 뒷담화를 통해 우회적인 한편 안전하게 서로의 채점 기준을 짐작하기도 한다. 뒷말 대상은 대개가 그 무리의 인기투표 최하위다. 무리의 운명은 잘잘못에 대한 심판이 아닌 선입견에 좌우되는 것이다. 다년간의 집단생활을 거친 성인들은 보통 그런 격류 속 방관자로 존재했던 경험이 있다. 그들은 피곤함을 토로한다. 그래서 차라리 모두가 모두의 채점표를 모르길, ‘낯 가리는’ 상태가 유지되길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민낯이 반드시 드러나게 만드는 집단 활동들이 있다. 팀원들의 창작물을 평가해야 하는 ‘합평’ 스터디, 동아리원 간에 협동이 필요한 연극·영화 동아리 말이다.
① 합평 스터디: 텃세 부리기
문예창작과나 글쓰기 교육기관의 수업에서 주로 이뤄졌던 ‘합평’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으며 비평’하는 활동을 뜻한다. 대본, 희곡, 소설, 논술, 작문 과제 등을 대상으로 삼으며, 비슷한 활동으로 ‘크리틱(미술,건축,디자인)’, ‘피드백’, ‘모니터링(영상물, 대본)’이 있다. 나는 예술고등학교 서양화 전공 수업의 ‘크리틱’을 시작으로 미술대학 4년, 대본 교육기관 2년을 포함해 이런저런 곳에서의 합평을 거쳤다. 그리고 요샌 온라인 글쓰기 모임이나 스터디로도 ‘합평’을 많이들 한다.
종종 위 이미지와 같은 상냥한 규칙을 보게 되는데, 이런 문구를 읽으면 외려 나는 글쓴이의 방어기제가 독특하다는 생각을 한다. 합평에 임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크게 둘로 갈린다. 전투로 받아들이거나, 반대로 상냥함을 잃지 않으려 하거나. 하지만 상처받고, 분노하고, 뒷말하고, 마음속에 쌓아두다가 병나고, 그러다 싸우거나 안 보는 게 평범한 다수의 반응이다. 섬세한 규칙은 갈등을 유예할 순 있어도, 진화하진 못한다. (우선적으로, 구성원 간 신뢰가 충분히 형성된 모임에서만 실현 가능할 것이다.) 합평 스터디는 근본적으로 ‘텃세 부리기’이기 때문이다.
대학과 교육기관에서는 교수와 강사가 합평을 이끈다. 의견도 내고, 진행도 맡는다. 스터디에는 스승과 진행자가 없다. ‘비슷비슷한’ 아마추어와 불합격자들(어떤 기준에서)이 모여있는 곳이다. 하지만 다 같은 불합격자라고 생각하진 않는 모양이다. 스터디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기 전형을 몇 번 통과했는지 자기소개 댓글을 써야 한다. 그리고 신입 회원은 첫 모임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다. “(시험·공모전 대비) 수업 들어 보셨어요? 선생님이 ○○님 글 보고 뭐라고 하셨어요?” 그가 써 온 글을 ‘까고’ 싶은데, 그 전에 나름의 객관성을 확보하고도 싶은 마음이 엿보인다.
비슷한 의도에서, 이런 말도 많이 한다. “이 글은 △△ 안 같아요.” △△엔 소설, 드라마, 영화, 작문이 들어간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 사이에선 ‘영화 같다’가 욕이고, 영화감독 지망생 간엔 ‘드라마 같다’가 욕으로 쓰인다. 기자지망생들은 PD 지망생들의 스토리텔링 작문을 감성에 호소하는 신변잡기로 매도하고, PD 지망생들은 반대로 그들의 칼럼 식 작문을, 개똥철학이 가득해 위험하다고 비꼰다. 준비 기간이 길어질수록, 마치 장르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도 된 양 지망생들은 장르 문법에 집착하게 된다. 한 산업의 역사와 동향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합격자 글의 분위기를 흉내 내고, 근래의 히트작과 유사한 대본을 써서 업계 관계자의 입맛을 맞추려는 시도는 장르 문법을 존중하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이처럼, 합평 스터디에서는 장르 문법을 가장한 텃세 부리기가 반복되고 있다. 개개인의 평가 기준이 구체적이지 못해서다. 저런 텃세보다야 차라리 “재미없었어요.”가 글쓴이에게 한 방의 울림을 줄 수도 있다.
어쨌든, 합평 스터디에 필요한 건 개개인의 특성을 찾아주려는 태도이다. 그러려면 오래 들여다봐야 하고, 글쓴이의 다른 글과도 비교해 봐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망생들에겐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다들 지위와 경력이 있는 자에게 수직적 가르침을 받는 길을 선호한다. 소통 없이 글만 제출하는 모임에 참여하거나.
② 연극·영화 동아리:
권위 호소 리더와 부채감에 묶인 팀원들의 감투 놀음
연극·영화 동아리는 개인주의와 권위주의가 상충하는 곳이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모여서는, 작품을 만드는 동안 열심히 싸운다. 개인주의와 ‘PC주의’의 영향 아래 수평적 소통을 꿈꾸다가도, 끝에는 평범한 뭇 위계 조직처럼 공동체로부터 고통받는다. ‘연출’(감독)이라는 리더는 가져본 적 없는 권위를 호소하고, ‘스텝’인 팀원들은 부채감에 발이 묶여 수동적으로 임한다.
본래 연극·영화계는 조직문화로 굴러간단다. ‘현장에서 상급자에게 정보와 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하며 제작, 연출, 촬영부의 권한이 막강하고, 인맥과 술자리가 중요하다.’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 종사자들은 최저 임금이나 응당한 복지를 보장받지 못하면서도 ‘데뷔’라는 보상을 기다리며 그 모든 걸 버텼을 것이다. 그러다가 2016년 #영화계_내_성폭력’ 운동 이후 제작환경에 대한 성찰과 감시가 시작됐다. 작품의 내용 면에서도 여성 서사의 수요가 급증(공론화에 가깝다)했고, 연극계에선 이와 함께 ‘공동창작’이라는 작업 방식이 조명받았다. 그래서 20년도와 25년 사이에 내가 경험했던 대학 내·외 동아리의 분위기는 기존의 제작환경과는 판이했다. 배우들과 연출이 함께 대사를 고쳤고, 연습실에 놀러 온 스텝은 거리낌 없이 연출자의 방향과 다른 의견을 냈다.
하지만 ‘약해진 감독 끗발’에도 불구하고, 무리에서 세력은 생겨난다. 이제 그 세력의 주동자는 연출이기도, 배우이기도, 스텝이기도 하다. 우선, 연출이 새로이 혹은 여전히 내세우는 명분에 대해 키워드로 알아보자. ①무례함이다. 연출을 병행하던 연기 전공생에 따르면, ‘배우와 스텝, 작가가 감독의 디렉팅에 간섭’하는 행동은 매우 ‘무례하고’, 그 자체로 ‘월권’이라고 했다. 연습실에서 스텝이 의견을 낼 순 있지만, ‘배우 앞에서 감독의 권위가 실추되지 않도록’ 쉬는 시간에 귀엣말로 해야 한다. 좋은 마음으로 모인 20대 초중반 청년들의 입에서, 사람을 등쳐먹는 조약서에나 실릴 법한 이러한 협박성 멘트가 왜 나오는 걸까? 연출은 매 순간 판단하고 설득하는 역할인데, 사람들의 입을 막아야 그 일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입을 막지 못하면 이렇게 된다. 감독이 디렉팅을 하며 배우나 스텝을 ‘공격’(닦달)해야 하는데, 반대로 그들의 질문에 ‘변명’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무례하다는 형용사를 남발하는 이들은, 함께 고민하는 일을 ‘가오 떨어진다’고 여기며 의사소통의 위험(가능성)을 원천 차단한다. 글쎄, 사소한 말이나 행동에까지 선을 그으려는 태도가 공격적으로 느껴진다. 저런 이를 볼 때, ‘연극·뮤지컬 갤러리’에서 유행시킨 ‘시체 관극’문화가 떠오른다. (앉은 채 다리나 팔을 움직이는, 정말 사소하고 생리적이라 주변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 행동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나무위키)
두 번째로는, ②우리다. 연출은 말한다. “우리는 원 팀인데 당신은 왜 시키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나?” 그러면 진작부터 ‘남의 프로젝트를 돕는다’고 생각해 왔던 스텝은 반발한다. “내게 이득 되는 것도 없고 난 돈도 못 받았는데 당신은 왜 연출이랍시고 이래라저래라 하나?” 스텝은 자신을 잡부 취급한다고 느끼고, 연출은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 이에게 그런 지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양측 다 서로를 우리라고 느끼지 않고 있다. 또한, 연출과 스텝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연출은 바쁘다. 그래서 미술팀은 며칠 전에 연출이 ‘오케이’한 대로 며칠간 무대 기물을 제작했다. 다 완성되고 이를 본 연출은 ‘내 뜻을다르게 이해한 것 같다’며 ‘고쳐 달라’고 말을 바꾼다. 그다지 미안해하지도 않는다. ‘우리 팀이 잘 되려면 고쳐야 하는데, 왜 그걸 귀찮아하느냐’는 논리다. 우리는, 영화 현장에서 스텝들의 집중도를 관리하기 위해서도 쓰인다. 대기할 일이 많은 현장에서, 감독은 매분 매초 전 인원이 우리의 영화에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해주길 원한다. 사담을 나누거나 배고픔을 우선시하지 않길 바란다. 전 인원이 감독의 ‘액션’과 ‘컷’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실제로 NG가 나는 것도 맞다.
‘모더레이터’는 지시를 이행하는 사람이지만, 스텝은 ‘의도대로 구현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연출은 세부적인 지시 사항을 내리기 전에 의도부터 풀어 설명해야 하고, 스텝은 연출을 이해하길 포기하지 않아야 ‘뇌를 동기화하는’ 진정한 우리가 될 수 있다.
내 할 일 끝이야 라고 할 수도 있지만 / 지금 우리의 프로젝트가 그렇게 공적이고,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 너는 내부 인력이다. / 우리는 원팀이다 / 나는 2-3개 이상의 포지션을 함께 짊어지고 있다 / 공연이 끝나기 전까지는 책임도 끝나지 않는다 / 내 개인적인 부탁이 아니다 / 나 혼자만의 사정이 아니라 불가피한 이유로
출처: 직접 경험을 토대로 만든 예시
다음으로는, 배우가 세력을 형성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그들은 폭력이라는 단어를 남용한다. 그건, 연출이 머릿속으로 상상하거나 떠올리는 누군가를 배우를 통해 구현하는 상황 자체에서 비롯된다. 연기 디렉션이 잘 통하지 않을 때, 연출은 “그렇게 웃지 마시고, 저 처음 봤을 때 보여주셨던 어색한 미소를 지어주세요.”라고 하기도 한다. “연기 하듯 격양되게 대사 치지 마시고 드라이하게 읽는다고 생각해주세요. 오, 지금 그게 더 좋아요.”, “욕해 본 적 없어요? 욕의 끊어 읽기가 어색하네요.” 이런 말도 한다. 자연스레 배우의 말투, 표정, 자세, 연기와 일상에서의 차이, 배역과 배우의 성격 차이까지도, 연출은 관찰하고 교정하게 된다. 그래서 연기 디렉션을 통해 연출이 그 배우에게 갖는 인상, 편견까지도 전달될 수 있다. 연출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배우가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연출과 배우가 서로에게 품는 감정이 배역에도 스며든다. 배우는 애드리브를 하고, 또 연출이 그 애드리브를 발전시키니 점점 더 그렇게 된다. ‘비호감’(다면적인, 주인공스럽지 않은) 이미지의 배역이라면, 배우는 연출과 관객 둘 다에게 ‘그 인물로 보여지길’ 싫어하기도 한다. 대신 그 배역이 호감을 얻도록 연기 하려 한다. 하지만 그건 연출을 불신하고, 존중하지 않는 행위다. 다행히 내가 만나본 배우 대부분은 ‘술자리에서 한껏 친근해졌다가 다음날 서로 존대하는 새내기’처럼 금방금방 그런 ‘과몰입’의 순간들에서 빠져나왔다. 가끔가다 열 명 중 한 명이 몰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현실의 재현’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재현 윤리의 문제를 권력의 문제로 착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전통적으로 연출이란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였으니까! 나는 “이윤택 같은 연출! 여성 혐오 연출”이라는 말도 들어 봤다. 한 여성 배우가 모두의 앞에서 날 삿대질하며 울었고, 난 최대한 표정 관리를 하며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그녀가 날 방아쇠 삼아 지난 삶의 아픔들을 내게 분풀이한다고 생각했다. 전통적인 권력 구조가 전멸한 공동작업의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하기 쉽다. 가장 약한 구성원의 감수성까지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시작해야 한다.
출판 업계에서 레즈비언 트위터리안들이 바이 지향성을 가졌으며 결혼까지 한 소설가 김세희가 소설 안에서 레즈비언들의 당사자성마저 침해했다고 항의하여 결국 <항구의 사랑>이 출판 정지까지 갔던 일이 있었다. 작중 묘사를 보면, 소설을 통해 아웃팅을 당했다고 주장한 레즈비언 동창생은 사는 내내 자신의 지향성을 외적으로 드러내고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남에 의해 자신이 ‘징글맞은 존재’로 재현되는 것이 유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들이 재현 윤리의 문제를 ‘권력의 문제’로 논점을 바꾸고 있다고 느꼈다. - 브런치 게시글 <내 몸이 그저 살덩이일 수 있을까>
https://brunch.co.kr/@f483820ff9154c3/10
“그리고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배우분들한테 내가 어떻게 해야 될 지 잘 모르겠어요. 촬영 감독님이나 CG 팀하고는 되게 구체적으로 얘기해서 이렇게. 근데 배우는, 뭐 그렇게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는 있는데. 배우분들은 그냥 사람과 사람의 문제잖아요.”
김혜리의 필름클럽 229회 ‘봉준호 감독 초대석’ 중 봉 감독의 말
겉으로 보이는 파벌이 아니라 스파이가 필요하다
나는 ‘찐따’같은 연출이었다. 릴레이 단막극을 올렸을 때, 친구가 극장에서 배우들과 나를 보고는, 내가 ‘불쌍해서 도와주고 싶은 연출’ 유형 같댔다! 나는 평상시 입 닫고 있으면 어디서든 묻어갈 수 있는 소극적인 성격에, 키도 작다. 결정적으로, 남에게 뭔가 요구하질 못한다. 앞에 있는 휴지 좀 달라고 말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당연히 연출일 때에도 발언권을 독차지하기가 민망했다. 두 시간 이십 분 길이의 장막극을 연출할 때, 그래서 공동창작이라는 토론의 진행자가 되고자 했다. 내가 논제를 제시하면, 배우들은 여러 의견을 낸다. 나는 흐름을 정리하고, 결론을 낸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오히려 배우들이 자신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으면 기분 상해하기도 했고, 내 앞에서 내가 쓴 캐릭터가 이상하다고 말하며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디렉션 방향을 거부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극적인 스타일의 무대 연기를 밀어붙였고, 공연 당일 합의되지 않은 애드리브를 했다. 내가 기획·각본·연출로 참여한 연극에서 날 내쫓고 조연출을 연출로 세우려는 계획까지 공모했었다고 들었다.
처음엔 당연히 그들이 ‘내’ 연극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들이 품은 에너지가 연극에 반영되는 게 느껴졌다. 내가 머릿속에 그렸던 초안이 세모라면, 그들의 에너지에 그 뾰족함이 깎여나가더라도, 살이 붙어 원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연극은 이틀간 잘 공연됐다.
그리고 나와 그들 사이에서 스파이 역할을 했던 주연 배우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연출님이랑 친해 보이면 나도 따 당하는 거 아니야?”라며, 둘이 밥 먹으러 가던 길에 카페에서 우릴 목격한 이들을 의식해 연습실로 돌아갈 만큼 눈치를 봤다. 그러면서도 연습실에선 늘 나의 지시를 존중하면서 연기하고, 상대역과의 호흡과 애드리브도 그 방향에 맞춰 조정해 주었다. 이렇듯, 상호신뢰하는 키(key) 스텝이나 주연 배우 한 둘과 내통하는 것이 ‘우당탕탕’ 연극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던 나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인간 관계에서는 실패한 것이 분명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가해자’로 몰렸던 경험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그들을 먼저 믿어주고 정서적으로 소통하고자 노력했더라면, ‘이상한’ 내 언어를 이해해달라고, ‘내가 여러분들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알렸더라면, 좀 나았을까?
장막극을 올리기 전에 나는 셋 셋 여섯으로 나뉜 창작 집단을 겪었다. 기획, 연출, 작가팀으로 나뉘어 릴레이 단막극 5개를 제작했다. 하지만 속해있는 팀별로 참여도의 격차가 있었다. 기획과 연출팀 여섯 명이 친밀하여 자주 회의했고, 작가들은 전체 회의 때만 호출되어 뜨문뜨문 만났다. 기획과 연출부가 논의한 결과가 7일쯤 후에 작가들에게 통보됐다. 심지어 나의 경우에는, 내 대본을 담당하던 연출이 공연 일주일 전 코로나에 대한 위험을 이유로 혼자 연출을 포기한 사실도 통보받았다. 한편, 미대생이었던 나는 포스터 제작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기획팀과 연출팀 인원들이 본인들끼리 모인 단톡방에서 의견을 나눈 후 내겐 따로따로 연락해서 수정을 요청했다. 집단 내에서 정보가 불균형했고, 누군가에겐 결정권이 없었다. 과정은 공유되지 않았고 매 모임에선 작품 얘기 대신 무례와 우리와 관련된 ‘정신 교육’이 이뤄졌다. 그러는 통에 겉으로 일은 빠르게 추진 됐지만, 연출, 기획, 작가 중 누구도 별 애착을 갖지 않는 공연을 올리게 됐다. 연출과 작가의 1대1 소통을 강조하고, 기획팀은 연출과의 친밀도를 드러내 보이지 않고 긴밀히 소통하며 인사 관리를 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영화 교육 기관에서는 6명이 품앗이로 참여하여 모두 한 작품씩 연출했다. 보통 유사한 기관에선 선정을 통해 한 명만 연출을 맡게 되니, 그건 큰 장점이었으나 앞선 사례와 비슷한 맹점도 있었다. 연출로 참여한 한 작품을 제외한 각각의 작품에 별 미련이 없으니, 말도 없었다. 대본과 연출 방향에 대한 논의가 일절 없고, 모든 스텝은 감독의 ‘일언지하’에 따랐다. 각각 프리 단계와 현장에서 할 일이 적은 슬레이터와 미술 스텝은 더욱 의욕이 떨어졌고, 앞서 설명한 우리에 대한 견해 차이로 연출과 다퉜다. 역할 배분(촬영감독이 연출 다음으로 작품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과 촬영 협조도엔 술자리 친밀도가 영향을 미쳤다. 더욱이, 최연장자가 영상 관련 경력을 내세우며 매 술자리에서 팀원들의 작품을 일방적으로 평가하고 본인에 대해선 칭찬을 유도했다. 여섯 명은 최연장자를 한 명씩 끼워서 셋셋으로 찢어졌다. 페이를 받고 외부인으로 참여하는 배우와는 많아 봐야 촬영 전에 두 번 정도 만날 수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니 연장자들과 함께 하는 어려움, 술자리의 반언어적 대화를 통해 친밀해져야 하는 어려움, 피고용인인 배우에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술자리의 반언어적 대화’가 큰 차이였다.
③ 20대 여성이 구사하는 '저맥락 텍스트'로 이어집니다.
① '무임승차 빌런'에게 화내지 않는 이유
https://brunch.co.kr/@f483820ff9154c3/14
글에서 언급한 김혜리의 필름클럽 에피소드입니다.
배우와의 소통에 대해 꽤 자세히 이야기해주십니다. 상당히 재밌습니다.
https://youtu.be/6tnW1XR5t-o?feature=sha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