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의 가을, 주말, 그리고 한편의 에세이
일요일 오후에 남편의 아버지와 다 같이 점심을 먹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근황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 준비 중인 프로젝트 겸 일에 대해서도 토론해 보니 남편은 열정적이지만 아직 치밀하진 못하고, 아버지는 의미 있는 부분을 조언해 주신다.
삶이 단순하다 싶은 게 맛있는 음식을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가끔은 어려운 과제를 수행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아늑한 시간을 보내는 게 전부이다.
‘나’를 주인공에 두지 않고 사는 삶이란 어떤지 궁금했는데 결혼 생활에 막 접어드니 그저 흘러가는 일상에 나를 맡기고 주변인들을 내 시간의 흐름에 존재하게 한다. 어렵지만 해내고 하면 뿌듯하다. 한마디의 대화가 의미 있기도 그저 정적을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의 여리고 나약한 마음이 나에겐 존재의 따뜻한 이유가 되어준다.
누군가를 사랑해 마지않아 타인의 삶에서 유영하다가 다시금 나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한다. 혼자 고독 속에 배회하는 인간의 실존이라는 문제에서 타인과의 관계는 달콤 씁쓸한 디저트이기도, 따뜻해서 손을 댔다가 꺼져버리는 촛불이기도 하다.
시아버지의 아늑함도 남편의 애정도 나에게 필요한 삶의 요소이다. 그게 외로운 타지 생활에서 회색빛 시간 속에 여명처럼 잠깐이나마 나의 마음의 온도를 높인다. 그러나 결국 나는 자신에게로 돌아가 진공의 머릿속으로 사색에 잠기거나 이렇게 글을 쓰며 타인과의 시간 속에 흘려보낸 나를 다시금 주워 모은다. 내 마음속 사금파리 한 조각을 인생의 강물에 띄우고 나면, 다시 무의식의 바다로 잃어버린 나의 조각을 찾으러 가는 항해사의 삶이다.
행복한 주말이었다. 남편과 함께했고 그의 가족에 대한 소식도 들었다. 저녁 식사 이후엔 해 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며 살을 발라낸 굴의 안쪽 표면저첨 뭉그러진 회색과 은빛의 하늘로 덮여 있다. 사랑하는 이들이 있지만 우리는 결국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다. 며칠 전 32세 생일을 맞아 마음에 닿은 감정은 ‘사랑’에 대한 이해였다. 성숙해지면서 나를 남에게 기꺼이 드러내고 다시 나를 찾아오는 과정을 배우고 있다.
나를 잃어버리지 않으면서도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부끄럽지 않게 나를 표현하고 또한 남의 존재를 편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이 생겼지만, 생김새도 살아온 행적도 다른 우리들이 서로를 사랑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결국 나를 알려줄 기회도 없을 것이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어린 시절 친구와의 첫인사처럼 마음속으로 각자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며 귀여움과 애틋함을 가지고 타인을 바라본다. 그리고 수줍게 나를 소개한다.
사람마다 가진 ‘사랑스러움’에 집중해보고자 한다.
겨울철 엄마가 해주신 굴국 한 그릇에 흰밥을 말아 김치를 올려서 한 숟갈 크게 먹었을 때의 따뜻함이 느껴진다. 우리들이 삶이라는 공간에서 대화로 채워지는 따뜻함을 공기처럼 가벼이 여기지 말고 소중하게 기억으로 보관해 두고자 몇 글자 적어본다. 찬 바람이 살짝 불고, 높은 하늘이 청명한 스톡홀름의 가을이었다.